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두려움과 불안이 있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두려운 마음이 생기고 적당히 믿으면 더 생깁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하나님은 우리 안에 두려움이 있는 것을 아시고 그 두려움을 제거해 주고자 하십니다.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는 믿음이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결국 믿음은 안심하는 마음,  평안한 마음 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미래는 축복으로 다가오기 시작하고 천국이 가깝게 느껴집니다.

 

찬송가 430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https://www.youtube.com/watch?v=O7zmjMpKTMw

 

하나님 넓고 은혜는 바다 보다 깊다  닻줄을 끌러 깊은데로 한가운데 가보라

 

[후렴]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띄어 내 예수 은혜의 바다로 맘껏 저어가라

 

2 인생은 언제나 거기서 바다 물결보고  모르는 깊은 바다 속을 한번 헤아려 안보아

3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바다 가려다가 찰싹 거리는 작은 파도 보고 마음 약하여 못가네

4 자 가거라 이제 가거라 은혜 바다 향해  노를 저어 깊은 데로 가라 망망한 바다로

 

이번 암송구절: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Now it is required that those who have been given a trust must prove faithful.

 

이번 읽을 말씀: 이사야 28-39, 빌립보서 1-4, 시편 146-150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사사기 13:15-25 기묘자

오늘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의 은혜가 우리들에 충만하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사사기 13장부터 12번째 사사인 삼손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자녀가 없던 마노아의 아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 후 남편에게 가서 사실을 말했을 때 마노아는 하나님께 기도한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다시 방문을 해서 마노아를 만나게 됩니다. 여호와의 사자의 방문을 받은 마노아는 너무나 기뻐서 염소새끼 하나를 재물로 잡아 드리고자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의 사자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어찌하여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기묘'라는 뜻은 영어성경에 'beyond understanding'으로서, '이해와 상식을 초월한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적인 의미로는 ‘비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놀라운 이름을 가지신 분입니다. 인간의 이성이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뇌성마비 시인으로 알려진 송명희 시인은 하늘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시를 썼는데 그 제목이 ‘그 이름’입니다.

송명희 시인은 그 이름이 놀라운 비밀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시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사랑을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그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

 

이 시인이 고백한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이것이 바로 주님은 기묘자라는 표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같은 죄인들을 찾아오신 것만 해도 우리의 상식과 이성을 뛰어넘어 갑니다.

이사야 55:8,9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보았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메시야를 묘사했습니다.

이사야 9:6절에 보면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아이가 없던 마노아의 가정에 아이가 태어나게 된다는 것도 기묘한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보통아이가 아니라 위기에 처한 민족을 구원하는 힘있는 사사가 된다는 것도 기묘한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사사로서 나중에 이루어 나갈 사역의 내용도 보면 기묘합니다.

누가 감히 아이도 하나 못 낳는다고 한숨짓던 마노아의 가정에서 이런 엄청난 아이가 태어날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기묘의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를 이루실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어둡고 교회가  어렵다고 하지만, 수년 동안 복음의 열매, 구원의 열매없이 실패만 했다고 할지라도, 기묘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기적의 약시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복음으로 충만한 사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려웠던 교회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기묘한 역사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자기 상식, 자기 생각이 전부인것처럼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묘자라. 죽은 곳에도 기묘하신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른 뼈만 남은 곳에서 하나님의 영이 임하니까 다시 살아나는 군대가 됩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기묘하신 하나님은 이런 시대에도 기묘한 일들을 행하십니다.

갈릴리 촌 어부들이 기묘자이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세계역사를 바꾸어 놓은 위대한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기묘의 주님안에서는 기적이 상식이 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기적처럼 어렵게 여겨지는 일들도 기묘의 하나님 안에서는 평범한 일상사처럼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기묘이신 하나님을 내 좁은 상식의 틀에 가두어 놓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한계적인 인생을 살아서는 절대 안되겠습니다.

저희들이 기묘이신 하나님 안에서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위대한 일을 시도하는 능력있는 인생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마노아는 여호와의 사자의 말을 듣고 그에게 염소새끼 하나를 제물로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

저희들이 레위기를 나누면서 번제와 소제에 대해서 배웠던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번제의 근본 목적은 속죄를 위한 것입니다.

마노아는 약간 흥분을 했는지 정신이 없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영광을 돌리려고 합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번제물을 드리려면 여호와께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그에게 여호와의 사자를 보지 말고 여호와를 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인은 아이를 낳았습니다.

마노아 부부는 아이의 이름을 삼손이라고 지었습니다. 

24-25절.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삼손은 태양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주석가들은 삼손을 Sunny 혹은 Sunny boy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40년동안 지배를 받고 살았습니다. 그 시대는 어둠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이런 어두운 시대를 밝혀줄 수 있는 빛처럼 삼손을 사용되는 것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태중에서 미리 구별하여 나실인으로 이 세상에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감동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 성령의 감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코로나 블루를 넘어서 이제 코로나 블렉이라고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마노아는 이런 시대에 번제와 소제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속죄를 위한 제사입니다.

첫번째 원리를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바로 어려운 시대에도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받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 Offering을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많은 성도들이 너무 예배를 나에게 맞추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은혜가 되는 찬양, 은혜가 되는 말씀, 은혜가 되는 기도를 합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예배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것은 현대가 만들어낸 잘못된 예배의 모습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나를 깨뜨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언제까지 영적 아기처럼 살아야 될까요?

나 중심적인 신앙은 믿음을 처음 가질 때 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아이같은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야 하지만 신앙생활은 오래되었는데 나의 모습은 여전히 아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믿음이 깊어지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쳐서 말씀에 복종시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산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구별해서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위해서 그런 산예배, 나를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두번째는 어두운 세상을 보면서 절망하지 않고 기묘자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는 우리의 초점이 중요합니다.

초점을 어디에 두고 사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믿음이 달라집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느 곳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기묘자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좌절하고 넘어집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원망과 불평, 탄식입니다.

사람들은 나의 상황과 환경을 보라고 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절망 뿐이죠. 아무 것도 보이지는 것이 없어서 답답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기쁘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가나안에 정착했습니다. 우리보다 더 힘든 상황입니다. 앞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환경과 상황을 탓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하니까 똑 같은 환경에서 그는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이 잘나서 그런 것인가요? 아니죠.

아브라함이 다른 것이 뭐냐 하면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굳게 믿은 차이입니다.

앞이 깜깜해요.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앞이 깜깜한 적이 어디 한두 번입니까?

이럴 때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앞이 깜깜하면 빛이 되시는 주님을 붙들어야죠. 힘을 다해서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두움도 변화되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사는 자들은 기묘자가 되시는 주님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런 어두운 상황 속에서 능히 이길 수 있는 힘, 이런 상황 속에서 살 수 있는 지혜, 이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신 능력의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능히 이런 시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초점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기묘자 되시는 주님께 있을 때 우리는 놀라운 삶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이 무너지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초점을 잃어버리면 궤도를 이탈해서 결국에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묘자가 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우리들이 말씀을 듣고 함께 우리의 기묘자 되시는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눈을 밝히사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기묘자 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옵소서. 그래서 두려움이나 걱정들을 제거하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어려운 시기 일수록 우리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신실한 예배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이 되게 하옵소서.

세상이 영적으로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을 때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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