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9월 1일을 맞이했습니다. 새로운 달, 새로운 날 한번도 가보지 않는 길을 오늘 하루도 걸어가야 합니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불안과 초조와 염려와 두려움을 다 내려놓고 주님의 손을 굳게 잡고 오늘 하루도 걸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손을 잡고 가는 길이 믿음의 사람의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9월 한달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충만하게 누리시길 바랍니다.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1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후렴]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2 주 모습 내 눈에 안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3 가는 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 십자가 고난을 이겨내신 주님의 마음 본받음이라

4 주 예수 세상에 다시오실 그 날엔 뭇 성도 변화하여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 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이번 암송구절: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Now it is required that those who have been given a trust must prove faithful.

이번 읽을 말씀: 이사야 28-39, 빌립보서 1-4, 시편 146-150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사사기 12:1-15 분열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깨닫는 놀라운 은혜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사사기 12장을 함께 나누면서 공동체가 어떻게 분열을 겪고 싸움을 하게 되는지 이런 과정을 통해서 믿음의 공동체는 어떻게 이런 분열들을 피할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제 말씀에서 입다가 암몬으로부터 이스라에을 구원한 사건을 나누었습니다. 암몬과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때 에브라임지파는 싸움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싸움에 참여하지 않았던 에브라임 지파가 므낫세 지파에서 찾아와서 화를 내면서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사기에서 지파별의 비극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은 건국초기 하나님의 공동체로 함께 번영하자고 맹세를 거듭했습니다(여호수아 22장). 

단일 혈통으로 한 형제로,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국가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세운 후에 사사기 12장에서 처음으로 에브라임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내부전쟁으로 4만 2천명이 죽는 동족의 비극이 일어납니다.

사사기 20장에도 이스라엘과 베냐민 지파가 서로 싸워서 베냐민지파가 거의 말살됩니다.  

나라도 직장도 가정도 교회도 싸움과 분열이 일어나게 되면 비극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서기가 여간 어렵습니다.

지파별 싸움은 내부의 전쟁입니다.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나지 않아야 해요.

교회가 건강한 교회는 절대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되면 문제의 책임을 따지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서로 분쟁하게 되면 교회의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고 나중에 가면 싸움 후유증으로 교회는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처음에 싸움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므낫세 지파의 수장인 입다가 암몬 족속을 쳐부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에브라임 지파가 므낫세 지파를 격려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입다에게 나와서 암몬 족속과 싸우려 갈 때에 왜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는가 시비를 걸고 나 왔습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지파가 시비비비를 가리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무장을 하고 싸움을 하러 왔던 것입니다.

1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에브라임 지파의 말을 들으면 므낫세 지파가 편파적으로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정 반대입니다.

2절을 보면 입다가 암몬과 싸우러 갈 때에 가장 가까운 형제 지파인 에브라임 지파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에브라임지파가 누구입니까?  에브라임 지파는 요셉 지파의 장자 지파로 큰 축복을 받아 번성하여 큰지파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본래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낄 수도 없는 자들입니다. 손자들이 아들의 항렬에 올라왔습니다. 더구나 에브라임 지파는 므낫세 지파의 동생 지파였습니다. 야곱은 이런 어린 에브라임을 열두 지파의 장자지파로 축복했습니다.

특히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 출신으로 가나안 정복전쟁을 이끈 후에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주류가 되었습니다. 에브라임이 열지파를 대표하다가 보니 큰 대란이 일어날 때 에브라임 지파가 다른 지파를 도와야 하지만 돕는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기드온 사사 때 미디안과 전쟁을 했습니다. 에브라임은 참여를 꺼려했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이 마지막 두 왕을 쫓아갈 때 그때 참여를 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늘 자신들의 안정과 보호만 생각하고 절대 불리하거나 희생을 지불하는 일에는 절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입다가 에브라임의 정곡을 찔렀습니다. 입다는 에브라임의 이런 태도에 몹시 화가 났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나는 너희가 도와 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입다는 에브라임 지파의 교만을 책망했습니다. 이것이 실제로 에브라임의 문제였습니다.

입다는 에브라임 지파가 도와주지 않는 것을 개의치 않고 믿음으로 암몬 자손과 싸웠습니다. 하나님은 입다의 믿음을 보시고 암몬을 입다의 손에  붙여주셨습니다.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그를 맞이하기 위해서 집 문을 나온 자가 자기 무남독녀였습니다. 그를 서약을 했기 때문에 딸을 희생제물로 드렸습니다. 

현재 입다는 딸을 제사에 바쳤기 때문에 마음이 몹시 상심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입다는 마음이 피곤하고 지쳤 있는데 자존심을 상하게 하니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입다는 길르앗 사람을 모으고 에브라임 지파와 싸웠습니다.

이때 만약 에브라임 지파가 입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았다면 입다는 싸움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지파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싸움의 발단은 잘못된 말에 있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므낫세 지파를 도망한 에브라임 사람들이 만든 지파라고 조롱했습니다.

모세는 길르앗 땅을 르우벤과 갓자손에게 분배하였습니다. 나중에 므낫세 반지파도 길르앗 땅을 요구하여 분배받았습니다. 그들은 정당하게 분배받았고 대가로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할 때 선봉에 서서 싸웠습니다. 그들이 에브라임 지파에서 도망간 자들이 아니라 정당하게 길르앗 땅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도망간 자들이 길리앗 땅을 찾이했다고 하여 입다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코믹한 한 장면이 나옵니다. 싸움에서 패한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에브라임으로 도망을 가야 하는데 요단 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나루턱을 므낫세 지파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도망하는 자들이 요단 나루터에 왔을 때 그들에게 에브라임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하면 길르앗 사람들은 쉽볼렛을 발음하라고 하였습니다.  쉽볼렛은 ‘시냇물’ 또는 ‘곡식의 이삭’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쉽볼렛을 십볼렛이라고 발음하면 에브라임 사람으로 여겨 쳐죽였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쉽볼렛을 발음하지 못하였습니다.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 사만 이천명을 죽였습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가나안에 들어오기 전에 숫자를 세었을 때 삼만 이천 오백명이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에브라임 지파의 용사들이 죽었습니다. 동족 상잔의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입다는 원수는 이겼지만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엄청난 동족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싸움을 하지 않고 서로 함께 지낼 수 있을까요? 지파가 서로 상생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어떻게 서로 상생을 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기드온의 교훈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사기 8장에서 에브라임 지파가 기드온에게 나아와 불평을 늘어 놓습니다.

이유인즉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우러 나아갈 때에 왜 자기 지파 사람들을 부르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기드온이 처음 전투를 시작하고자 했을 때에 에브라임지파 사람들은 마음으로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승산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기드온이 예상을 뒤엎고 미디안 군대를 초토화 시킨 것을 보고 뒤늦게 전쟁에 뛰어 들어서 미디안의 두 방백인 오렙과 스엡을 처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드온이 이번 일로 일약 이스라엘의 영웅이요, 스타로 급부상하자 내심 배가 아팠습니다.

특히 에브라임지파는 그동안 기드온이 속한 므낫세 아비에셀 지파를 은근히 무시해왔는데 이번 일로 자신들의 지파의 위상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였습니다.

이때 만약에 기드온이 화가 났다면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에브라임지파의 콧대를 꺾어 놓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를 포용합니다.  

8장 2절에서 기드온이 다음과 같이 에브라임 지파를 추겨세워줍니다.

8장 2절에 기드온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가 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비록 에브라임 지파의 교만을 알고 있었지만 기드온은 공동체를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됨을 지킬 수 있을까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기드온이 이 말을 하고 나자 에브라임지파의 노가 풀리고 돌아갔습니다.

공동체가 분열을 겪지 않으려면 한 쪽이 품어주어야 합니다. 기드온이 에브라임을 품어습니다. 그러니까 에브라임이 수그러들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기드온 사건만 기억했어도 이런 비극적인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번째는 지체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각 지파는 이스라엘 한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도, 교회도 하나입니다. 나누어진 게 아니라 예수님의 몸에 다 붙어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몸에 붙어있기 때문에 절대로 한 마음을 갖지 못하면 절대 공동체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언제 분리가 됩니까? 지체의식을 갖지 않을 때 다른 말로 하면 교만할 때입니다.

이런 생각이 공동체를 망치게 합니다.

나는 저들보다 뛰어나지, 나는 저들과 같을 수가 없지, 나는 저들이 하는 것보다 더 잘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품을 때 교회는 넘어지고 공동체는 분리를 경험합니다.

교회가 하나되려면 나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님께 속해 있다는 지체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세번째, 각자가 서로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공동체가 건강할 때 보통 자신들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경우들입니다. 자신이 너무나 연약하기 때문에 혹시 나로 인해서 공동체가 분리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함께 갖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성도들은 늘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연약함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함께 기도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공동체는 약할 때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 서로 힘이 되어 주는 관계가 되며 서로 공동체의 어려움도 함께 극복하는 하나됨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집중된 힘은 공동체가 하나될 때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힘으로 하나됨을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우리를 먼저 치료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교만과 악함을 제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늘 겸손하게 하시고, 공동체를 생각하며 형제 자매를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공동체가 예상치 않는 상황 가운데서 건강하게 세워질 수 있도록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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