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짜 신앙과 가짜 신앙은 환경이 어려울 때 드러납니다. 가짜 신앙은 어려운 환경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의지합니다. 그에 반면에 진짜 신앙을 가진 자는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법을 찾습니다. 말할 수 없는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고 가이드를 얻습니다. 진짜는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용광로같은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을 내 주인으로 삼고 전적으로 그분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진짜 크리스천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찬송가 255장 너희 죄 흉악하나

1 너희 죄 흉악하나 눈과 같이 희겠네 너희 죄 흉악하나 눈과 같이 희겠네    

   죄의 빛 흉악하나 희게 되리라 주홍 빛 같은 네 죄 주홍 빛 같은 네 죄 눈과 같이 희겠네 눈과 같이 희겠네

 

2 악한 죄 벗으라고 주님 너를 부르네 악한 죄 벗으라고 주님 너를 부르네    

   하나님 크신 사랑 한이 없어라 악한 죄 벗으라고 악한 죄 벗으라고 주님 너를 부르네 주님 너를 부르네

 

3 너희 죄 사해주사 기억 아니하시네 너희 죄 사해주사 기억 아니하시네    

   불쌍한 사람들아 오라 하시네 너희 죄 사해 주사 너희 죄 사해 주사 기억 아니하시네 기억 아니하시네

 

이번 주 암송구절: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Don't you know that you yourselves are God's temple and that God's Spirit lives in you?

 

이번 주 읽을 말씀: 이사야 13-27, 에베소서 2-6, 시편 141-145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사사기 9:26-45 가알의 반역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는 은혜가 함께 예배하는 성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어떠한 사람을 소개할 때에, 종종 그 사람의 아버지를 함께 언급함으로써 그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눈의 아들 여호수아,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등입니다.

본문 26절은 ‘가알’이라는 사람을 소개하는데, 그의 아버지가 ‘에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벳’은 히브리어로 ‘종이나 노예’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천민 출신일 것이라고 추측을 하고, ‘가알’은 ‘역겨움’이라는 뜻입니다. 합치면 ‘노예의 아들의 역겨움’이 됩니다. 그 얘기는 곧, 하나님 보시기에 이 사람의 삶은 역겨웠고, 노예 근성에 찌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이 ‘가알’이라는 사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그와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가알’은  어떠한 삶을 살았습니까? 그가 이스라엘 사람인지, 아니면 이방 족속인지 성경은 전혀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그의 형제와 더불어 세겜에 이르렀다.’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근본도 알 수 없는 사람을 세겜 사람들이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신뢰의 대상이 절대로 되지 못합니다. 세겜 사람들도 가알이라는 사람을 무작정 신뢰했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아비멜렉을 신뢰하지 않은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신뢰하다는 히브리어 단어가 ‘바타흐’인데 뜻이 ‘희망을 걸다’란 의미가 있습니다.세겜의 방백들이 가알에게 어떤 기대를 가지고 그를 추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세겜의 방백들이 가알을 이용하여 아비멜렉에게 반역을 꾀하고 있으며,  또한 가알 역시 세겜의 정치적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쟁취하려고 하는 의도가 그 안에 깔려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으로 살아보니까 몇 가지 터득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악한 사람들에게는 악한 사람이 붙는다는 사실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사람이 붙습니다. 그런데 선한 사람들에게는 선한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선하게 살려고 하는 성도들이 힘들고 외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런 가치관이 뒤집어진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기에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믿는 자녀들은 주님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서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굳은 신뢰를 가져야 세상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세겜 사람들이 가알과 그의 형제들을 위해 신당에서 연회를 베풀고, 함께 먹고 마실 때 가알이 아비멜렉을 저주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을 섬기느니,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기는 것이 낫다. 당신들이 내 수하였다면, 진작에 아비멜렉을 제거했을 것이다.”라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18절에 나오는 ‘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창세기 34장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그들은 원래 히위 족속입니다. 

야곱의 유일한 딸인 디나를 아내로 삼고 싶었던 인물이 ‘세겜’이었는데,  그는 ‘디나’를 강간합니다. 

그 보복으로 시므온과 레위는 “할례를 받으라.”하고 나서 모든 남자들을 죽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세겜은 가나안의 여러 부족 중에서 정복을 당한 히위 족속이었고, ‘하몰’은 히위 족속의 방백으로 세겜 사람들의 선조입니다(장 33:19). 그리고 ‘하몰의 후손’이란 성읍의 귀족들로서 세겜 성읍의 전통있는 하몰 가문 출신들을 가리키는데 세겜인들이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벨렉과 장관 스불을 섬길 것이 아니라 차라리 자신들 중에서 통치자를 선출하여 그를 섬기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완전히 반역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을 다스리는 아비멜렉으로는 도저히 히위족속을 일으킬 수 없다는 불만을 세겜 방백들에게 터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술김에 말하는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죄가 중합니다. 지금 가알과 무리들이 반역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겜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한 선동적 발언인 것입니다.

악한 영으로 말미암아 세겜 사람들이나 가알을 따르는 무리들이나 옳은 판단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 자체가 술로 인해서 완전히 사고도 마비가 된 것입니다.

‘가알’은 이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세겜의 방백이었던 ‘스불’에 의해, 역모 소식이 알려지고 아비멜렉은 가알이 원하는 대로 군대를 파병합니다. 

본문 39절 말씀에 보시면, 가알은 그래도 어느 정도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었는지 세겜 사람들보다 앞에 서서 전투에 임했습니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하고 패배해서, 내쫓김을 당하게 됩니다.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입니다. 완전히 패배 했을 뿐만 아니라 아비멜렉을 따르던 자들이 승리하고 그곳에 소금을 뿌렸습니다.

소금은 식물을 파괴하고 땅의 소출을 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의 땅에 소금을 뿌린 것은 땅이 불모지로 황폐화되어 다시는 사람이 거주하지 못하도록 저주를 내리는 행위인 것이죠.

아비멜렉은 자신에 대한 반역을 일으킨 세겜 사람들을 철저하게 징벌하고 그것도 모자라 제례적인 의식같은 행위로 땅을 저주하였던 것입니다. 반면에 이것은 세겜에 대해서는 파괴 이상의 모욕적인 것임을 알게 합니다.

가알의 악한 행동들을 보면서 이것은 기드온의 마지막 아들인 요담의 저주가 실제로 공동체에서 실현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악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시는데 어떻게 세겜의 공동체가 파괴되어 가는지를 오늘 말씀은 전해 주고 있습니다.

어제 23절에서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악한 영은 분열을 야기시킵니다.

세겜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은 외부의 침략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족 내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포로 귀환 후에 무너진 성벽 재건을 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민족적 내분이었습니다.

어려움을 겪었던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기 어려운 것은 교회 안에 가알 같은 사람들로 인해서 생기는 내부의 문제들입니다.

리더들은 교회 안에서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서 참된 본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사람들이 모였을 때 덕을 끼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족하면 그 부족함을 매워줄 수 있는 리더, 흠이 드러나면 흠을 덮어 줄 수 있는 리더, 누구가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리더, 비판이나 정죄 대신에 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걸어갈 수 있는 리더가 되어야 내부의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가 믿음의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내부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리더들이 기도하지 않고, 예배 생활도 게으르고, 말씀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교회 안에 분열이 생겨도 그것을 수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악한 세력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른 영적 분별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악한 영을 대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알 같은 사람들은 늘 비난과 비판을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이나 자기 것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단지 교회를 파괴하고자 악한 짓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알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입니다. 비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알 주변에 모여서 같이 비판을 이어갑니다.

이런 가알과 같은 사람들 때문에 교회 공동체는 늘 깨어 있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동체를 위하시면 가알은 금방 죽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가알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악에 대해서 심판을 하실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가알 같은 사람들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도 사람들의 성향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시각을 가지고 교회를 섬길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를 섬기는 리더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를 하나되게 이끌 수 있는 리더들이 세워지도록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변에도 가알같은 악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무리들 가운데 있다고 해도 영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바른 영적 분별력을 주셔서 무엇이 옳은 일인지, 무엇이 잘못된 악한 일인지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한마음을 갖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위해서 중보하고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도록 은혜를 입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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