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한 마리 양이 길을 잃어버렸을 때 99마리의 양을 남겨두고 한마리 양을 찾아 나셨습니다.

주님은 한 영혼이라도 길을 잃지 않고 구원하시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나의 생명의 주관자, 나의 구원자되시는 주님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전하지 않으면 우리 주변의 많은 영혼들은 천국에 가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말씀을 전할 때입니다. 지금이 주님을 간증해야 할 때입니다.

 

찬송가 496장 새벽부터 우리

https://www.youtube.com/watch?v=8qS1oqmbnTk

1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봅시다 열매 차차익어 곡식 거둘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후렴: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단을 거두리로다 (아멘) 

2 비가오늘 것과 바람부는 것을 겁을 내지 말고 뿌려봅시다 일을 마쳐놓고 곡식 거둘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3 씨를 뿌릴때에 나지 아니할까 염려하며심히 애탈지라도 나중에 예수께서 칭찬하시리니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이번 주 암송구절: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For no one can lay any foundation other than the one already laid, which is Jesus Christ.

이번 주 읽을 말씀: 아가 1-8, 이사야 1-12, 에베소서 1, 시편 135-140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디모데후서 4:1-5시대를 이기는 성경적 지혜 8

Day 8 삶의 목적에 대한 바른 지혜를 가져라

오늘은 우리 삶의 목적에 대한 바른 지혜를 가려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에 우리 삶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리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될까요?

우리는 우연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이런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을 늘 상기하며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은 반드시 삶의 목적에 대한 사명문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존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이 성장하고 그리스도의 사명을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 나가며 때를 얻든지 못었든지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헌신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명문입니다.

나의 삶의 목적을 늘 생각하며 사는 성도들은 한번 주어진 삶을 값지게 보람있게 기쁘게 살아갑니다. 삶의 목적이 뚜렷한 사람은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진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정 먼저 시작해야 하는 것은 나의 목적 선언문을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내가 왜 존재하는가?

나는 주님을 믿는 성도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담겨야 합니다.

또한 나는 신앙 성장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님의 대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나는 어떤 사역을 해야 하는가? 등을 적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의 존재 목적에 대한 선언문을 만들어 보면 우리 삶에 대한 기대가 많아집니다.

우리의 남은 삶이 너무나 가치가 있고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나 중심보다 하나님 중심, 예수님 중심, 성령님 중심으로, 교회 중심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나의 존재 목적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추구는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에 대한 간증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주님으로 인한 간증이 많을 때 저절로 전도가 되고 선교가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경험했던 것을 나누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 크리스천들의 약점이 바로 주님에 대한 간증을 나누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는 주님을 만난 것, 주님으로 인해서 치유 받은 것, 주님의 은혜, 주님의 사랑, 주님의 구원, 주님의 도우심등 수많은 간증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의 삶에는 너무나 많은 은혜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세월동안 신앙생활을 했어도 주님에 대해서 간증을 하려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 현대교회의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제 로마 감옥에서 그의 삶이 불과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간증으로 그의 삶이 가득했어요. 그는 예수님을 만나서 그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만약 사도바울이 다멕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수많은 크리스천들을 죽이는 장본인이 될 것이고,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는 구원받지 못하고 사는 그런 비참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그는 디모데에게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는데 바로 2절입니다.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말씀은 복음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간증하라는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는 in season and out of season입니다.

저희 막내가 요즘 복숭아가 맛있다고 하면서 ‘in season’이라고 했습니다.

과일도 제철일 때 맛이 있듯이 복음을 나누는 가장 적합한 때가 있습니다.

때를 얻는다는 것은 간증할 결정적인 때를 의미합니다.

내가 만난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결정적인 때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결정적인 때가 돌아옵니다.

만약 아는 사람인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지인이 이 세상에 소망이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에게 당신의 소망은 무엇이냐고 묻는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질문을 해오는 때가 바로 결정적인 때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 때가 바로 주님이 주시는 결정적인 때입니다. 소망이 없다는 것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소망이 없죠. 그렇다면 소망없이 살았던 나의 삶을 간증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예수님이 나의 소망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또한 결정적인 때가 아니라 어려운 때가 온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간증이 가득한 성도들은 어느 때에든지 예수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한 가지만 집중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나누는 일, 즉 전도에 집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교회 성향이 예수님의 간증을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복음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듣기 싫어합니다.

우리의 죄성은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이야기,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세속적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 예수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세속적 가치관을 전해달라는 것입니다.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우리는 허탄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어합니다. 크리스천으로 세상에서의 성공이야기, 세상에서 잘된 이야기, 세상에서 대박난 이야기, 자기 자녀들의 성공 이야기등…..

에베소 교회에서 영지주의자들이 했던 허탄한 이야기가 바로 죄성을 가진 육체는 우리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육체적인 것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것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즉 허탄한 이야기는 육체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런 세상적인 성공 이야기등은 감동을 주고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지만 이런 이야기가 주님을 전해야 하는 것에 도전을 주지 못합니다.

허탄한 이야기는 사람들을 비관에 빠뜨리고, 믿음을 가진 자들을 죄절시키고 결국에는 멸망에 빠지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만약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질문할까요?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 이야기 일까요?

왜냐하면 1절에 보면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라고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면전 앞에서 우리의 심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서야 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십니까? 가장 두려운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판결에 의해서 우리는 양인지 염소인지를 금방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양은 구원을 받지만 염소는 지옥에 떨어집니다.

하나님이 묻는 질문이 무엇이겠습니까?

크리스천으로 세상에서 성공한 이야기, 세상에서 대박난 이야기, 돈 많이 번 이야기, 사람들의 건강 이야기, 나의 집이야기, 등 이런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질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자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값없이 받은 구원을 얼마나 나누고 전했는지를 물어보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과 얼마나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왔는지를 물으실 것입니다.

'너에게 내 아들 예수는 어떤 분이셨느냐?'

'너는 이 세상에서 내 아들 예수와 얼마나 친밀하게 지냈느냐?'

'너는 내 독생자 예수를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

예수님에 대한 경험이 우리 삶의 간증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가 연소하고 이런 영지주의자들의 허탄한 이야기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에 아주 강력하게 그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디모데에게 강력하게 전하는 이유는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죄에서 살리기 위해서 보혈을 흘려주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 앞에서 늘 감격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육체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길에서, 회당에서, 기도처에서 늘 예수 그리스도를 간증했습니다.

그는 때를 얻든지 못었든지 말씀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그의 삶이 얼마 남지 않는 감옥에서도 그는 간수들에게 예수 간증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전도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간증이 매일 그의 삶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간증으로 가득채워졌습니다.

사도바울은 구원을 받은 후에 그의 존재 목적에 대한 분명한 선언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자들은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해서 살아야 하고 주를 위해서 죽어야 합니다.

존재 목적이 주님을 위해서 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목적을 알고 있는 자들은 이 땅에서 잘되고 못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주님을 전하는 것에 오직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들은 신세 타령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이렇다. 저사람이 이렇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떻하겠습니까? 소망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꼭 전해주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우리가 만난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주님을 믿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요. 주님께 받은 은혜도 많고 주님으로 인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전하는 일에는 등한시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아도 마음에 도전도 없음을 이 시간 회개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복음의 빚진 자로 구원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주님을 알리고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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