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루 하루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벌써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토요일이 있다는 것은 복된 날 거룩한 날이 우리에게 돌아왔다는 의미입니다.

바쁜 일상 가운데서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기억하며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마음과 몸을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된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준비된 예배자가 되도록 오늘 하루 영적으로 육적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합니다.

 

찬송가 284 장 오랫동안 모든 죄 가운데 빠져

(1) 오랫동안 모든 죄 가운데 빠져 더럽기가 한량없던 우리들 아무 공로 없이 구원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 지금되었네


[후렴] 주의 그 사랑 한량없도다 찬송할지어다 예수의 공로 주의 그 사랑 한량없도다 찬송할지어다 예수의 공로


(2) 주의 보혈로써 정결하게 씻겨 죄악에서 떠난 몸이 되었고 세상 근심 구름 간 곳 없어지니 하나님의 빛이 영화롭도다

(3) 죄의 깊은 잠과 뜬 세상의 꿈을 어서 깨어나라 나의 친구여 은혜 받은 날과 구원 얻을 때가 지금 온 세상에 선포되었네

 

이번 주 암송구절: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이번 주 읽을 말씀: 욥기 26-42 고린도후서 10-13 시편 120-121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사사기 2:11-23 죄의 사이클

어느 목사님이 큰 꿈을 가지고 목회를 했습니다. 만명을 변화시키는 사역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꿈을 작게 갖고 천명을 변화시키는 목회자가 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100명을 변화시키는 목회자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립니다.

‘변할 자는 저들이 아니라 너다. 네가 변해야 한다’!

이 조크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의 아름다움은 변화에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세상사람들이 교회를 두려워했던 것이 변화에 있었습니다. 도저히 변하지 않을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변화 (transformation)가 가장 큰 충격을 준 곳은 가정일 것입니다.

예수 믿고 아버지가 변화고 어머니가 변화고 자녀들이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는데 변화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명목상 신자일 뿐이고 그 신앙은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변화를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불과 사사기 2장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나안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화가 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삶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의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크리스천의 가정의 진정한 축복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전수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보다 큰 축복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부모 세대가 예수님을 잘 믿고, 자녀 세대가 부모세대의 신앙을 이어받아 더 잘 믿는 가정을 이루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이요, 하나님이 가정을 세우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사기의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다음 세대가 아니라 다른 세대가 등장을 했는데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이 어떤 백성입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이 어떤 일인데 그 일을 모른다니요! 사사기가 수백 년이 지난 후에 벌어진 일입니까?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에 즉 아버지 세대가 죽은 후에 다음 세대인 그 아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백성들이 하나님이 누구신지 전혀 몰랐을까요? 살면서 한 번도 들어 본적이 없었을까요?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하신 일, 애굽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 홍해와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시고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며 가나안의 첫 성인 여리고성이 무너뜨린 일, 백성들은 하나님이 하신 이런 일들을 전혀 몰랐을까요?

여기서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알다’라는 야다라는 말은 관계적이고 체험적으로 안다 것을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나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체험하고 경험을 통해서 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요, 우리의 주인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아버지와 주인과 관계를 가져야 하지만 그런 관계가 전혀 맺여지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 이후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 체험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몸부림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의 신처럼 그냥 신일 뿐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나 관계도 없고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더 이상 하나님이 중심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어떻게 살아갑니까?

가나안 족속들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알 섬기고 아스다롯을 섬깁니다. 그리고 그들이 타협했던 족속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압박합니다. 하나님의 예언처럼 그들이 올무가 되고 가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음란하게 섬기는 가나안 족속들에게 이스라엘을 맡겨버립니다.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팔아버렸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15절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하나님이 악한 족속들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압박합니다. 그 이유는 죄에서 돌이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하자 그들을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사를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그 고통에서 억압에서 빼내어 주는 것입니다.

16절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니

구원을 받은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망각해 버립니다. 다시금 그들의 죄악된 생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17절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죄의 사이클이 형성되었습니다. 죄의 사이클은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그들이 섬기는 나라에 이스라엘을 팔아버립니다. 그럴 때 그 족속들로 인해서 억압과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르짖습니다. 그때 사사를 통해서 구원이 임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시 똑같이 이런 죄의 사이클을 반복하게 됩니다.

죄의 사이클을 보면 변화가 되지 않는 성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성도들은 영의 사람이 아니라 육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전혀 변화가 없는 성도들, 명목상의 크리스천일 뿐입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박제가 되어 버린 크리스천입니다.

이런 성도들도 변화를 입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죄의 사이클이 무너지고 새롭게 변화를 입을 수 있습니까?

변화를 경험할려면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마른 뼈와 같은 사람도 성령이 들어가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님은 예수의 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 심령에 임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변화를 겪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바뀝니까?

인간을 개조하는 이성적으로 납득될만한 것이 있다고 인간이 바뀝니까?

코로나 19를 보아도 인간은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점점 더 음성적으로 타락해 가는 모습을 데이터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바뀔 수 있습니까?

프로그램을 잘 한다고 교회가 바뀌나요? 좋은 장소에 예배를 드린다고 교회가 바뀝니까? 성도들이 많이 모인다고 교회가 바뀝니까?

아무리 인간적인 방식으로 무엇인가 시도해본다고 인간은 바꾸지 않습니다. 죄성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죄악이 남무하는 시대에 죄의 사이클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15-18절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가에 해답니다.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해답은 육의 사람으로는 변화될 수 없지만 성령으로는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할 때 우리 삶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성령을 받자 그들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희미하고 잘 알지 못했던 것들이 성령을 통해서 깨달아지고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삶이 너무나 편안해서 성령님을 찾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체이시기 때문에 강제로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지 않습니다.

가나안 성도가 되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사람이 될려면 간절하게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간절함이 없이는 결코 성령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야고보사도는 야고보서 4장 8절에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구할 때 하나님은 성령을 부으셔서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는 예배 시간을 사모하고 말씀을 보는 시간을 사모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님으로 우리 심령이 충만함을 입을 때 우리 삶은 새롭게 변화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심령에 가득할 때 죄의 사이클은 무너지고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마른 뼈와 같은 심령 위에 성령을 부으사 새롭게 변화시켜 주옵소서.

육의 사람으로 살지 않고 영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늘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며 성령 충만함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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