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끝까지 품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외로움에 시달리는 주의 백성들을 지키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상한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시는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갈바를 알지 못하는 자녀들의 길을 인도하시는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찬송가 347장 허락하신 새 땅에

 

 (1) 허락하신 새 땅에 들어가려면 맘에 준비 다하여 힘써 일하세

     후렴:여호수아 본받아 앞으로 가세 우리 거할 처소는 주님 품일세

  (2) 시험 환난 당해도 낙심말고서 맘에 걱정 버리고 힘써 일하세

 (3) 앞서 가신 예수님 바라 보면서 모두 맘을 합하여 힘써 일하세

 (4) 일할 곳이 아직도 많이 있으니 담대하게 나가서 힘써 일하세

 

이번 주 암송구절: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이번 주 읽을 말씀: 욥기 26-42 고린도후서 10-13 시편 120-121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사사기 1:22-36 타협하면 죽는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정복 전쟁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었습니다.

신명기 7 1-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블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너보다 많고 힘이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것이며. ”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가 죽자 땅은 분배를 받았지만 그 땅에 들어가서 믿음으로 그 땅을 차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없이는 그 땅에 들어가서 살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에 땅에 들어가서 정착할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작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사사기 1장 1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누가 먼저 올라가 가나안 족속과 싸울 것인가를

여쭈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지파가 올라갈지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유다지파가 시므온지파에게 함께 가서 싸우자고 부탁합니다.

유다지파는 시므온지파를 데리고 올라가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동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약속하신대로 유다 지파에게 승리를 가져다 줍니다. 그렇지만 결국 1장 19절, 철 병거를 보고 두려워 하여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들로 인하여 나머지 지파들도 가나안 문화의 영향을 계속 받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지파들이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지 않고 나중에는 그들에게 역공격을 당하는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22절부터 요셉 가문도 가나안 정복에 나서지만 베델을 정복할 때 그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자와 가족들을 놓아 보냄으로써 그들이 헷 사람의 땅에 루스라는 성읍을 건축하게 되고 이들이 죄악된 가나안 문화를 계속 퍼트리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27절에서 36절까지, 여섯 지파가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들과 동거를 선택한 결과 가나안 족속이 그들의 올무가 되어 그들을 괴롭히게 됩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종으로 부리고자 하는 실용적인 생각에서 다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에브라임은 게셀의 족속을 쫓아내지 못합니다.

므낫세가 벧스안, 다이닉, 돌, 이블르암, 므깃도 주민을 쫓아내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을 쫓아내지 않자 가나안 족속은 결심하고 그곳에 거주하였습니다.

스블론은 기드론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강할 때는 가나안 족속이 남아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노역을 하였습니다. 노역을 하게 되니 죽일 필요도 없이 동시에 일을 시켜먹을 수 있으니 좋았습니다. 

아셀은 악고 주민을 비롯하여 몇몇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은 가나안 족속과 함께 거하였습니다. 이것은 쫓아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쫓아내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믿음도 약해지고 합리적으로 볼 때 죽이기 보다 부역일군으로 삼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신 낳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넷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는데 그들이 함께 거주하며 노역을 하였습니다. 

단 자손도 아모리 족속을 다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드디어 아모리 족속은 단 자손을 얕잡아 보고 그들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로 내려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아모리 족속은 단자손이 연약하여 대항하지 못하자 결심하고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습니다. 단 자손은 그들로 인하여 거주의 자유를 잃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역전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진하고 정복의 역사들이 멈추더니 이제는 쫓기는 지파도 생기게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 각지파가 가나안 족속을 7번에 걸쳐 쫓아내지 못하였음을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 쫓아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 명령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힘이 없어서, 전쟁에서 져서 가나안 족속들이 남아 있게 된 것이 아니라, 다 진멸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살려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의 두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불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분명 가나안 족속들을 하나도 살려두지 말고, 어른부터 갓난아이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나안 족속들의 죄가 관영했기 때문에 그들을 심판하여 진멸하고자 하신 것이고, 또한 가나안 족속들이 진멸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남아있게 되면, 틀림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왕래하다가 그들의 문화와 우상에 젖어들 것이 뻔하기 때문에 다 진멸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죽기 직전에 보면 그들의 신앙은 결의에 차 있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열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죽자 그들은 점차로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 식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열심이 식어진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가는 곳마다 가나안 사람들을 다 쫓아내지 아니하고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모습은 결국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으니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무관심하게 되는 것이고, 도리어 자신의 행복과 이기적인 욕심이 하나님의 뜻보다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베푸신 출애굽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없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나, 하나님의 명령이나, 어찌하든지 그 뜻에 순종하여 가나안 족속들을 다 진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라든지 그런 것들이 아예 없었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4-5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촛대를 자리에서 옮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예수님은 너희가 첫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에베소 교회가 처음에는 주님에 대한 사랑과 주님의 뜻에 대한 의무와 충성하고자 하는 열심이 대단했지만, 점차로 그 뜨거움이 식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그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어디서부터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찾아서 다시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처음 신앙을 가졌을 때는 얼마나 감사와 사랑이 충만했습니까? 그때는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충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고 섬기며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그 사명에 온전히 충성하는 모습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까? 사실 그러한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열망이 많이 식어져 있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러한 주님의 뜻에 무관심하면서 그저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만일 이러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향한 첫사랑을 잃어버렸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서부터 떨어졌는지 찾아 발견하여 회개하고 우리 주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해야합니다

두 번째로 그들의 불순종은 그들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심을 따라 타협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을 다 멸하지 않고 남겨두어 그들에게 사역을 시킨 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대단히 성공적인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쫓아내라고 했는데, “에이~ 하나님! 쫓아내지 아니하고 일을 시키면 우리도 좋고 하나님도 좋은 것 아닙니까?”

그렇게 적당히 타협을 한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이것이 좋아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 보기에는 실패인 것입니다.

열왕기상 22:43 에 보면 여호사밧 왕이 나옵니다. 그 왕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여호사밧이 부친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 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여호와 앞에 정직히 행하였다라고 시작합니다. 그런데 뒷부분에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구절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합니까?

“아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니깐 나중에 뒷부분은 좀 잘못해도 괜찮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나 본문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을 그는 제거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그가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99%를 순종했다 하더라도 1%를 타협하면 결국 순종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서는 실패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사람이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두 주인을 섬기게 될 때에는 반드시 적당히 타협하기 때문에 결국은 한쪽으로 치우치는데, 우리의 죄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물질을 섬기게 되고, 하나님보다는 나 자신의 이기적인 것을 섬길 수 있기 때문에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고 딱 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이 어떠합니까? 주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며 살아가십니까? 주와 복음을 위해서 온전히 헌신을 다하십니까? 아니면 혹시 우리가 이 세상과 타협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타협하는 때부터 우리의 신앙은 내리막길이고 결국에는 타협한 것으로 인해서 영적으로 망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연약하여 때로는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의 유혹에 너무 쉽게 빠집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기억하여 주시고 다시금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를 정결케 씻어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며 변명보다 회개를 더 실천하고,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인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내 안에 타협하고자 하는 악한 마음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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