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어제 모다나 백신 1차 접종을 했습니다. 백신을 맞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은 작년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지켜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백신을 맞으면서 절대로 방심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또한 들었습니다. 이제 마스크와 손을 씻는 일을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신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는 바이러스보다 강해서 우리 영혼을 파멸로 몰고 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신을 맞지 않으면 우리는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신은 우리 영혼에 가장 안전한 처방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


1 오 신실 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없네 그 사랑 변찮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같네

 

<후렴> 오 신실 하신 주 오 신실 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 하신 주 나의 구주

 

2 봄철과 또 여름 가을과 겨울 해와 달 별들도 다 주의 것 만물이 주 영광 드러내도다 신실한 주 사랑 나타내네

 

3 내 죄를 사하여 안위 하시고 주 친히 오셔서 인도하네 오늘의 힘 되고 내일의 소망 주만이 만복을 내리시네

 

이번 주 암송구절: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이번 주 읽을 말씀: 여호수아 Joshua 1-12, 요한복음 John 19-24, 시편 Psalms 56-60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생명의 삶 말씀(QT): 출애굽기 1:15-22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구원의 손길

어제부터 출애굽기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출애굽이라는 말은 애굽에서 떠난다는 것입니다. 영어로 ‘Exodus’라는 말인데 이것은 히브리어 제목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70인역에서 따온 제목입니다. 

출애굽기를 묵상할 때 애굽이란 어떤 나라이며 출애급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의 민족이 생기기 전부터 있던 나라입니다. 그리고 민족이 되고 나라가 되고 예수그리스도가 오시고 이세상 끝날까지 이스라엘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나라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곧 애굽은 이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영향을 주는 곳이고 죄가 다스리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탈출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오라 것을 말해줍니다.

교회라고 하는 말이 '에클레시아'라고 하는 원 뜻이 바로 '세상에서 불러낸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끼리 잘먹고 살아라고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구원하여 교회에 불러주셨고 우리에게 영혼 구원의 일을 맡기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출애굽기에는 구원의 목적이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첫째가 "사흘길로 나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지내는 것(출 5:3)" 즉 오직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 내 백성 내소유가 되어 열국의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출19:6)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우상들의 지배를 받고 살았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서 이제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고 세상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무려 4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문제는 이런 애굽문화에서 오랫동안 살다보니 이들에게는 약속에 땅에 대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 애굽에서 살다보니 그들 가운데 노예근성이 자리잡고 있었고, 세상에 눌리고, 패배주의가 팽하고 애굽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애굽에 있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소망도 하나님에 대한 꿈도 없습니다. 사람은 고통을 받고 힘들게 살아도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가지면 그런 곳을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애굽 문화에 동화되어 그곳에 안주하게 되었고 그곳이 바로 그들에게 컴포트존(Comfort Zone)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컴포트존을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출애굽한 후에 그들의 모습에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강제로 그들을 애굽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그들을 이끌지 않으면 그들은 애굽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출애굽을 하는 것은 너무 힘든 것입니다.   

노아의 시대에 방주에 들어 오라고 외쳐도 사람들은 방주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또한 소돔 고모라에서 살던 롯의 식구들을 보아도 절대로 그곳에서 안나오려고 합니다. 천사가 억지로 손을 잡아 끌어내어서 롯과 두 딸만이 구원받고 살았습니다.

구원이란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손을 내밀어서 그들을 죄악에서 건져내야 살 수 있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임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물들어 살아가고 있는 자녀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제 나갈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강권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이 자꾸 늘어나자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을 통제하려고 출산을 억제할 정책을 폈습니다. 중노동을 시키면 인구가 줄어들까 하여 중노동을 시켜도 오히려 인구가 더 늘어나는 것입니다. 바로 왕의 지혜로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왕이 멈추지 아니합니다. 또 지혜를 짜내어서 히브리인의 산파를 불러서 아이를 받을 때 여자 아이면 살리고 사내아이는 죽여 버리라고 합니다. 이러한 왕의 명령에 불복종하면 사형입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히브리 산파는 왕보다도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17절과21절입니다. 

17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의도적으로 어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숨을 내어 놓은 거절입니다. 왕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지만 그들이 왕의 명령을 어긴 것은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데서 나온 것입니다.

바로 왕은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붙잡고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권세로 인간을 제압하고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산파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이 위험한 환경에 처할지라도 그들을 끝까지 붙들어줍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있으며 그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히브리 산파들이 어떻게 담대할 수 있습니까? 그들의 의지로 가능합니까? 아니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강한 마음을 주지 않으면 권력 앞에서 권세 앞에서 두려워 떨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세상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매 순간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왕이 나에게 무엇을 명령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 때 거절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히브리의 산파들이 왕의 명령을 거부해서 사내 아이들을 살려주자 왕이 소환을 합니다. 왜 아이들을 살려 두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 여인과 달라서 아이 낳는다는 말을 듣고 가보면 벌써 낳아 있었기 때문에 죽이지 못했다고 변명을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 여인들이 다 아이를 잘 낳아서 그랬을 리는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무서워 벌벌 떠는 그 왕 앞에서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고 눈에 보이는 세상을 더 두려워하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그러므로 신앙이란 우리 영혼을 파멸할 수 있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경외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들은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갖는 자들은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자들입니다.

왜 그들이 바로 왕의 명령까지도 어길 정도로 히브리 사내 아이를 살 릴 수 있었을까 생각할 때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그들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붙들어줍니다. 죄가 관영하고 세상이 온통 죄로 물들어 믿음의 사람들조차 넘어지는 그런 세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그런 세상에서도 구원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들을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은 출애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역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데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이런 죄악된 세상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이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고 해도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두려워하는 그런 믿음을 가진 자들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붙들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시작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세상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매일 매순간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가 출애굽해야 할 것이 우리 안에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죄악을 회개하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하나님의 은혜의 나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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