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사순절의 마지막 날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보혈은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주님을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는 죄가 깨끗하게 씻김을 받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믿는 자들을 죄에서 자유케 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부활의 영광을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습니다.

죽음이 없이는 부활도 없습니다.

우릴 대신 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께 나아가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찬송가 147 장 거기 너 있었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u6YPJMzLy2I

 

1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님 그 십자가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2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님 그 나무 위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3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해가 그 밝은 빛을 잃을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4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님 그 무덤 속에 뉘일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5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님 그 무덤에서 나올 때    오 그 일로 주께 영광 영광 영광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이번 주 암송구절: 로마서 5:3-5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을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Not only so, but we also rejoice in our sufferings, because we know that suffering produces perseverance, perseverance, character, and character, hope. And hope does not disappoint us, because God has poured out his love into our hearts by the Holy Spirit, whom he has given us.

 이번 주 읽을 말씀: 신명기 Deut. 19-34, 누가복음 Luke 19-24, 시편 Psalms 53-55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생명의 삶 말씀(QT): 마태복음 27:57-66 예수님의 장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님의 시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날이 금요일 오후 3시였습니다. 3시간 후인 6시부터 안식일이 시작이 됩니다.

3시간 정도 남은 아주 긴박한 상황입니다.

유대를 지배하는 나라는 로마이기 때문에 십자가 형이 집행되었을 때 특별히 유대인들이 시체를  요청하지 않으면 그 시체는 로마법에 적용되어 십자가에 그대로 매달아 놓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십자가형은 로마 제국에 반역을 일으킨 노예들이나 사형수들을 본보기로 처형한 형벌이었기 때문에 반역자들의 비참한 최후를 드러냄으로 다른 이들에게 엄중히 경고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십자가 상의 시체는 며칠씩 짐승의 밥이 되도록 방치해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의 관습으로는 시체는 밤을 세울 수 없습니다.(신 21: 22. 23). 더욱이 3시간이 지나면 안식일이 되기 때문에 시체를 속히 장사 지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자 유대종교지도자들은 그 다음날이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예수의 시체를 치워줄 것을 빌라도에게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에서 내려졌고, 이제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장례가 가족이나 제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 즉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예수님의 제자에 의해서 거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비상한 시국에서는 비상한 사람들을 일으켜 사용하십니다.

비상한 때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납니다. 비상하지 않을 때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사람들이 비상한 때가 되면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하나님을 위해서 위협과 맞서고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를 위해서 뛰기 시작합니다. 이들을 가리켜 숨겨진 제자라고 부릅니다.

아리마대 요셉에 대해서 마가복음 15장 43절은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요셉은 처음부터 예수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예수님을 믿고 그의 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숨기고 살았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유대인이 두려워서”라고 명백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며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그는 유대인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공개적으로 말을 했다가는 출교가 될 수도 있고, 재산을 빼앗길 수도 있으며, 공회원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믿음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처음에서 자신이 주님의 제자임을 숨기고 있었지만 주님이 죽으시자 그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는 당돌하게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가서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합니다. 이제는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약할 때는 우리도 신앙을 숨길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크리스천의 정체성과 믿음에 대하여 절대 부끄러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부끄러워하면 주님도 우릴 부끄러워하시고, 우리가 주님을 자랑하면 주님도 우리를 자랑하게 되실 것입니다. 

그럼 아리마대 요셉이 공개적으로 믿음을 표명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의 마음 속에 ‘예수님이 메시아이시다’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아니라고 도망가고, 심지어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까지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며 외면을 한 상황인데도, 그는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빌라도에게 당돌히 나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담대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설명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린다는 표현은 구원의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신 그 예수가 자신이 기다리던 메시아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하여 고대하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확신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자신의 부유함도, 자신의 권력도 하나님 나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고 주님께 대한 그의 마음을 공개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다 두려워하고 심지어 죽은 자의 시체를 만지면 부정하다고 생각하여 시체를 피하는 상황에서 그는 예수님의 시체를 바위 속에 판 자신의 새 무덤에 안치했습니다.

그 무덤이 누구의 무덤입니까? 바로 아리마대 요셉 자신의 새 무덤이었습니다.

60절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이스라엘의 무덤은 주로 바위 안에 있었는데요 당시 서민들은 누군가가 사용한 무덤을 다시 잘 정리해서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 관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자신의 장례를 위해서 판 새 무덤을 예수님께 드린 것입니다.

구약에서 강조하는 드림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언제나 첫 번째 것입니다. 첫 소산, 첫 새끼, 처음 거두어 들이는 것들입니다. 또 새 것입니다. 그리고 제물에 흠이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을 위해서 판 새무덤을 주님께 자원해서 드렸습니다. 

최상의 것, 새것을 가장 먼저 주님을 위해서 드린 것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의 새 무덤을 주님께 헌신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저 이름 없는 무덤이었을 그곳이 바로 인류를 구속하는 찬란한 부활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자기 자신 만을 위해 사용했다면 그저 하나의 무덤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내드린 무덤이 구속의 역사에 빛나는 부활의 생생한 현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실현하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이렇게 새 무덤을 주님께 드린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장례식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성경에서 예언하신대로 모든 것들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신구약 성경이 조명하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성경은 나에 대해 말한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 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오심, 고난, 십자가에서 죽으심, 장례까지도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의 장례도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사야 53: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례에 부자가 참여했다는 것을 예수님 오시기 칠백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예언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 말씀 그대로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짜 신앙은 어려울 때 드러납니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변함없이 신앙의 길을 걷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유명한 장군은 전쟁터에서 배출되고, 충신은 국가가 풍전 동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드러나고, 참된 친구는 어려울 때 알아볼 수 있으며, 진실한 성도는 고난과 핍박이 몰려왔을 때에 확연히 드러납니다

어려운 순간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짜 믿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시금석과 같습니다.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3일만에 부활하셨고 주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살면 우리는 상황과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생명의 주인이요 나의 구원자임을 굳게 믿고 산다면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그런 상황에 지배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신데, 나의 주인이신데, 무엇이 두렵고 무섭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어려운 때일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이시고 구원자로, 구세주로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려울 때 진정한 진가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처럼 그렇게 주님을 위해서 일어나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선포하고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말로만 나는 예수님의 제자다라고 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어떤 상황에도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구주로 믿고 주님을 세상에 알리고 전하며 주님을 섬기고 헌신하는 참된 예수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같은 죄인을 사랑하여 생명을 주신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진실되게 사랑했던 아리마대 요셉처럼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헌신하고 담대히 믿음을 드러내는 참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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