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사순절의 38일째입니다. 주님은 사형을 당할만한 죄를 짓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이유는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보혈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주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 험한 십자가를 친히 지신 것입니다.

고난주간에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더욱 묵상하시면서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은혜를 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찬송가 150 장 갈보리 산 위에

https://www.youtube.com/watch?v=ncbyuowTBWg

 

1 갈보리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림이라

 

<후렴>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2 멸시 천대 받은 주의 십자가에 나의 마음이 끌리도다 귀한 어린양이 세상 죄를 지고 험한 십자가 지셨도다

 

3 험한 십자가에 주가 흘린 피를 믿는 맘으로 바라보니 나를 용서하고 내 죄 사하시려 주가 흘리신 보혈이라

4 주님 예비하신 나의 본향 집에 나를 부르실 그 날에는 영광 중에 계신 우리 주와 함께 내가 죽도록 충성하리

 

이번 주 암송구절: 로마서 5:3-5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을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Not only so, but we also rejoice in our sufferings, because we know that suffering produces perseverance, perseverance, character, and character, hope. And hope does not disappoint us, because God has poured out his love into our hearts by the Holy Spirit, whom he has given us.

 이번 주 읽을 말씀: 신명기 Deut. 19-34, 누가복음 Luke 19-24, 시편 Psalms 53-55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생명의 삶 말씀(QT): 마태복음 27:27-44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빌라도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으신 예수님은 로마 군병들의 손에 넘겨져 엄청난 멸시와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께 왕들이 입는 홍포를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씌웠으며 그의 손에 훌 대선에 갈대를 쥐어 주고 왕께 경배하는 흉내를 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돌아가며 예수의 머리를 쳤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조롱을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동원되어 주님을 희롱합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42)”

우리를 놀랍게 하는 것은 군병들과 종교지도자들의 조롱과 멸시가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은 인신공격이나 조롱과 멸시를 묵묵히 참고 견디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께 받으신 권세와 능력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자연을 다스리시는 권세, 죽은 자를 살리는 권세, 천군천사를 부를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계시는 주님이 힘없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군인들의 조롱과 멸시를 다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왜 이런 멸시와 조롱을 참으신 것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아는 사람들의 조롱과 질고를 당하는 메시아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구약에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300개가 넘게 나옵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야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메시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아는 사람의 죄를 친히 담당하시는 메시아입니다.

이사야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멸시를 받고 슬픔을 당하시며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이 고통을 당하신 이유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당하신 조롱과 멸시는 우리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그마한 조롱과 멸시를 받으면 참지 못하고 반드시 되 값아 주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참기 어려운 조롱과 멸시를 다 참으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우리 때문에 이런 고통을 당하신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빌라도 법정에서부터 처형되신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길은 ‘비아 롤로롯사’ (Via dolorossa), 곧 ‘고난의 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그 길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서 끌고 가다가 구레네 사람 시몬을 장제로 붙잡아서 예수 대신에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십자가는 로마 시대에 최고의 형벌이었습니다. 5천건이 넘게 보고될 정도로 로마는 정복한 곳마다 대항하는 자들, 살인자들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십자가는 수치의 상징이요 저주의 상징입니다.

시몬이라는 사람은 구레네 출신인데 구레네는 지금의 아프리카 북쪽 해안 지방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유월절을 지키려고 올라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그는 강제로 붙잡혀 십자가를 진 것이 속으로 가문의 수치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시는 주님을 보면서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시몬은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십자가를 졌지만 억지로 진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5장은 21절은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바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라고 시몬의 자녀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크게 쓰임받았던 알렉산더와 루포입니다.

시몬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주님을 만났고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십자가는 수치와 저주가 아니라 영혼이 구원을 받는 축복이 되었습니다. 시몬의 구원으로 인해서 온 가족이 구원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로마서 16장 13절에 바울은 시몬의 가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우리들은 힘이 들어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 시작하면 이 때 믿음이 생기고 주님을 진실로 알게 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지기 힘들지라도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되고 주님으로 인해서 풍성한 삶을 또한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군병들이 고통을 완화시키는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약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의 고통과 고난을 맨 정신으로 묵묵히 끝까지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질을 통해서 온 몸이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군병들은 예수님의 두 손목과 두 발목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형은 인류가 고안해 낸 형벌 중에서 가장 악독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총살이나 단두대형은 순간적으로 그 고통이 끝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면 2,3일 동안 무서운 죽음의 고통을 맛보다가 기아와 갈증으로 진이 빠져 죽는 것입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십자가에 못 박힌 후부터 죽기까지 1,000번 이상 까무러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무서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세울 때 몸을 지탱할 수 있도록 손바닥이 아닌 손목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손목에는 손으로 들어가는 신경이 모여 있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군병들은 무자비하게 예수님의 손목과 발목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붉은 피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사지가 뒤틀리고 온 몸에 경련이 일어났습니다. 못을 다 박고, 십자가를 일으켜 세우자 체중 때문에 손목과 발목의 상처가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시편 기자는 22편 14-15절에서 그 고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습니다.

나는 같이 쏟아졌으며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마음은 밀랍 같아서 속에서 녹았으며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예수님은 이처럼 극도의 고통 속에서 천천히 죽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냥 죽음 가운데 내어 주신 것도 아니고 이렇게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셨을까요? 

왜 이런 수치를 당하시며 예수님은 죽으셔야 했을까요? 

이는 우리의 죄가 이렇게 혹독하고 아픈 대가를 요구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의 대가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죄의 시작은 달콤할지 모르지만 후에는 끔찍한 아픔과 수치를 요구합니다. 

로마서 6: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물고 놓아주지 않으며 십자가 형벌과도 같이 고통스럽고 길게 우리를 죽여 가는 것입니다.죄는 끈질깁니다. 지독합니다. 죽을 때까지 우리를 놓아 주려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주님은 지독하고 혹독한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이사야 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예수님의 징벌과 슬픔을 가볍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은 이 고질적인 죄 안에 무시무시한 채찍이 있습니다. 잠시 나를 달콤하게 해 주는 그 죄 안에 우리 인생을 고질적으로 병들게 하고, 변화되지 못하게 하는 채찍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형벌은 결코 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만큼 나의 죄악이 지독하고 심각한 죄임을 우리는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받기 위해서 함께 모여 예배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십자가 사랑을 통해 치료 받고 싶고 변화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로마 군병이 들고 있는 채찍 때문에 고통 받는 예수님이 아닌, 내가 놓질 못하는 이 끈질긴 죄악의 채찍 죄악의 못을 발견해야 합니다. 

또한 이 지독한 죄악에서 내가 놓이기를, 치료 받기를 원하시는 간절한 마음 가운데 지독하고 긴 고통의 시간을 버티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변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죄가 우리보다 훨씬 강하고 지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그 죄의 지독함보다 예수님의 죄인을 향한 사랑이 훨씬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지독하게 채찍에 맞으시고, 못 박힘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처절하게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깊이 덧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죄를 이기는 변화가 시작됩니다. 

죄인들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시고자, 구원을 주시고자 나음을 주시고자 그 모진 고통을 온전히 감당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주님께서 온갖 고통과 질고와 멸시를 다 당하셨지만 끝까지 인내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참고 견디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우리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참된 평화와 구원을 주기 위해서 참고 견디심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힘들 때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십자가의 은혜로 구속받았음을 늘 믿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을 알리고 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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