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사순절의 36일째입니다. 주님은 죄가 전혀 없었지만 종교지도자들은 신성모독이라는 죄목으로 유대총독 빌라도에게 고발합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는 과정은 온통 음모와 불의와 사악함으로 가득합니다. 이것이 죄인들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이런 부당함과 죄악을 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진정으로 회개하는 은혜가 일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는 자만이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찬송가 272 장 고통에 멍에 벗으려고 

 1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갑니다 자유와 기쁨 베푸시는 주께로 갑니다     

    병든 내 몸이 튼튼하고 빈궁한 삶이 부해지며 죄악을 벗어 버리려고 주께로 갑니다

 

2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갑니다 십자가 은혜 받으려고 주께로 갑니다    

   슬프던 마음 위로받고 이생의 풍파 잔잔하며 영광의 찬송 부르려고 주께로 갑니다

 

3 교만한 맘을 내버리고 예수께로 나갑니다 복되신 말씀 따르려고 주께로 갑니다    

   실망한 이 몸 힘을 얻고 예수의 크신 사랑 받아 하늘의 기쁨 맛보려고 주께로 갑니다

 

4 죽음의 길을 벗어나서 예수께로 나갑니다 영원한 집을 바라보고 주께로 갑니다    

   멸망의 포구 헤어나와 평화의 나라 다 다라서 영광의 주를 뵈오려고 주께로 갑니다


이번 주 암송구절: 로마서 5:3-5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을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Not only so, but we also rejoice in our sufferings, because we know that suffering produces perseverance, perseverance, character, and character, hope. And hope does not disappoint us, because God has poured out his love into our hearts by the Holy Spirit, whom he has given us.

이번 주 읽을 말씀: 신명기 Deut. 19-34, 누가복음 Luke 19-24, 시편 Psalms 53-55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생명의 삶 말씀(QT): 마태복음 27:1-10 예수 죽이기에 참여한 무리들

오늘 말씀은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무리들의 악한 모의와 행동들을 보여줍니다.

첫째는 대제사장들과 유대 장로들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가롯 유다입니다.

이들의 목적은 오직 예수 죽이기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볼 때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대제사장과 유대 장로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분주합니다.

그들은 산헤드린 공회 소속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주님을 죽이기 위해서 새벽부터 모였습니다. 공회의 정식 회의는 낮에 모이는데 실제로 산헤드린 공회가 실제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이 새벽에 모여서 모의를 하고 유다 총독 빌라도에게 사형 집행을 요구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의 손에 맡겨놓았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십자가에서 죽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인데 어떻게 십자가 형을 언도받을 수 있습니까?

그 당시 팔레스틴은 로마 제국의 속국이었고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 황제가 세운 유대 총독이었습니다(눅 3:1). 그들은 새벽에 예수님을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에게 넘겼습니다. 그 악한 자들은 악을 도모하고 실행하기 위해 밤에도 이른 새벽에도 분주하였습니다.  사탄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이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긴 첫번째 이유는 당시에 그들에게는 죄수를 사형시킬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8:31에 이 부분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두번째 이유는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있어서 백성들의 비난을 피하려 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이 일을 위해 로마 총독의 권세를 이용했던 것입니다. 저 타락한 종교인들은 로마 총독 빌라도를 이용하여 죄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이는 일에는 세상의 악한 무리들을 이용했습니다.

Google을 이용하여 관심이 있는 분야를 치면서 그 후에는 비슷한 것들이 계속 뜨게 됩니다. Google에 적용되는 것이 알고리즘인데요 주님의 십자가 형을 집행하는데 이런 알고리즘이 형성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죄는 주님을 십자가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로 가는 과정에는 악한 자들이 서로 한패가 되어 주님을 죽이는 일에 담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빌라도와 대제사장 그리고 유대의 장로들은 서로 대적관계에 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주님의 십자가형을 집행할 때 한패가 되었던 것입니다.

두번째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한명인 가롯 유다입니다.

이때 가롯 유다는 주님을 판 것을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유다에게도 일말의 양심은 살아 있었습니다. 돈에 대한 탐욕 때문에 양심이 마비되었을 때는 3년 간 따르던 주님을 배반할 수 있었지만, 이제 그 양심이 깨어나니 그의 행동을 후회하게 된 것입니다. 은 30으로 인한 잠시 동안의 기쁨보다 양심의 고통은 더 컸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한 행동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받은 돈을 가지고 다시 그들에게 돌려주면서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4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는 예수님에 대해서‘무죄한 피’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는 이 말을 통해 예수님의 무죄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은 화인 맞은 양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했던 행동에 대해서 조금도 미안한 마음이나 후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죄는 더 큰 것입니다.

유다는 은을 성소에 던져넣고 스스로 목매어 자살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18에는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유다가 자살한 것을 보면, 그의 후회는 회개는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에 대해서 후회는 하지만 진정한 회개에는 이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왜냐하면 참된 회개는 자신의 죄악된 행위만 슬퍼하는 것이 아니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죄악된 길을 멈추고 의로운 길, 하나님의 방향으로 삶을 옮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심령은 새롭게 거듭나는 은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관계가 깨지고 단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닫힌 문을 열게 하는 최고의 비결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만이 관계의 단절을 막을 수 있습니다.

회개하는 자는 사랑과 용서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의 삶은 새롭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만약 회개를 했는데 죄책감이 다시 든다든지 마음이 다시 죄로 눌리는 경험을 하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죄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에게는 적어도 세번의 회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주님께서 직접 “이 떡 조각을 받은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했을 때입니다. 가룻 유다는 자신이 대제사장들을 만나서 주님을 팔았던 것이 들통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둘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네가 입맞춤으로 나를 파느냐”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을 때입니다. 주님은 가롯 유다의 행동을 직접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가롯 유다의 양심은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회개의 기회를 가졌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리지 못했습니다.

셋째는 예수가 빌라도에게 끌려가서 십자가에 못박히기로 결정된 후 그것이 죄악인줄 알았을 때였습니다. 그때 유다는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습니다. 그는 후회는 했지만 회개하지 않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가룻 유다의 자살은 어떤 것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였습니다. 믿는 사람의 자살은 절대적으로 용납되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의 제자 가롯 유다가 3년동안 주님과 지내면서 어떻게 친밀한 교제를 나누지 못했을까하는 부분입니다. 무엇 때문에 가롯 유다는 주님을 팔려고 했을까요? 그리고 무엇이 자신이 주인처럼 섬기던 예수님을 팔게 했을까요?

그는 은 삼십에 주님을 팔고 난 후 죄책감 때문에 회개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비극을 연출했습니다.

많은 크리스천들 중에는 회개와 후회를 같은 것으로 착각하여 가롯 유다와 같이 후회는 하되 회개에는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죄를 범하고 그 죄로 인해 고통당할 때 후회하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런 분이 계신다면 속히 후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회개에 이르러야 합니다. 자기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걸어온 삶을 뒤로하고 주님께로 방향을 돌려서 주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가롯 유다가 성소에 던져놓고 간 은 삼십은 대제사장의 악한 행동을 더 드러나게 했습니다.

6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7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그들은 은 삼십을 핏값이라고 불렀는데 즉  ‘예수의 피’ (4절)를 팔아 얻은 돈이라는 뜻입니다. 불의한 핏값인 은 30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신명기23 : 18 에 근거해서 자신들이 한 행동이 잘못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제사장들은 창기의 번 돈과 개같은 자의 소득은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못한다는 율법의 규례에 따라 그들의 헌금을 돌려주거나 혹은 사회적 자선금으로 운용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유다의 돈을 성전고에 넣어 두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결정한 것은 결국 그들의 행위가 옳지 못했음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들은 성전이 더러워지는 것은 두려워하면서도 무죄한 피로 자신들의 양심이 더러워지는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던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부당하게 십자가 형을 받게 된 것입니다.

대제사장들 그리고 유대 장로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입니다. 또한 가롯 유다는 주님을 판 것에 대한 후회는 했지만 회개하지 못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죄인들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죄인들의 음모와 담합으로 인해서 주님이 십자가로 내몰렸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우리 안에 있는 죄들입니다. 우리의 죄가 주님을 십자가로 내몰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 자신들의 죄악들을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키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죽이기 위한 사탄의 모의를 보았습니다. 사탄 마귀들은 주님을 죽이는데 악한 무리들을 동원하고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인 가롯 유다의 마음에 악한 마음을 심어 놓았습니다. 주님을 죽이는 무리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쉽게 죄에 빠지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를 지을 때 후회로 끝나지 않고 참된 회개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무엇보다도 우리의 죄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을 기억하며 늘 회개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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