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사순절의 34일째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2000년 전의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념하여 종려주일(Palm Sunday)를 지키게 됩니다. 내일은 종려주일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모리앗 산, 여부스 족들이 살고 있었던 시온 성인 예루살렘으로 주님은 입성하십니다. 인류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과 징계를 직접 받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내일은 종려주일 입니다. 내일은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서 성찬을 함께 나눌려고 합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고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255장 너희 죄 흉악하나 

1 너희 죄 흉악하나 눈과 같이 희겠네 너희 죄 흉악하나 눈과 같이 희겠네 죄의 빛 흉악하나 희게 되리라

   주홍 빛 같은 네 죄 주홍 빛 같은 네 죄 눈과 같이 희겠네 눈과 같이 희겠네

 

2 악한 죄 벗으라고 주님 너를 부르네 악한 죄 벗으라고 주님 너를 부르네 하나님 크신 사랑 한이 없어라

   악한 죄 벗으라고 악한 죄 벗으라고 주님 너를 부르네 주님 너를 부르네

 

3 너희 죄 사해주사 기억 아니하시네 너희 죄 사해주사 기억 아니하시네 불쌍한 사람들아 오라 하시네

   너희 죄 사해 주사 너희 죄 사해 주사 기억 아니하시네 기억 아니하시네

 

이번 주 암송구절: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Therefore, since we have been justified through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이번 주 읽을 말씀: 신명기 Deut. 1-18, 누가복음 Luke 16-18, 시편 Psalms 48-52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생명의 삶 말씀(QT): 마태복음 26:47-56 체포당하신 예수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것은 죄인들을 위한 대속 제물로써 십자가 고난을 감당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눅 22:44) 기도하셨습니다. 그렇게 기도하실 때 십자가를 지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더욱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라 함께 가자” 하시며 기도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기도로 용기를 얻고 십자가를 지기위해 앞서 나가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어려움 앞에서도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들은 절대 실망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을 때는 상황에 눌리고 낙심이 되고 실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자들은 절대 절망하지 않습니다. 사면이 막혀 있어도 하늘은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려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기 때문에 담대하게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과 말씀하실 때였습니다. 유다는 칼과 몽치로 무장한 군사들을 대동하고 나타났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다가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친밀하게 인사하며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 입맞춤은 군사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도록 미리 정한 신호였습니다. 유다의 입맞춤을 신호로 중무장한 군병들이 예수님을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당황하지도 않고, 아무런 저항도 없이 순순히 잡히십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아무 저항없이 잡히셨습니까?

54절을 보면 왜 그렇게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예수님은 성경을 이루시기 위해  자발적으로 잡히셨습니다.

우리가 공관복음을 보면 주님의 권세와 능력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주님은 기도를 통해서 인간이 할 수 없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큰 능력을 행하시며 많은 사람들을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거친 풍랑도 “잠잠하라 고요하라”(막 4:39)는 말씀으로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나병환자, 중풍병자 등 어떤 환자가 올지라도 손을 대시며 그들을 깨끗이 치료하셨습니다. 군대귀신에 들려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사람도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심지어 죽은 지 사흘이 지난 나사로에게 말씀으로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 무덤에서 살아 나왔습니다.

유다가 왜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서 칼과 몽치로 중무장한 군사들을 동원하고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저항도 하지 않고 그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저항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칼을 빼든 베드로에게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칼을 가지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마음만 먹으면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여 하늘의 모든 천군 천사를 동원하여 원수들을 쓸어버릴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같은 사건을 다룬 요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이 당할 일을 아시고 군사들 앞으로 나아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하자 주님이6절에서 “내가 그니라”라고 대답했을 때 예수님을 잡으러 온 군사들이 도리어 예수님의 권위 앞에 물러나 땅에 엎드러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권능으로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 하시고 당당하게 체포당하셨습니다.

왜 주님이 이렇게 힘도 쓰지 않고 체포되었는지 생각하면서 주님의 교훈을 받아야합니다.

첫째, 주님은 온전히 성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오신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메시아이시기 때문에 능력과 권능을 가지셨지만 주님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주님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기억했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가진 능력과 권세를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순종하는데 사용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 무기력하고 힘이 없는 메시아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을 구별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주님이 체포되시는 순간에 베드로는 주님을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주님을 가장 사랑한 제자였을 것입니다. 주님이 잡히시는 순간에 베드로는 인간적인 힘으로 주님을 지켜주고 싶었는지 칼을 뽑았습니다.

베드로는 왜 칼을 빼들었습니까? 베드로가 정말 주님을 위해서 칼을 들었을까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가족과 재산을 버려두고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며 존경했고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직 인간적인 야망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아직 자기 의와 자기 꿈과 야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변화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야망과 꿈을 포기하지 못한채 인간적으로는 열심히 주님을 따르는 자 같지만 그의 삶에 변화를 체험하지 못한채 주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우정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주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실 때 그는 예수님을 책망하여 “그리하지 마옵소서”(마16:22)하며 말로 하나님의 뜻을 꺾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베드로는 아직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사람의 일, 자기의 이익을 생각하는 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는 없었습니다. 하니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 자들은 칼을 뽑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순간이 찾아오면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도망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며 사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영적으로 기도해야 할 때 깨어있지 못하면 세상의 칼을 뽑아서 마구 흔들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을 절대로 혼동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포박하는 무리들에게 체포를 당하신 이유는 이 일이 성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임을 아시고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동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 6-8)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사람입니다.

둘째로 주님은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실 때 공생애 기간동안 같이 생활하다가 배반한 가롯 유다와 주님을 버리고 떠나간 제자들을 향해서 한 마디의 불평이나 원망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이런 상황을 미리 기도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늘 기도로 준비하는 자들은 사람을 원망하거나 비판하지 않습니다.

코로나 팬더믹을 경험하면서 교회를 향한 비난과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여기저기서 악한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교회가 코로나의 온상지가 된 것처럼 원망과 비판을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교회에 대한 인격적인 공격, 악한 말들, 남을 원망하고 헐뜯는 일이 많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원망이 없으신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잘못하면 사탄에게 속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를 분열시키기 위해서 사람의 마음 속을 사탄이 장악합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기도하면서 이런 상황에 당황해서는 안됩니다.

성도는 자신의 삶속에서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이 닥친다고 할지라도 기도를 하되 절대 원망하거나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원망이나 불평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세번째,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확증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쓴 것입니다(요 5: 39). 그래서 구약 성경은 이 땅에 메시아가 오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죄인들의 손에 팔리우고 죽으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 50:6;53:12). 바로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체포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를 확증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성경이 기준이었습니다. 성경대로 이 세상에 오셨고, 성경대로 사셨고, 성경대로 기적을 행하셨고,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성경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전 생애를 통해서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말씀대로 태어나셨습니다.

이사야 7:14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예수님의 나심을 예언하였습니다.

미가서5:2에서도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마1:23, 2:5,6)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는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이는 스가랴 9:9보라 네 왕이 내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도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6: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생애 모든 순간을 말씀을 이루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께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메시아로 오셨고 메시아로 사셨고 말씀대로 철저하게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삶이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체포당하실 때도 어떤 망설임도 없이 당당하게 자신을 내 놓았습니다.

이사야는 이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도살장에 끌려가 죽임을 당하는 어린 양처럼 십자가를 기꺼이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 후에 잡히신 것은 철저히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순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56) 이것이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성경을 이루시고자 하신 모습, 삶의 마디 마디마다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내어 드린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도록 그렇게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 사역을 감당하셨듯이 이제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온갖 멸시와 수모를 견디셔야만 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친히 감당했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믿음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주님은 자신의 뜻을 내려놓았습니다.

이런 부당함에도 주님은 어느 누구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며 기꺼이 십자가를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주님의 믿음을 닮고 주님의 결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찾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뜻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주님의 삶을 본받게 하시고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며 주님이 기준을 삼은 것을 따라가서 저희들도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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