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사순절의 33일째입니다. 고난없는 영광은 없습니다(No cross, no crown). 주님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더욱 가까이 나아갑니다. 주님의 고난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이 없었다면 우리에게는 참된 구원이나 자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

1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 내 주여 뜻대도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이번 주 암송구절: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Therefore, since we have been justified through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이번 주 읽을 말씀: 신명기 Deut. 1-18, 누가복음 Luke 16-18, 시편 Psalms 48-52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생명의 삶 말씀(QT): 마태복음 26:36-46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를 마친 후에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순종의 기도였습니다.

주님은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36)”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 사이에서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37-38)” 

예수님은 매우 고민하고 슬퍼하시며 죽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my soul is overwhelmed with sorrow to the point of death” 라고 했습니다.

“내 영혼이 슬픔에 짓눌려서 죽을 지경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얼마 후에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야만 하기 때문에 너무나 마음이 힘드셨습니다.

사람은 건강 진단을 받고 결과를 기다릴 때 얼마나 긴장이 되고 두렵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다 뒤집어쓰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만 합니다.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히고, 십자가 매달려 물과 피를 다 쏟고 죽어야만 합니다. 온갖 수치와 모욕, 조롱을 다 당하고 처참한 모습으로 숨을 거두어야만 합니다. 자신에게 죄가 있어서 그런 형벌을 당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 죄인들을 위해서 이런 죽음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마음이 힘들겠습니까? 

영적으로 육적으로 심히 고민되고 갈등이 되고 힘드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고민과 슬픔을 피하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가셔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39)” 

예수님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복종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힘들고 어렵지만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자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겟세마네는 ‘기름을 짜는 틀’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올리브기름을 짜듯이 심령을 쥐어짜며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44절에 보면 예수님이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든지 그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와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마음을 다 쏟아 부어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어떤 기도를 하셨습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내 아버지여” 하며 부르셨습니다. “My Father!” 예수님은 이 힘든 순간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 때는 “내 아버지여” “아빠 아버지” 이렇게 다정하게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잔을 내어 미시는데 그때도 “내 아버지여” 이렇게 부를 수 있을까요?

“하나님, 꼭 이렇게 하셔야만 합니까?” 그렇게 따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전폭적으로 신뢰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선하게 인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무조건 신뢰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38,39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망이나 생명이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전폭적으로 신뢰할 때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탄은 할 수 있는대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신뢰의 관계성을 깨뜨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에나 하나님을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로 믿고 신뢰하고 주님앞에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고난의 잔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솔직하게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있기에 고난의 잔을 받아 들일 때 기도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잔이 얼마나 무섭고 힘든 잔인가 아셨기 때문에 하실 수 있으면 그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주 솔직한 토로입니다. 자녀가 사랑하는 아버지 앞에 할 수 있는 특권은 자신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토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런 우리의 토로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너무나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고뇌와 투정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해서 자신의 뜻을 내려놓았습니다.

39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이는 위대한 반전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위대한 자기부인입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위대한 순종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적으로는 죽음의 쓴 잔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을 온전히 내려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고자 결단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우리 안에는 항상 두 가지의 원하는 바가 갈등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 인간적인 자아는 내 원대로 하고 싶습니다. 얼른 생각해 보면 내가 원하는 바가 더 좋아 보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마음에 들지 않고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사람은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을 하며 계산을 합니다. 이게 좋은가? 저게 좋은가? 이렇게 하는 것이 내게 유익한가? 저렇게 하는 것이 내게 유익인가?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계산하기보다 기도를 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기도의 싸움을 싸웁니다. 예수님도 갈등하신 것을 보면 이 싸움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42)” 

첫 번째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를 부인하고자 하는 몸부림치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적극적인 기도였습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어쩔 수 없어서 운명적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인류의 죄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따르고 순종하기 원하셨습니다. 44절에 보면 예수님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마음으로 온전히 따르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하신 것을 말합니다.

그렉 로리 목사는 그의 책 『하나님의 뜻을 품는 씨름 기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꺼이 붙잡는 것이다. 하나님과 씨름하지 말고 하나님의 품에 안겨라” 

어떤 사람은 기도를 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뜻과 계획을 정해놓고 줄기차게 하나님께 요구합니다. “하나님, 이거 해 주세요” “저거 해 주세요” “이 문제는 반드시 이렇게 해결해 주셔야만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청구서를 내밀고 싸인만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그런 차원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한 몸부림치는 기도였습니다. 그 길이 엄청난 고난의 길이요, 죽음의 길인지만 그 길이 인류 구원의 길임을 아셨기 때문에 그 뜻을 영접하고자 몸부림치며 기도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5:7-9절은 예수님의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순종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자신의 꿈과 이상을 내려놓는 슬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종은 아픔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후에는 인류구원이라는 의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활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도록 피땀 흘려 기도하셨는데 외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나, 사형을 언도하는 빌라도가 변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군병들이 순한 양처럼 바뀐 것도 아닙니다. 가룟유다의 마음이 변한 것도 아니고, 제자들이 주님을 위해서 용기를 낸 것도 아닙니다.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이 얻은 것은 자신을 이기신 것입니다. 순종하고자 결단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기꺼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죽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기에 기꺼이 순종하셨습니다. 죽음 후에 부활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기도는 이처럼 더 깊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려주는 비밀계단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간절히 기도하셨을 때 예수님 마음에 모든 두려움, 걱정 근심, 고민이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소원으로 충만해지셨습니다. 

그래서 45-46절에 보면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배반자에게 팔려서 십자가에서 죽으러 가시는 길이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인류의 죄문제를 해결하고, 부활하셔서 영광에 이르실 것을 바라보셨습니다. 당장은 패배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승리의 면류관을 쓰실 것을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십자가의 잔을 마시러 가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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