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사순절의 30일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면 40일동안의 긴 믿음의 여정을 함께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더더욱 40일간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10일은 고난의 절정으로 가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이런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찬송가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https://www.youtube.com/watch?v=WHHq_GiyAQA

1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예수님 닮기 원함이라 예수님 형상 나 입기 위해 세상의 보화 아끼잖네

<후렴> 예수님 닮기 내가 원하네 날 구원 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지금 곧 오사 주님의 형상 인치소서


2 무한한 사랑 풍성한 긍휼 슬픈 자 위로하시는 주 길 잃은 죄인 부르는 예수 그 형상 닮게 하옵소서

3 겸손한 예수 거룩한 주님 원수의 멸시 참으시사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은 구주를 닮게 하옵소서

 

이번 주 암송구절: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Therefore, since we have been justified through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이번 주 읽을 말씀: 신명기 Deut. 1-18, 누가복음 Luke 16-18, 시편 Psalms 48-52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생명의 삶 말씀(QT): 마태복음 25:31-46 양과 염소의 비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세상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결과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은 의의 심판을,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불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 아주 두려운 말씀입니다. 죽음 후에는 의인과 악인이 구분이  됩니다.

오늘 말씀에는 의인은 양으로 악인은 염소로 비유되어 있습니다.

이 비유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심판의 날에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천국을 준비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지 같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양과 염소의 비유는 말세 때에 영원한 구분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31, 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터인데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시고 각각 구분하신다고 했습니다.

구분하시되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그 왼편에 두신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는 모든 사람이 함께 섞어서 삽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공존하듯이 이 세상에는 선인과 악인이 함께 섞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영원토록 함께 섞여서 살 것처럼 생각합니다. 자신의 허물과 죄가 잘 드러나지 않고 이리저리 숨어서 교묘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항상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언젠가 인생의 마지막은 오고, 그때가 되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구분이 되는 순간이 옵니다.

양이냐 염소냐, 영생이냐 영벌이냐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목자들이 낮에는 초원에서 양과 염소를 함께 방목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반드시 구분하여 다른 곳으로 인도합니다. 중동지방에서는 밤에 기온이 내려가서 춥기 때문에 양들은 서로 붙어 있어서 체온을 같이 나누는데 유익합니다. 그러나 염소는 같이 있지를 못하고 들이 받기 때문에 같이 두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은 양의 우리로 염소는 염소의 우리에 따로 구분해서 들어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양과 염소는 마지막 날에 구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서는 주님을 믿는 자들이기 때문에 양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양처럼 살지 못하고 여러 번 실패를 합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양처럼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 심판은 그야말로 마지막입니다.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철저하게 주님을 믿는 백성으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신실하게 감당하지 못하면 죽고 나면 그 삶의 과정에서 나오는 열매, 결과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래도 나름대로 선하게 양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주님께서 너는 염소였어. 왼편으로 가라, 너는 영벌에 들어가라는 판정을 내리시면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이 때는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두번째는 심판의 기준입니다.

34절에 보면 주님께서 오른편에 있는 사람을 축복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그 축복의 이유인즉 예수님께서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와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의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그렇게 하였나이까?”

자신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4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고”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소자 한 사람에 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천국에서 큰 상급을 받고 마지막 날에 큰 칭찬을 받을려면 무슨 영웅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보시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외적으로 드러나는 큰 업적이 아닙니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당장에 큰 성과가 없었을지라도, 내가 말없이 섬긴 한 영혼이 예수 믿고 변화되어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면 그것이 바로 주님께 행한 위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서 지켜야 할 대계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사랑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은 희생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찾아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사람들을 공동체에 두었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객이었습니다. 그들을 공동체에 붙여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사역을 어떻게 하셨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부분 지극히 작은 자를 불쌍히 여기셔서 찾아가시고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사역이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소외시키고 격리시킨 나병환자를 친히 찾아가셔서 손을 내밀어 치료해 주셨습니다. 혈루증 앓는 여인도 찾아가서 그의 믿음을 축복하시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거라사 광인도 찾아가 구원해 주셨습니다.

가장 소외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에서도 옆에서 회개하며 구원을 요청하는 십자가 강도를 위해서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역을 살펴보면 작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찾아가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시며 구원해 주시는 사역이었습니다.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부하였습니다. 그래서 경문의 띠를 넓게 하고 옷 술을 길게 하였습니다. 길거리에서 길게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상 양무리들을 돌아보고 사랑을 베푸는 일에 인색했습니다.

우리가 소외되고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요한일서 4: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2:14-17절에 보면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 사랑의 실천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읽을 때마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중에 『구두장이 마틴』이란 소설이 생각납니다.  

마틴은 낮에는 지하 단칸방에서 열심히 구두수선을 하고 밤이면 열심히 성경을 읽는 가난하고 경건한 신자입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마틴이 성경을 읽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틴, 내일 내가 너를 찾아 갈 것이다

다음날 마틴은 설레는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이 나를 찾아오신다니” 그는 너무나 기뻐서 방청소를 깨끗이 해 놓고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주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창문 밖으로 늙은 청소부가 추위에 떨면서 거리를 쓸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틴은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와서 몸을 녹여주고 따뜻한 차를 대접했습니다.

청소부를 보낸 후 마틴은 또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주님은 오시지 않고 창문 밖으로 아기를 안고 추위에 떨고 있는 한 여인이 지나가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마틴은 그녀를 데려와서 따뜻한 수프를 대접하고, 자신의 낡은 외투로 아기와 엄마를 감싸주고, 애기 우유 값이라도 하라고 얼마를 줍니다.

여인이 떠나간 후 마틴은 또 주님을 기다립니다. 이제 날이 저물어 가는데 왜 주님이 오시지 않을까? 그때 갑자기 어디서 악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한 소년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여 가게에서 사과 하나를 훔쳤다가 주인에게 들켜서 매를 맞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틴은 뛰어나가서 그 주인에게 말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 값을 지불하겠습니다.” 가게 주인은 소년을 용서해 주었고 그 소년은 마틴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사라집니다.

이제 밤 11시, 12시가 되었습니다. 마틴이 기다리던 주님은 끝내 오시지 않았습니다.

“왜 주님은 오시지 않는 것일까” 마틴은 못내 아쉬워하며 성경을 펴 들었습니다.

마태복음 25:40절이었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잠시후 자신이 그날 도와 주었던 사람들이 차례로 나타났습니다. 청소부 할아버지, 굶주린 여인, 배가 고파서 사과를 훔친 소년. 그러더니 그들의 배후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들이 바로 나였느니라.”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주님은 신비한 모습으로 마틴을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바로 소자 한 사람의 모습으로 마틴을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님은 무슨 신비하고 신령한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항상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직장에, 이웃에 와 계십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듯이 오늘날에도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때로는 코로나때 어려움을 겪는 성도의 모습으로, 직장동료의 모습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교회에 찾아오는 어려운 이웃의 모습으로 와 계십니다.

만약에 이런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질 때 우리는 기회를 가지고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은 말에 있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에 있습니다.

오늘 말씀 45절을 보면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한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이 우리 주님이실 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작은 자들을 찾아가 도와주고 기꺼이 희생을 치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무관심하고 있을 때에 우리 주님은 안타까워하며 울고 계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엄청난 일을 할려고 할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을 베풀므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들이 될 때 우리는 천국에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의인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못 해석해서는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 구원의 조건이 선행이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는 이웃에 대하여 주의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이런 사랑이 없이 주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돌아보는 그런 사랑으로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은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도 버려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땅에서 주님을 본받아 주님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자들을 찾아가고 사랑으로 섬기고 고통을 돌볼 수 있는 참된 믿음을 가진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잘못된 것을 알기에 더욱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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