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혀 보이질 않는 바이러스와 싸움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코로나 여파로 인해서 우리의 삶의 불확실성이 크고, 앞날이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분명한 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어려울 때마다 우리는 주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메시아, 나의 구원자, 나의 주인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든지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죄악에서 우리를 건지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런 주님을 믿고 섬기는 것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찬송가 423 장 먹보다도 더 검은

https://www.youtube.com/watch?v=qBjURI4jguM

1 먹 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마음이 흰눈 보다 더 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후렴> 주의 보혈 흐르는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2 모든 의심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져 슬픈 탄식 변하여 기쁜 찬송 되었네

3 세상 부귀 영화와 즐겨 하던 모든 것 주를 믿는 내게는 분토만도 못하다

4 나의 모든 보배는 저 천국에 쌓였네 나의 평생 자랑은 주의 십자가로다

 

이번 주 암송구절: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And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이번 주 읽을 말씀: 민수기 Numbers 26-36, 누가복음 Luke 11-15, 시편 Psalms 43-47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생명의 삶 말씀(QT): 마태복음 23:25-39 내 안에 벗어져야 할 가면들

오늘로 사순절 24일째가 됩니다. 이번 사순절에는 신앙회복이 일어나기를 원하는데요 신앙회복이 일어나려면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조명하심으로 우리의 잘못된 모습을 보며 회개에 이르는 은혜가 일어나야 합니다.

회개는 진정한 복음이요, 회복의 지름길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안에 있는 외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의 서리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문제라고 치부하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치료나 회복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내 안에 있는 외식의 문제를 주님 앞에 내 놓고 회개하는 은혜가 일어나야 합니다.

외식이라는 것은 ‘가면을 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외식’은 속과 겉이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은 벗어져야 할 몇 가지 가면들을 살펴보면서 주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첫번째 벗겨져야 할 가면은 ‘우리 안에 있는 탐욕과 방탕의 가면’입니다.

25,2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예수님은 겉만 깨끗이 하고 속은 온갖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이들의 외식을 책망하셨습니다. 

외식에 대한 부분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성의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실제적으로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교회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교회 생활을 잘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속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특히 물질을 대하는 면에서는 물질을 사용하는 면에서는 하나님을 위한 마음조차 갖질 않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을 위해서 삶을 산다고 말은 하지만 속은 온통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외식은 겉과 속이 다른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수술을 밭아야 합니다. Inside out이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이런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탐욕적인 마음을 죄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마음이 있지 않는 한 탐욕과 방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특히 탐욕과 방탕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간의 죄의 양상입니다. 내면이 깨끗하게 청소되면 밖은 자연히 깨끗해집니다.

실험실에서는 Purging이라는 과정이 있다고 합니다. 퍼징을 하면 실험한 물이 빠지고 새 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깨끗한 물이 들어와야 부패한 물이 씻겨 나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우리 안에서 일어나야 새롭게 됩니다.

두번째 제거되어야 할 가면은 ‘부정의 가면’입니다.

27,28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다가오면 무덤에 회칠을 했습니다. 유월절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데 무덤을 만지면 부정하기 때문에 무덤에 손대지 말도록 무덤에 회칠을 했던 것입니다. 회칠한 무덤을 멀리서 보면 햇빛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무덤이 아무리 찬란하게 보여도 무덤은 무덤일 뿐입니다. 무덤 속에서는 시체가 썩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경건한 표정을 짖고, 목소리, 걸음걸이를 거룩하게 위장해도 우리 안에 거짓과 탐욕과 방탕,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면 우리는 회칠한 무덤과 같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 마음 속에 자신을 포장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나의 모습입니다. 실제 진짜 나는 아니지요. 사람은 가짜의 나의 모습에 속고 살아갑니다.

신앙은 속사람이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겉사람은 쉽게 포장이 가능합니다. 속사람은 불가능합니다. 속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야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속사람이 새롭게 되기 위해서 주님 앞에 나아가 진실되게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거듭나서 우리의 속사람이 새로워지게 됩니다. 

속사람이 달라지면 겉 사람도 달라집니다. 

세번째 벗어져야 할 가면은 ‘하나님 심판에 대한 무감각의 가면’입니다.

29,30절을 보겠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들은 믿음으로 살다가 순교한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며서 기념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도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박해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33절에서 그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십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의인을 핍박하고 죽이는 역사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벨의 피로부터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왔습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남유다의 여덟 번째 왕 요아스가 바른 말하는 사가랴를 죽였습니다(대하24:20-22). 

사가랴는 요아스왕을 살려주고 생명의 은인이자, 멘토인 여호야다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권면을 듣기 싫어서 죽여 버렸습니다. 

그들은 이런 조상들의 죄를 보고 회개하기는커녕 똑같은 죄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메시아 예수님을 죽인 죄로 말미암아 AD 70년에 로마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힐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심판에 대해서 전혀 무감각하게 삽니다. 죄를 저지르면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내 시대는 괜찮겠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지 않았느냐?라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신이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교회를 비판하고 믿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판하면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갑니다.

이런 가면이 벗겨지려면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경외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공의롭지 못한 것에 심판을 받을 수 있음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살지도 않고, 교회를 비판하고 열심히 섬기는 성도들을 정죄한다면 그것은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두려움이 듭니다. 신자들이 너무 구원을 싸구려고 생각을 합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또한 주님을 바르게 따라가려면 사탄의 공격과 유혹이 많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가는데도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 앞에서 매일 자신의 삶을 점검해야 합니다.

구원받았다고 방심하니까 신앙생활의 권태에 빠집니다.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천국갈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네번째 벗어져야 할 가면은 ‘회개를 무시하는 가면’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로 끝맺지 않고 37절을 통해서 다시금 회개하도록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수님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마치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아래 모음같이 예수님은 끝까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품고자 하셨습니다.  주님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때문에 다급한 심정으로 죄를 지적하시며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내면에 죄문제를 드러내시고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회개의 메시지는 누구나 듣기 싫어합니다. 심히 부담스러운 쓴 소리입니다. 그러나 이 쓴소리를 잘 듣고 회개하면 심판을 피하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미국의 제 1차 대각성운동(1740-1742)을 촉발시킨 인물은 죠나단 에드워드입니다. 그가 전한 대표적인 메시지가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죄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 아주 리얼하게 선포했습니다.

“여러분의 악함은 여러분을 납처럼 무겁게 만들어 큰 무게와 압력으로 여러분을 지옥에 떨어지게 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의는 여러분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는 거미줄이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막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저수지에 담겨 있는 많은 물과 같습니다. 그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마침내 수문이 열려 진노의 물이 쏟아질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수문을 막고 계시는 손을 빼기만 하면 즉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홍수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쏟아져 나와 여러분을 덮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활은 이미 당겨져 있고 화살은 곧장 날아가 여러분의 심장을 관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많은 미국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통회 자복해서 미국 전역에 대각성운동이 일어났습니다. 18세기 큰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죠나단 에드워드가 사역했던 자신의 교회에서는 똑같은 메시지를 전했는데 사람들이 거의 반응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노샘프턴 교회에서는 후에 죠나단 에드워드를 쫓아냅니다. 죄에 대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똑같은 경고의 메시지를 듣고도 이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주님과 함께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인생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 부흥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반면에 아무리 권세있는 말씀이라도 반발하고 거부하면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완악해질 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진실된 회개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끝까지 회개치 않고 주님을 대적하면서 외식과 위선의 삶을 살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을지라도 회개하면 주님의 자비가 임하게 됩니다. 

저희들이 사순절을 보내면서 주님이 주시는 경고의 말씀, 책망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안에 제거될 가면들이 벗겨져서 진실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경고의 말씀을 가슴 아프게 듣고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가면이 벗겨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신앙 생활을 하다가 보니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이 싫어하는 가면을 쓰고 주님을 잘 섬기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주님 이 시간에 우리의 가면을 벗겨 주옵소서. 주님의 자비가 필요합니다. 주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의 내면을 정결케 씻어주옵소서. 주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오니 우리의 위선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두 얼굴로 신앙생활하지 않게 하시고 순결하고 거룩한 얼굴로 주님을 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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