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로 사순절이 4일째가 됩니다. 40일은 특별한 시간입니다. 모세는 40일동안에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의 두 돌판을 받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간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40일은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번 사순절 40일의 여정은 우리 삶을 새롭게 변화시킬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 가운데서 새로운 심령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사순절 기간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마음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다시 은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Then Jesus said to her, “Woman, you have great faith! Your request is granted.” And her daughter was healed at that moment.

 

찬송가 337 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1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사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후렴>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2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난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 주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3 내 짐이 점점 무거워 질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진히 날 구해 주사 내 대신 짐을 져 주시네

4 마음의 시험 무서운 죄를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예수는 나의 능력이 되사 세상을 이길 힘 주시네

 

이번 주 암송구절: 사도행전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They replied, “Believe in the Lord Jesus, and you will be saved- you and your household.”

 이번 주 읽을 말씀: 출애굽기 Exodus 32-40, 레위기 1-7, 마가복음 Mark 11-13, 시편 Psalms 27-31(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생명의 삶 말씀(QT): 마태복음 15:21-28 이방 여인을 구원하시는 예수님   

주님이 갈릴리 지역 특히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가버나움에서 논쟁을 하고 난 바로 후에 이방 땅으로 가셨습니다. 그 지역이 두로와 시돈이라는 지역인데요 현대로 보면 레바논 지역입니다. 작년 8월에 레바논 수도인 베이루트에서 질산암모늄이 터져 135명이 죽고 5천명이 부상을 당했던 사건으로 잘 알렸습니다.

특히 주님이 왜 두로와 시돈이라는 이방 지역으로 가셨습니까?

정황상 몇가지 이유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직 십자가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일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음모를 피해서 좀더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주로 말을 합니다.

이것보다도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가나안 여인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주님은 이스라엘의 국경을 넘어서 두로와 시돈이라고 하는 페니키아 지역으로 가셨습니다. 이 한 여인이 불러올 복음의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보게 됩니다. 복음의 나비효과가 그 지역에서 나타났습니다.

현재 레바논을 조사해보니 인구는682만명입니다.

종교의 분포도는 이스람교 54% 기독교 40%입니다.   

1975-90년까지 15년 내전으로 나라가 어려움을 겪자 국가가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통령은 기독교인, 총리는 이슬람교 수니파, 국회 의장은 이슬람교 시아파가 맡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모슬럼 국가 중에서 그래도 기독교인들이 많은 지역이 바로 레바논지역입니다.

현재 이런 복음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역에 들어가서 가나안 여인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저희가 사순절을 지내면서 주님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방땅에 들어가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번 사순절에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상관없이 주님은 구원하시기를 원하시고 이런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우리도 어떤 사람에게나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은 두로와 시돈이라는 이방 땅에 들어가셨습니다. 갈릴리에서 50마일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그때 한 여인이 주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 나왔습니다.

그때 바로 이 여인이 주님께 나와 엎드리며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2절을 보면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은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기다릴 때 쓰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의 입을 통해서 나온 것은 과히 충격입니다.

소문을 듣고 이렇게 예수님 앞에 나온 그 여인의 가정 상황은 정말 좋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의 딸이 심하게 귀신을 들렸다는 것입니다.

정신병은 어느 시대나 가장 어려운 병입니다. 그 여인은 두로와 시돈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정신과 의사들/술사/을 다 찾아가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가 귀신들려 발작하며 울부짖을 때 여인의 가슴은 찢어졌습니다.  그런데 갈릴리에서 들려오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이 여인의 마음에 한 줄기 큰 빛이 되었습니다. 갈릴리 지역에서 예수라는 사람이 수많은 병자들이 고치고, 특히 귀신들린 자들이 온전케 되었다는 소식은 딸아이의 병을 낳게 해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라는 기대와 확신을 갖게 하였습니다. 문제는 두로와 시돈에서 예수님이 거하는 가버나움을 가질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분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에 오셨다는 소문을 듣자 이 기회를 놓칠수가 없었습니다. 소문을 들은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나온 사람은 적습니다.이 여인은 한번 얻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간절하고도 애절하게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의 자비만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인의 애처러운 절규와 믿음의 간구에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23절에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침묵에 절망하지 않고 더욱 소리 높여, 더욱 간절하게, 계속해서 부르짖었습니다. 제자들은 여인의 절규를 계속 듣는 것이 너무 괴로워 예수님께 나아와 그 여자가 뒤에서 소리 지르오니 제발 빨리 고쳐서 보내주시든지 어떻게 좀 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은 24절에서 매정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이전에 예수님은 어떤 죄인이나 병자도 받아주셨습니다. 중풍병자가 지붕을 뚫고 나와도 “소자야” 하시며 죄사함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혈루증 앓은 부정한 여인이 뒤로 와서 옷가를 만졌을 때도 “딸아” 하시며 병의 근원이 마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가나안 여인 이방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렇게 매정하게 대하시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예수님의 대답이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25절을 봅시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Lord, help me”  

그런데 예수님은 이보다 한단계 더 높여서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26절을 보십시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와! 해도 너무하신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너무나 모욕적으로 들립니다.

세상 만민의 구주이신 예수님께서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예수님께로부터 이런 모욕을 받는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도움을 받으러 간 사람에게 무시 받을 때입니다.

귀신들린 딸은 여인에게 있어서 수치스러운 치부와 같습니다. 이를 만인 앞에 다 드러내고 예수님께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너무하시지 이 약점을 가지고 깔아뭉개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이렇게까지 심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주님은 우리가 주님께 나올 때 완전히 나의 자존심, 나의 명예, 나의 수치감까지 내 내려놓고 나오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내가 주님께 나가서 기도하면 당연히 주님께서 들으시고 축복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도와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마치 자동판매기와 같이 생각합니다. 주님도 내가 나가서 도움을 구하고 청구서를 제출하면 즉시 결과물을 주셔야 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면, 우리 하나님이 과연 그런 분입니까?

내가 필요할 때에 주문하고. 하나님은 즉각 배달해 주고. 내가 고객이고 하나님은 배달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같은 죄인들입니다.

로마서 3장 1-12에 보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그를 무시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이 여인이 얼마나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인가? 얼마나 비참한 자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만이 주님이 나의 구주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구원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유일한 소망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여인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27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이르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여인은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100% 인정했습니다. 조금도 변명하거나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옳습니다. Yes, Lord!” 여인은 예수님의 주되심과 자신이 아무 자격없는 개에 불과함을 깊이 인정하였습니다. 여인은 겸손히 엎드려서 단지 부스러기 은혜만을 구했습니다. “떡이 아니면 부스러기라도 좋습니다. 부스러기라도 주십시오” 여인의 믿음은 참으로 놀라운 믿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를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이렇게 말했을 때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28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원문에는 여자여 앞에 오! 라는 감탄사가 있고 여인의 믿음을 ‘메갈레 피스티스’ 즉, ‘메가톤 급의 믿음’이라고 하시며 칭찬해 주셨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예수님까지 감동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귀신들린 딸을 즉시 치료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두로와 시도 지역에 가셨던 것은 이 여인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이 여인의 축복은 딸의 질병이 치유된 것만이 아닙니다. 여인의 진정한 축복은 바로 주님으로 인해서 영혼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위해서 그곳에 가셨습니다. 여인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내 자아가 부서지고 오직 주님을 주인으로 모실 때만이 가능했습니다.

저희들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사순절에 해야 합니다.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죄로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을 우리가 사순절을 통해서 감당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두로와 시돈 지역을 찾아가신 주님의 귀하신 뜻을 깨달았습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인종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길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우리들도 죄로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복음을 나눌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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