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Ash Wednesday(재의 수요일)입니다. 오늘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먼저 이번 주에 제작된 수요중보기도 30분 영상을 보내드립니다.

2021년도 사순절은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흔적을 남길 것입니다. 기도로 그리스도의 고난의 자리로 내려가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십시오.   

함께 영상을 보면서 사순절 기도에 동참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주 암송구절: 사도행전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They replied, “Believe in the Lord Jesus, and you will be saved- you and your household.”

 

이번 주 읽을 말씀: 출애굽기 Exodus 32-40, 레위기 1-7, 마가복음 Mark 11-13, 시편 Psalms 27-31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생명의 삶 말씀(QT): 마태복음 14:13-21 영과 육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

2021년 사순절을 맞이하는 오늘은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는 늘 두려움과 공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헤롯 안디바가 다스리던 시대도 마찬가지로 불안함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배고프고 각종 질병으로 고통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백성들을 돌아보고 섬겨야 할 왕이 자신의 탐욕을 위해 온갖 악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누구에게 나아가서 배고픔과 아픔을 호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죄악되고 불안한 시대에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13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예수님은 빈 들로 가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빈 들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13절과 15절. ‘빈 들’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바가 큽니다. 빈 들은 물론 건물이 없는 허허벌판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황폐한 상태를 은유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아무런 기대와 소망을 둘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예수님이 빈 들로 가실 때 무리들이 따라왔습니다. 여러 고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21절을 보면 그 숫자가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하고도 5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요?

14절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예수님은 이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여기다’는 의미는 창자가 끊어지는 것은 고통을 설명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주님은 마치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으로 백성들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병자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육신이 병든 사람들, 정신적으로 고통하는 자들, 귀신들려 울부짖는 자들. 예수님은 이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치료하시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마가복음 6:34절에서는 예수님께서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해 불쌍히 여기사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사 말씀도 가르쳐 주시고 병도 치료해 주셨습니다.

어느덧 저녁이 되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나아와서 말했습니다.

15절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저녁이 되어 식사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빈들이었습니다. 

식당도, 가게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무리들을 보내서 자기들이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자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제안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무리들이 제때 식사하도록 배려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무리들을 책임지지 않고자 하는 인간적인 마음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예수님은 “You! 너희들이 무리들을 먹여야 한다”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별로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이 영적 지도자로서 책임의식을 갖기 원하셨습니다. 

당시 헤롯을 비롯해서 정치, 종교지도자들은 백성들의 삶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기들 배만 불리고 쾌락을 즐기는데 마음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마저 무리들에게 무관심하고 무책임하게 대하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몹시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명령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무리들을 먹일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다음 문제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네가 양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아린 가슴을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네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아버지요, 어머니가 되어 주어야 하지 않겠니?”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기적의 역사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안타까운 심정. 목자의 심정에서 시작됩니다.

1955년 미국 오레곤에 시골마을에서 농부들을 대상으로 영화상영이 있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한국전의 참상과 전쟁고아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온 한 농부 부부가 한국전쟁고아들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농토의 절반을 팔아 한국에 와서 8명의 고아들을 입양했습니다. 여기에 감동을 받은 그 지역 다른 농부들도 한국의 전쟁고아들, 한 명, 두 명을 입양했습니다. 이 부부는 여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한국의 전쟁고아들, 혼혈아들을 입양하는 일에 헌신했는데 이로 인해 홀트아동복지회가 탄생했습니다. 그 일에 불을 지핀 이는 해리 홀트씨이고 그 후에 16000명의 고아들이 미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한 평범한 농부의 목자의 심정이 이처럼 엄청난 기적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주봉아, 네가 먹을 것을 주어라”

“네가 양들을 책임져야지”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시대 양들에 대해서 얼마나 목자의 심정,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 생각할 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있으면 길이 보이고 마음이 없으면 핑계만 보인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정말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 양들에 대해서 심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목자의 심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마음이 있으면 길이 보입니다. 

이때 제자들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17절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심히 당황스러웠습니다. 무리들은 너무 많은데 자신들이 가진 것이 너무나 작고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 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너무 작아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we have only 5 loaves of bread and 2 fish. We have only. 단지 오병이어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18절이르시되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 여기 지금 있는 것. 그것만 가져 와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 Bring them here to me. 예수님께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병이어로도 충분합니다. 기적은 예수님이 베푸시지, 제자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단지 오병이어만 가지고 나아오면 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집 앞 마당에 물을 퍼 올리는 펌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펌프에서 물을 뽑아 올리기 위해서는 마중물을 부어야 했습니다. 마중물을 한 바가지 붓고 힘써 펌프질을 하면 지하수가 막 쏟아져 올라옵니다. 

우리의 오병이어는 이 마중물과도 같습니다. 내가 주님께 드린 것은 작은 시간과 물질, 부족한 오병이어 뿐입니다. 그런데 그 마중물이 꼬투리가 되어서 축복의 물줄기가 솟구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펌프 밑에 지하수처럼 무궁무진하게 숨겨져 있습니다. 

누가 이 축복의 물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까? 작은 믿음과 헌신의 마중물을 붓는 사람입니다. 내게 있는 작은 오병이어를 주님께 드리는 자입니다. 

우리에게는 하찮은 오병이어밖에 없습니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 

나에게 있는 오병이어, 나에게 마중물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순종해서 주님께 드릴 때 무궁무진한 축복의 물줄기가 쏟아지게 되리라 믿습니다.

사순절 첫 날에 주님의 오병이어를 묵상하면서 주님은 우리의 육적인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오병이어를 통해서 분명하게 이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다고 해도 주님께 가지고 가서 온전히 맡길 때 오병이어의 기적은 우리 삶에 넘쳐 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병이어는 없는 가운데서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적은 재료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비록 적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온전히 주님께 맡길 때 그것이 마중물이 되어 엄청난 기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오병이어 기적을 묵상하며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 우리의 영혼 육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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