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사순절을 맞이할 때마다 이런 말할 수 없는 감격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에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죄를 지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형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을 살리기 위해서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신 그 놀라운 사랑 말입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에 자신의 생각과 습관들을 깨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도록 새벽기도회에 동참해보십시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절실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https://www.youtube.com/watch?v=OLzMCrEgl0o

 

1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후렴>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 하소서 (아멘)

 

2 세상 부귀 안일함과 모든 명예 버리고 험한 길을 가는 동안 나와 동행하소서

3 어둔 골짝 지나가며 험한 바다 건너서 천국문에 이르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이번 주 암송구절: 사도행전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They replied, “Believe in the Lord Jesus, and you will be saved- you and your household.”

 

이번 주 읽을 말씀: 출애굽기 Exodus 32-40, 레위기 1-7, 마가복음 Mark 11-13, 시편 Psalms 27-31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생명의 삶 말씀(QT): 마태복음 14:1-12 세례요한의 죽음의 그림자

마태복음 14장은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맞이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으시고 갈릴리 호수의 북쪽인 벳세다 지역으로 가셨습니다. 이때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바리새인들과 같은 적대세력들이 일어나 주님을 잡고자 해서 주님은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님을 아시고 적대세력과 갈등을 피해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벳세다 지역에서 유월절을 지키게 됩니다. 이때가 십자가 지기 바로 1년정도가 남은 시점입니다.

오늘 말씀은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근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헤롯은 예수가 많은 병자와 죽은 자를 살렸다는 소문을 듣자 혹시 세례요한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는 왜 요한과 예수님을 연결시킬까요? 왜냐하면 그가 볼 때에 요한이 한 일이나 예수님이 하신 일이 같기 때문입니다.

요한도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 회개를 선포했는데  예수님도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 회개를 선포하고 도전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얼마 전에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힘으로 빼앗았습니다. 이런 악한 일을 보고서 어떤 사람들도 말을 못했어요. 헤롯을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나서서 헤롯의 불의함을 지적했습니다.

“당신의 행동은 옳지 않습니다. 회개하십시오.”

헤롯은 자신의 행동을 지적하는 그런 요한을 죽이고 싶었지만 죽일 수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백성이 그를 선지자로 믿었기 때문에 백성들을 두려워했습니다.

마침 헤롯의 생일날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었습니다. 헤롯은 기뻐서 말했습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노라” 

헤로디아의 딸은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세례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했습니다. 

이 딸이 12살이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잔인한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여기 헤롯왕은 헤롯대왕의 아들 안디바인데 헤롯대왕은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2살 아래 남자아이를 다 죽인 자입니다. 

결국 헤롯은 세례요한의 목을 베어서 헤로디아의 딸에게 줍니다. 의인 세례요한의 목이 소반에 담겨서 잔칫상에 올라왔습니다. 요한은 이런 시대에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요한의 죽음을 통해서 말하려는 바는 무엇입니까? 요한은 겉으로만 보면 불의 앞에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힘이 없어서 무력하게 죽었습니다. 어찌 보면 실패한 인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구자로 살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밝혀주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 선포하고 그의 길을 예비한 후에 선구자로 죽었습니다.

요한복음1장에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레위인들이 혹시 세례요한이 메시야가 아닌가 해서 그에게 묻습니다.

‘네가 누구냐’ 그때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들이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네가 누구냐 엘리야냐?’

세레요한은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대답하며 분명하게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밝히 말합니다. “나는 단지 이사야 선지자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이다”

세례요한은 또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노라”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해야 하겠다”

세례요한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의 삶, 나의 꿈, 나의 비전을 위해서 살지 않고 오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리고 믿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데 온통 자신의 삶 전부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사역을 하다가 죽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의 제자 마태는 헤롯으로 인하여 불의하게 죽은 세례요한의 죽음을 언급했을까요? 그의 죽음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세상의 불의 때문에 죽은 것은 장차 예수님도 세상의 불의 때문에 죽으실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하고 갔습니다. 한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결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저희들이 사순절을 준비하면서 세례요한의 죽음은 바로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얼마 후면 이제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죽은 것은 세상의 불의함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시는 것은 빌라도나 유대 대제사장이나 장로들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불의함 때문입니다.

오늘 사순절을 준비하면서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불의는 죄악입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우리의 죄악입니다.

주님은 나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이런 자신의 존재를 저희들이 기억하며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세례요한의 불의한 죽음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주님이 우리의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음을 깨닫고 우리의 죄와 불의함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를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씻어주옵소서.

그래서 죄인이 의인이 되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전하는 참된 예수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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