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존경을 받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비판하고 정죄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신앙은 정죄 신앙입니다.

이들의 문제는 율법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적용했기에 이런 정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여 말씀대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신앙은 정죄가 아니라 긍휼한 마음을 갖고 상대방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2: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

 If you had known what these words means,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you would not have condemned the innocent.”

 

찬송가 80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

 

1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주 나시기 전 지으신 구주의 이름 예수

 

<후렴>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아멘)

 

2 주 십자가에 달릴 때 명패에 쓰인대로 저 유대인의 왕이요 곧 우리 왕이시라

3 지금도 살아계셔서 언제나 하시는 일 나 같은 죄인 부르사 참 소망 주시도다

4 주 예수께서 영원히 어제나 오늘이나 그 이름으로 우리게 참복을 내리신다

이번 주 암송구절: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Salvation is found in no one else, for there is no other name under heaven given to men by which we must be saved.

 

이번 주 읽을 말씀: 출애굽기 Exodus 19-31, 마가복음 Mark 1-10, 시편 Psalms 25-26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생명의 삶 말씀(QT): 마태복음 12:1-21 안식일 논쟁

마태복음 12장은 안식일에 대해서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큰 명령입니다. 유대인들만 지켰고 유대인임이 드러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입니다. 금요일 해 질 녘부터 토요일 해 질 녘까지 생계를 목적으로 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식일 규례는 더 많아졌지만 경건한 유대인들은 규례를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제지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회당에 가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이는 경건한 유대인들의 안식일 관념을 흔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안식일 율법을 의도적으로 깨트리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의미를 가르쳐 주십니다.

안식일 논쟁의 일차적인 원인은 예수님께서 제공했습니다. 왜냐하면 포로 귀환 시대 이후부터 예수님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도 예수님처럼 공개적으로 안식일에 관한 법을 범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율법을 문자적으로 온전히 준수해야만 구원을 얻는 것으로 믿고 있던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면서도 안식일 규례는 임의로 범하는 모순투성이의 인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파괴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종교 생활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위험 인물로 생각하게 되었고, 급기야 그를 제거하려는 논의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은 안식일에 관해서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어떻게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1-2절)이고, 둘째는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10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 속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날, 곧 인간 스스로를 위해 행하던 모든 일을 중단하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경건되게 하루를 보냄으로써 신앙을 증진시켜야 하는 인식일의 규례조차 온전히 준수하지 못하면서, 아니 오히려 고의적으로 범하면서 어떻게 의를 이루며 장차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율법을 문자적으로 철투철미하게 준수해야만 의를 얻을 수 있으며 구원을 얻는다는 그들의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무엘상 21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사울을 피해 도망하여 놉 땅의 제사장 아히멜렉의 도움을 받아 오직 제사장 만이 먹을 수 있었던 ’진설병‘떡을 먹은 사건을 언급하십니다. 분명히 다윗은 표면적으로 율법을 어긴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의 근본정신인 생명을 살리고 구원하는 일에는 틀림이 없는 행동이었음을 지적하면서 다윗의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의 행동 역시 생명을 위한 일임을 설명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안식일을 범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정신을 지킨 일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의 논쟁의 문제는 바로 본질의 문제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정신이고, 본질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흐르다 보면, 사람들은 본질이 아닌 형식과 외형이 사로잡혀 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며 가족을 위해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인데, 돈의 노예가 되어 정신이 빼앗기다 보면, 돈을 위해서 나와 가족을 희생하며 희생을 강요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올려드려지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은혜가 되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런데 예배가 형식이 되고 습관이 되게 되면,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지 않고 예배 중에 비본질적인 다른 생각과 다른 것에 온통 신경을 쓰게 되어 결국 참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자신이 성전보다 크시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이스라엘인의 성전은 모든 율법을 가르치고 제사를 드리는 중심지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제사장은 성전 안에서 안식일을 범하여도 죄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양을 잡고 불을 피워야 합니다. 할례도 주어야합니다. 성전 안에서는 안식일 법에서 자유롭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하는 일들은 치외법권지역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안식일법보다 특별법으로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보다 성전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성전은 무너졌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성전을 일으키셨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예수 안에 들어온 자는 율법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성전과 제사장은 아들을 위하여 섬기는 종들입니다. 성전 안에서 제사장들이 자유롭듯이 예수 안에서 제자들도 자유롭습니다. 우리도 성전되신 예수님 안에 있다면 우리는 율법에서 자유롭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주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8절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안식일을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예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동과 탐욕과 불신에 시달리는 자에게 안식일을 만드셔서 안식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을 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중심이지 안식일이 중심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안식일을 지켜야합니다. 지금 유대인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주일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면서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갑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로 천지를 새롭게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예배 드려야 합니다. 주님의 날(Lord's day), 안식일에 주인되신 주님께 온전히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이 두번째 질문인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10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양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졌는데 어떻게 해야하는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양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안식일에 허용하였습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은 안식일이라도 구해야 하는 급박한 일입니다. 그들은 자기 양을 사랑하여 양을 구덩이에서 꺼내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 인간은 양보다 휠씬 귀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입니다.  안식일에 한 손 마른 자를 고치는 것은 율법적으로 옳은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이 되는 일은 양이라도 도왔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이익이 되지 않을 때는 사람이라도 돕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2절에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사야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지않고 악을 행하는 자를 책망하였습니다.(이사야 56:2-4) 안식일은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 안식일은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쉬는 날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안식일은 자유를 주는 개념으로 발전합니다. 안식일날은 노동과 염려와 탐욕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안식일은 개인적인 오락을 금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날입니다.

더 나아가 안식일은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선을 행할 것인지를 생각해야합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적극적으로 생명을 살려야 합니다. 생명 살리는 일, 병으로 고통 당하는 자들을 찾아가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안식일에 연약한 자들을 세워주고 기도해주고 그들을 보살피는 생명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에 대한 참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안식일에 대한 참된 의미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리새인들처럼 사람을 정죄하지 않고 안식일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참된 안식의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안식일에 대한 참된 의미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형제 자매를 정죄하지 않고 주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안식일의 주인되시는 주님께 예배할 수 있게 하옵소서. 안식일에도 생명 살리는 일, 연약한 자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들을 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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