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혼자 걷기에는 너무나 외롭습니다. 위험하고 힘듭니다. 그래서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가야합니다. 함께 해야 안전합니다. 함께 해야 행복합니다. 누구와 함께 가야합니까? 누구와 함께 해야 안전합니까? 바로 주님과 함께 해야 참 평안을 누릴수 있고 안전합니다. 그래서 칼 힐티의 행복론은 어느 한군데도 건강하고 돈 많고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고 “당신 옆에 누가 있는가를 보아라.” 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주님이 내 옆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할 때 가장 행복하고 안전합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찬송가 531장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1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부르시네 부르시네 사랑의 햇빛을 왜 안받고 점점 더 멀리 가나

<후렴> 지금 오라 지금 오라 자비한 주께로 지금 곧 나아오라


2 고달파 지친 자 쉬라 하네 쉬라하네 쉬라하네 무거운 짐진자 다 나오라 쉬게 해 주시리라

3 주께서 지금도 기다리네 기다리네 기다리네 죄짐을 가지고 다 나오라 어서 주 앞에 오라

4 주님의 소리를 들어보라 들어보라 들어보아 그 이름 믿는 자 복 받으리 어서 곧 일어나라


이번 주 암송구절: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Salvation is found in no one else, for there is no other name under heaven given to men by which we must be saved.

이번 주 읽을 말씀: 출애굽기 Exodus 19-31, 마가복음 Mark 1-10, 시편 Psalms 25-26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생명의 삶 말씀(QT): 마태복음 11:20-30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면 참된 안식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중심으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약한 자들을 고쳐주었습니다. 수많은 기적과 치료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은혜를 입은 고을들이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0-24절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문둥병자 중풍병자를 고치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권능을 많이 행하고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이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한 고라신과 벳세다가 회개하지 않자 예수님은 책망하였습니다. 고라신과 벳세다와 가버나움은 갈릴리 근처에 있는 동네로 예수님 사역의 중심지입니다. 고라신과 벳세다는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고라신과 벳세다는 이방 땅 두로와 시돈보다도 완악하고 교만하였습니다. 

두로와 시돈에 대한 심판이 이사야 23장과 에스겔 28장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은 도시 국가들로서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나라들입니다. 그들은 장사를 잘해서 부가 쌓이자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예언대로 B.C 722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주요 성읍들이 함락되었습니다. B.C 333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에 의하여 완전히 함락되었습니다. 그때 두로 거민 30,000명이 노예가 되었고 2,000명의 지도급 인사들이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그 후에 겸손해졌습니다. 예수님은 고라신과 벳세다에서 행한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으면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베옷을 입고 회개하였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방인들도 징벌을 받자 회개하고 겸손해졌는데 여기 갈릴리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와서 말씀해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버나움도 고라신과 벳세다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하늘까지 높아지는 교만 때문입니다. 이들은 별볼일 없는 갈릴리 동네입니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예수님이 이곳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은혜받은 갈릴리를 보고자 그리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은혜를 받자 교만하여졌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이스라엘에서  무시 받고 멸시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권능과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잘나지도 않으면서도 겸손하지 않고 교만 것입니다.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내가 잘 나서 은혜받은 것처럼 교만의 병이 생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 가장 경계해야할 것이 교만입니다. 은혜는 내가 잘 나서 받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긍휼로 받은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조금 잘살게 되면 교만해지고, 조금 편안해지면 교만해집니다. 사람의 가장 무서운 병이 교만입니다.

교만이란 권능을 보고도 회개치 않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내가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러면 겸손할 수 있습니다. 

교만한 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는 자입니다.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겸손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자들을 초청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쉼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28 -29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다 초청하십니다. 여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란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란 것은 해 아래 인생에 부과된 육체적 정신적인 의무들과 고생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피곤하고 지친 자들입니다. 먹고 사는 짐, 사람이 죄인으로 살면서 이 땅에 나오는 생산과 이마에 땀을 흘려야할 것들입니다. 어머니들은  자녀를 키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공부와 취업의 짐이 있습니다. 직장인은 직장의 수고가 있습니다.

두번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란 율법의 짐입니다. 끊임없는 종교적인 의무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안식일의 율법으로 사람들을 괴롭게 합니다. 

세번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죄의 짐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이 짐을 지고 여행을 출발합니다.  

죄의 짐을 지고 가는 자들은 자신이 죄의 짐을 지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짐을 벗지 못하면 인생은 참된 영혼의 자유를 맛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무거운 짐진 자들을 초청하십니다. 이들에게 쉼을 약속합니다.

이들이 쉼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나가야합니다. 예수님은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도와 주겠다’, ‘함께 가자’고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 앞에 나아가 죄의 짐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모든 죄의 짐을 예수님께 맡기면 예수님은 이런 짐을 다 져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의 짐을 져주셨습니다(사53: 5)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피를 다 쏱으시고 죽으실 때 "테 텔레스타이"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내가 다 청산하였다 지불하였다(갚았다)" 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청산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주님께 나아가 죄의 짐을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된 쉼을 설명하기 위해서 독특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 단어가 ‘멍에’입니다. 이스라엘의 멍에는 한 멍에를 두 소가 끌고 갑니다. 주님이 멍에를 설명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께 나와 모든 것을 주께 맡기면 주님이 우리의 멍에를 함께 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멍에를 메십니다. 예수님과 보조를 맞추어 예수님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 멍에를 매고 이 땅을 살아간다고 착각하며 삽니다. 그래서 멍에가 힘들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비난합니다.

‘내가 힘이 드는데 하나님 어디 계셨습니까?’

우리의 착각은 주님이 나와 함께 멍에를 맺고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까 나만 혼자 겪는 고난이라고 생각해서 가슴 아파 합니다.

예수님은 내 멍에와 짐은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이 멍에는 주님의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어느 목회자가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누가 나를 절벽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나는 뒤로 물러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앞으로 나가라고 하십니다.

나는 거절하였습니다.

주님은 나를 믿는냐 하시고 나를 밀었습니다.

소리치는데 나에게 날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멍에는 날개입니다. 주님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면 우리의 짐은 가벼워지고 주님의 날개로 인해서 인생이 쉬워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다 짐이 있습니다. 짐을 진 인생입니다. 하지만 혼자 짐을 지는 사람이 있고 짐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져야 할 짐은 지고 반드시 맡겨야 할 짐은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인생은 주님으로 인해서 참된 안식과 평안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주님께 죄의 짐을 맡기는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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