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적과 믿음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주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기적을 맛볼 수 없습니다.

기적보다도 주님에 대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바로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절망적인 상황, 불가능한 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한 두려움으로 인해서 우리 삶에는 기적이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에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굳게 믿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을 믿으면 믿을수록 주님의 기적은 우리에게 넘쳐날 것입니다.

 

마태복음 9: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While he was saying this, a ruler came and knelt before him and said, "My daughter has just died. But come and put your hand on her, and she will live."

  

찬송가 380장 나의 생명 되신 주

 

1 나의 생명 되신 주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의 흘린 보혈로 정케하사 받아주소서

 

<후렴> 날마다 날마다 주를 찬송하겠네 주의 사랑 줄로써 나를 굳게 잡아 매소서(아멘)

 

2 괴론 세상 지낼 때 나를 인도하여 주소서 주를 믿고 나가면 나의 길을 잃지 않겠네

3 세상 살아 갈 때에 주를 더욱 사랑합니다 밝고 빛난 천국에 나의 영혼 들어가겠네

 

이번 주 암송구절: 사도행전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Then Peter said, “Silver or gold I do not have, but what I have I give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walk.”

 

이번 주 읽을 말씀: 출애굽기 Exodus 1-18, 마태복음 Matthew 24-28, 시편 Psalms 21-24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마태복음 9:14-26 금식 논쟁과 주님의 치유


주님의 메시아적인 사역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의 논쟁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지상 사역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의 렌즈로 주님을 평가하고 주님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이어서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주님께 나와 금식하지 않는 주님과 제자들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구약에서 특별히 언급되는 금식은 7월 속죄일의 금식 단 하나입니다. (레16) 그런데 유대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금식일을 추가하였습니다. 랍비들은 금식의 횟수를 더 늘려 매 주 월요일(모세가 산에서 내려 온 날)과 목요일(모세가 산에 올라간 날)에도 금식 했습니다. 그래서 금식은 경건함이나 신실한 신앙을 나타내는 방법의 하나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금식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볼 때에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신앙의 수준은 기존의 바리새인들과 비교했을 때 다르게 보였지만 전통적으로 경건한 사람들이 하는 금식은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들을 비난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물은 겁니다.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님은 15절에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예수님은 그들에게 결혼식 잔치를 예로 듭니다. 당시 사람들은 결혼식 잔치를 일주일 동안이나 했습니다 그 기간에는 금식하는 날이 있어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혼한 신랑과 신부의 결혼식 잔치를 위해서입니다. 이때는 금식할 때가 아니라 함께 신랑과 신부의 잔치의 풍성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식할 때가 돌아옵니다. 그때는 바로 신랑을 빼앗기는 때입니다.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금식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금식에 대해서 가르치려는 바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금식의 불필요성을 말씀하시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미 세상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성도들이 누려야 할 희락에 대해서 먼저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천국의 기쁨을 누릴 때는 금식을 하지 않고 그 때 하나님의 천국의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바리새인과 요한의 제자처럼 경건성을 금식에 두는 외식적인 신앙의 허울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누리는 천국의 참된 기쁨과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이 참된 신앙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은 경건의 모양이나 금식의 자랑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천하고 살아가는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 당시의 시대는 주님의 사역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고 시스템 때문이었습니다.

구시대적인 생각으로는 주님의 말씀을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율법적인 사고로는 복음의 사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기존에 신앙생활의 틀에 익숙해 있으면 주님의 사역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율법적인 틀에서 벗어나 복음으로 새 옷을 입어야 함을 증거하십니다.

신앙의 고정관점의 틀을 깨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은 새 시대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복음의 실체가 되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만이 주님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새 시대가 열렸음을 16-17절에서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주님의 비유는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생활의 단면’을 통한 교훈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동물의 가죽으로 부대를 만들어 그곳에 술과 같은 액체를 보관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죽 부대는 오래되면 가죽이 딱딱해져 바스러지기 쉬었습니다. 그래서 낡은 가죽 부대에는 발효되지 않는 새 술은 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발효되지 않은 새 술을 신축성이 없는 낡은 가죽 부대에 담아 두면 술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로 인해 부대가 터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 술을 반드시 새로 만든 가죽 부대에만 담아야 했습니다.

주님이 이 예화를 하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생명력 있는 복음을 유대주의적 낡은 전통으로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그리스도에 의해 계시된 메시야 왕국에는 그에 적합한 새로운 질서 체계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형식이지만 복음은 생명입니다. 율법은 정죄이지만 복음은 영혼에 대한 긍휼의 마음입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넣어야 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 적합한 것입니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교회가 대면 모임을 갖지 못한 채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비대면 방식으로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지금까지 교회가 해 왔던 것들을 돌아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교회는 다시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데 기존의 해 왔던 방식으로는 절대 안됩니다. 기존에 해 왔던 낡은 가죽 부대와 같은 전통을 붙잡고 사역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낡은 전통을 내려놓고 이제는 주님의 복음을 새로운 가죽 부대에 담아서 새로운 사역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코로나 팬더믹을 경험하면서 우리 교회가 앞으로 새 술을 새 부대에 넣어야 할 미션입니다.

그 미션을 위해서 예배와 교육 그리고 선교들을 새롭게 정립해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다급하게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18절을 보면 관리의 가정의 절박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마가복음 5장을 참조해보면, 이 관리는 회당장 야이로인 것을 알 수 있고, 그의 딸은 외동딸로 12년을 금지옥엽으로 키우던 딸이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희망이자 삶의 이유였던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성스럽게 키우던 딸이 어느 날 원인모를 병마로 시름시름 앓더니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딸이 `죽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예수님께 나온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마태복음은 ` 딸이 방금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회당장 야이로에게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딸이 방금 죽었지만,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시면 살아나리라는 믿음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제까지 수많은 이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적은 없었습니다. 앞선 예가 없었기 때문에, 죽은 딸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는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이전 사람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병마를 넘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죽은 생명을 살리실 수 있는 부활과 생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회당장의 믿음의 간구에 감동을 받으시고 일어나 따라가셨습니다. 여기에 제자들도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죽은 딸에게 가는 도중에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살짝` 만진 것입니다(20). 혈루증은 일종의 부인병으로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하혈을 하는 병입니다. 

한두 달, 1,2년도 아니고 자그마치 12년 동안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하혈을 하게 되면, 사람이 어떻게 됩니까? 불편함과 고통을 넘어, 이제 그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를 달고 살았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율법에 의하면 유출병은 부정한 병입니다(레15:19-33). 그래서 유출병자와 접촉하면 같이 부정에 전염됩니다. 그녀가 앉거나 누운 자리도 모두 부정해지고, 여기에 접촉하면 또 부정해집니다. 그래서 율법은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않도록 나병환자처럼 격리시켰습니다. 그녀는 회당에 나가 예배도, 공동체 생활도 할 수 없었습니다. 식구들과 어울려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불가능해졌습니다.

 

마가복음5:26절은 이 여인의 형편을 자세히 말했습니다.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가진 것도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도리어 중하여졌던 차에” 상황은 절망적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눈앞에 어른 거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녀에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들렸습니다. 

인간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져가신 분, 그래서 인간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능히 고치실 수 있는 분,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시는 분에 대한 소문이었습니다. 또 실제 힘든 나병과 중풍병도 고쳐주셨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이 예수님께 마지막 소망을 가져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질병도 얼마든지 고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마음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부정한 병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가기에는 너무나 장벽이 높았습니다. 나아가다가 다른 사람이나 예수님께 부정을 전염시키지 않을까 염려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가만히 만졌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한 이유는 “이는 마음에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믿음도 이전의 어느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놀라운 믿음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으면, 상황이나 조건이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여자가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예수님은 혈루증을 앓는 부정한 여인, 그리고 율법을 거스림으로 두려움에 시달리던 여인을 사랑스런 딸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리고 평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딸아 안심하라”  주님의 음성은 여인의 두려움을 말끔히 씻겨주시는 사랑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인의 옷자락을 만지는 믿음을 근거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자 그 즉시 여자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기서의 `구원`은 혈루증의 치료를 포함한 영육간의 완전 구원을 말합니다. 여자의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지는 믿음`은 영육간의 완전 구원으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그 어떤 고질병, 잘 낫지 않는 어떤 불치병도 능히 고치실 수 있는 생명의 권세, 치유의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딸아 안심하라, 아들아 안심하라. 네 병에서 놓여 강건할지어다” 한마디만 하시면 `그 즉시` 상황 끝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에 이르는 어떤 질병도 능히 즉각적으로 고치실 수 있는 부활과 생명의 주가 되심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관리의 집 곧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 집에는 아이가 죽었기 때문에 유대 장례법에 따라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들이 시끌벅적하게 초상집 분위기를 연출하며 애도하고 있었습니다. 유대 장례는 관례적으로 장례를 돕는 전문가 둘 곧 `피리부는 자들`과 `곡하는 자들`을 고용하여 장례를 치루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적어도 `피리부는 자 둘`과 `곡하는 여성` 하나를 고용했다고 합니다.

24절에서 예수님은 이들에게 “물러가라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시니 그들이 비웃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그들과 설전을 벌인다든지 논리적으로 싸운다든지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이들과 상관하지 않으시고, 전부 내어 보내셨습니다. 

마가복음에는 그들을 ignore 무시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데 굉장히 중요한 점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사람들(믿음 없는 자들, 인본적인 자들, 부정적인 자들)과 상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정적인 사람들을 ignore하고 내보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내보낸 후에 죽은 소녀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그 즉시 죽은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여기서도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선언으로 `달리다굼`,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렇게 외치자 죽은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율법에는 죽은 시체는 부정한 것이라 하여 7일 동안 접촉을 금했습니다(민19:11-21). 그러나 예수님은 시체를 만짐으로 부정해 지시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 시체가 오히려 정결케 되고, 생명을 얻어 소생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부정함을 정결함으로 바꾸어 주시는 생명의 구주이십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부활과 생명의 권세가 있으심을 만천하에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는 `부활과 생명` 자체이십니다. 이 예수님으로 인해 `12살 죽은 소녀`가 죽음의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죽은지가 사흘로서 썩어 냄새나던 나사로도 살아났습니다. 요한복음 11:25,26절은 말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사도 바울도 고전15:55절에서 사망권세에 대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사망아 네가 쏘는 것은 어디 있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갈 때 절망적인 상황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절대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사망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권능은 자연을 통제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병자를 고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들이 앞에 있습니다. 이럴 때가 바로 생명의 주관자되시는 주님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할 때입니다.

상황이 힘들수록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깊이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어떤 상황도 어떤 환경도 다 통제하실 수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처럼,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했던 여인처럼 주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굳게 서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놀라운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묵상 거리

나는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때 어떻게 그 어려움을 극복할려고 합니까?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에 대한 믿음을 주옵소서. 힘들 때일수록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더 깊이 묵상하게 하옵소서.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상황을 통제하시고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그래서 어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세상적인 방식들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옷자락이라도 잡겠다는 믿음으로 주님을 붙들게 하옵소서.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구원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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