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장 기쁘고 가장 행복하고 가장 즐거운 날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하나님을 만나는 날만큼 기쁜 날이 없습니다. 이날은 주의 날입니다. 즉 우리의 날이 아니라 주님의 날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기쁘게 경배해야 합니다.

주의 날이 가장 기쁜 날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갈망해야 합니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할 때 우리 삶에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크고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주일을 준비하는 귀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시편 118:24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This is the day the LORD has made; let us rejoice and be glad in it.

 

찬송가 450장 내 평생 소원 이것뿐

https://www.youtube.com/watch?v=-Thpi6sUXjo

1.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2. 꿈 같이 헛된 세상 일 취할 것 무어냐 이 수고 암만 하여도 헛된 것 뿐일세

3. 불같은 시험 많으나 겁내지 맙시다 구주의 권능 크시니 이기고 남겠네

4.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 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5. 살같이 빠른 광음을 주 위해 아끼세 온 몸과 맘을 바치고 힘써서 일하세. 아멘

 

이번 주 암송구절: 사도행전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They devoted themselves to the apostles’ teaching and to the fellowship, to the breaking of bread and to prayer.

 

이번 주 읽을 말씀: 창세기 Genesis 37-50, 마태복음 Matthew 18-23, 시편 Psalms 16-20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으면 1년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마태복음 8:14-22 주님의 사역의 의미

예수님의 사역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을 통해서 말씀을 가르치시는 메시아이심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시자마자 많은 병자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치료자 되시는 하나님의 신적 권위를 보여주십니다.  

먼저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셨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의 장모님을 고쳐주고 있습니다.

14절 -15절은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시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예수님은 제자 가족들의 필요와 아픔을 직접 아셨습니다. 그리고 제자 가족들을 돌보셨습니다. 특히 제자 가운데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열병은 말라리아와 관련이 되어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직접 손을 펴서 여인의 손을 터치했습니다.

랍비들의 강령인 ‘할라카’에는 열병을 앓고 있는 자와 접촉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열병을 앓고 있는 자의 손을 터치하는 것은 유대교의 법에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 율법적으로 열병이 나면 스스로 그 병을 이기지 못하면 죽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또한 열병으로 죽으면 가족들도 부모에 대해서 예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열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법도, 관습도, 환경도 예수님의 마음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규제보다 그 영혼을 불쌍히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고치셨던 것처럼 아픈 사람의 손을 직접 터치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만지셨습니다. 사람이 아프면 가장 힘든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이 가장 아프고 힘이 듭니다. 주님의 손길, Healing touch가 상처나고 상한 심령을 일으켜 세워줍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아픈 부위를 직접 터치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상처난 부위를 고쳐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상한 심령을 상한 마음을 만져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손길이 닿자 장모의 몸에서 열병이 떠나갔습니다. 15절에 베드로 장모를 괴롭혔던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님을 수종들었습니다.

베드로 장모는 열병으로 마음도 몸도 무너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찾아오셔서 그를 만지실 때 그는 회복되었습니다. 베드로 장모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실제로 체험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치료의 능력을 지니셨습니다. 주님의 손길이 하나님의 치료의 손길로 나타났습니다. 베드로 장모는 주님의 치료의 은혜에 감사하여 즉시 예수님을 수종들었습니다.

주님은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가족까지도 돌보고 계심을 알려주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고 믿는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장모의 예를 통해서 주님을 신실하게 믿는 자들의 가족까지도 돌보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삶에 일어나는 많은 해석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의 문제와 육신의 질병까지도 친히 해결해 주십니다. 또한 주님은 사랑하는 자들을 친히 돌보시고 사랑하는 자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베드로 장모를 고치신 후에 그 날 날이 저물어가는데 16절에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귀신들린 자들을 데리고 오자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치유하셨습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주님께서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하게 두 가지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신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를 믿고 믿음으로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아픈 사람들을 우리가 대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귀신 들린 자들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절대로 당황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을 의지하고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신적 권위나 권세로 직접 고치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상황에서 확신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을 믿고 친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말씀으로 고치신 이유는 주님께서 친히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연약한 자들의 약함을 담당하기 위한 것입니다.

친히 이렇게 보여주신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이심을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17절은 이사야 53장의 고통 당하시는 메시야이심이 성취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데는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시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약속하신 바로 그 분, 메시아이십니다. 바로 그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 때문에 고통당하셨습니다. 그는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병을 짊어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믿으면 나음을 받고 건강한 삶을 삽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이유는 주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바로 우리의 연약함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주님이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나는 예수님을 믿어요.”라고 고백할 때에는 바로 “나의 연약함을 위해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예수님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많은 어려움과 연약함을 능히 이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달을 때 우리는 연약함도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누구신지를 밝히 말씀하신 후에 제자도에 대해서 새롭게 하십니다.

두 사람이 나오는데 한 사람은 서기관으로 주님을 따르기로 자원을 했고, 다른 사람은  제자가 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주님을 따랐던 제자였습니다.

그때 한 서기관은 주님의 사역에 감동을 받았는지 주님의 제자가 되어 따르겠다고 자원을 합니다.

19절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그는 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걸까요? 그는 예수님의 말씀 권세에 감동을 받았을 겁니다. 그는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그 권세를 배워서 사람들을 돕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20절에서 그에게 무엇에 대해서 말씀하십니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예수님은 그 서기관에게 왜 이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주님은 서기관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제자의 길을 가면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존경 받고 삶도 여유로울 것으로 생각했나 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될 때 흥분해서 결단을 내립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따르다(FOLLOW)라는 말은 “같은 길을 걷다’ 혹은 ‘닮다’ 혹은 ‘좇아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황이 좋으면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면 항상 좋은 길로만 가지 않고 광야같은 거칠고 힘든 길도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서기관은 흥분했습니다. 현재 상황에 가지 못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지와 열정이 있다고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까? 아니요.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의 제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주님으로 인해서 생기는 희생도 감수해야 하고, 심지어는 가족도 포기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제자의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때문에 그의 제자도 당연히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주님은 그가 조금 후에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쉽게 벗어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조금 삶이 힘들면 주님의 길을 벗어나서 자기가 원하는 길로 걸어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삶이 되지 않으면 주님을 믿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쉽게 포기하고 자신이 원하는 길로 걸어갈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또 어떤 제자가 21절에서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요청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아들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해야 합니다(출 20:12, 신 27:16).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22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그는 먼저 아버지를 장사하고 그 다음에 예수님을 따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그의 자세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예수님은 그에게 제자의 삶의 우선순위를 가르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라고 마태복음 10장 37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제자는 주님을 따르는 길이 너무 힘든 것입니다. 그는 이제 주님을 더 이상 따르지 않겠다고 아버지 장례를 핑계삼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의 마음 상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영의 사람은 영의 것을 제일 먼저 삶의 우선 순위를 놓고 그것을 추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동시에 제자로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두 가지 일이 내 삶 속에서 뒤죽박죽 섞여서 뭐가 뭔지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의 의무도 다하고 예수님 제자로서의 의무도 다 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두 가지를 다 하려고 하다가는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세상의 일을 먼저 하고 주님의 일을 나중에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세상의 일만 하고 주님의 일은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제일 먼저 하나님의 일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야 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이것이 주님의 제자가 삶의 우선 순위를 새롭게 하여 주님을 따르면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는지를 구분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제자는 이션셜한 것(Essential)과 난 이션셜한 것(Nonessential)을 구별해서 주님을 위해서 이션셜한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션셜한 것을 붙잡기 위해서는 난이셜션한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을 let them go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씀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삶을 돌보고 계심을 굳게 믿고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주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세상의 유혹과 죄악을 묶어 주시고 오직 중요한 것을 붙잡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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