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되면 신년의 다짐과 결단들을 적어보기도 합니다.

올해 무엇을 결단하고 무엇을 다짐했습니까?

올 한 해는 교회의 회복과 개인의 믿음의 회복이 이루어지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회복된 교회의 모습을 믿음으로 그려보고 있습니다.

회복은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교회 가운데 일어날 때 교회는 살아나고 각 심령은 놀라운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021년도가 성령으로 새롭게 되도록 함께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찬송가 218장 내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https://www.youtube.com/watch?v=wFqCrfLW5tk

1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

   주께서 우리게 명하시니 그 명령 따라서 살아가리


2 널 미워 해치는 원수라도 언제나 너그럽게 사랑하라

   널 핍박하는 자 위해서도 신실한 맘으로 복을 빌라

   주께서 우리게 명하시니 그 명령 따라서 살아가리

 

3 나 항상 주님을 멀리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죄인을 사랑하사 주께서 몸 버려 죽으셨다

  속죄의 큰 사랑 받은 이몸 내 생명 다 바쳐 충성하리 아멘


오늘의 말씀: 요한일서 2:1-11 은혜의 보좌 앞으로

사도 요한의 기본적인 관심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귀는 일에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참된 교제를 누리고 그 교제를 계속 지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교제를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죄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이 서신을 쓴 목적은,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요한이 누구에게 서신을 보낸 것입니까? 예수님을 처음 믿은 초신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믿음을 행사하고 있는 신자들입니다.

요한이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죄가 결국에는 하나님과 사귐을 깨뜨리고, 그 사귐이 깨지는 즉시 모든 축복의 원천에서 우리를 끌어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일 시험이 다칠지, 핍박이 닥칠지, 전쟁과 재난이 닥칠지 어떤 무서운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직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사귐을 깨뜨리는 죄를 지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몸을 가진 인간은 죄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신자들은 하나님과 사귐을 갖지 못합니다. 이런 딜레마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주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의 사귐이 지속되도록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하나님의 사귐을 회복시키실까요?

요한은 여기에서 그 점을 아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언자가 되심으로써 그 일을 해주신다고 말합니다.

1…..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은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다고 했는데 이때 사용한 대언자는 요한복음 16:7 사용했던 ‘보혜사’와 같은 단어입니다. 즉 ‘대언자’가 바로 보혜사입니다. 대언자란 남을 대변해 주는 사람입니다. 남을 대신해서 탄원해 주는 사람입니다.

요한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를 믿고 의지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아버지 앞에서” “대언자”가 되어 주신다고 말합니다.

대언자는 변호사와 같습니다. 변호는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변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우신 분이 우리 편이 되어서 대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의로우신 예수님이 대언하시는데 또한 무조건 대언하시는 게 아니라 분명한 근거가 있어서 대언하시는 것입니다.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화목제물이라는 단어가 ‘힐라스모스’라는 단어인데 영어로는 Propitiation하는 단어로 이 단어를 가장 적합하게 해석하면 ‘속죄소’입니다.

옛날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죄 용서를 빌 때 속죄소 앞에 나아갑니다. 속죄소는 지성소 안에 있어서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위임받아 그 죄를 담당하고 장막 안에 들어갑니다. 먼저 성소를 향해서 나가게 됩니다. 휘장을 지나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지성소 안에 들어가게 되면 제일 앞에 있는 것이 언약궤입니다. 그것을 법궤, 혹은 증거궤라고도 하는데,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놓여 있습니다. 그 법궤 맨 위에 붙어 있는 판이 속죄소입니다. 우리 말 신약성경에서는 속죄소를 “은혜의 보좌”라고 번역했습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속죄소 양쪽에 천사들의 모습 같은 그룹들이 내다보이는 그 판 위에다 대제사장은 속죄의 피를 뿌립니다. 흐르는 피에 의해서 언약궤 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감추어집니다.

법궤 속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 깨어진 돌비, 만나가 들어 있는데, 이 세 가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대한 범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율법을 범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파괴의 범죄, 범법의 범죄, 깨어진 돌비는 하나님의 법을 파괴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를 연상시켜 줍니다.

속죄소 위에서 그 백성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흘려진 제물의 피가 모든 죄를 덮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화목 제물이란 피가 덮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죄를 극복하는 방법은 죄를 짓는 않는 것이지만 만약에 죄를 짓게 되면 담대하게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시고 대언자 되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마음 속에 적용시켜 보면 아름다운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법궤의 뚜껑을 열어 본 것처럼 열으시고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이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주님으로 신뢰했을 때 하나님의 처방인 은혜로 말미암아 어린 양의 피로 우리의 죄는 덮혀져 있고 도말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죄를 범하면 해결책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이것이 죄를 범해도 된다는 변명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고 죄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 비결을 본문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5-6절에서 ‘그 안에 거하라(Live in Christ)”는 것입니다.

5-6 절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그 안에 거하라는 것’은 계명인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과 사귐을 지속적으로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아는 것이 삶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자들은 반드시 삶으로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삶의 열매는 곧 믿음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거룩하게 되어 죄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사귐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디모데전서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교회에서 자랑하지만 만약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속에는 그를 성화시킬 진리가 없습니다. 그 안에는 예수가 없기 때문에 그는 다시 죄된 생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은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로 체험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지키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바로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제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참 빛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거하면서 그분과 사귄다고 말하는 자가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오히려 미워한다면 그 사람이 참 빛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사실은 모두 거짓이며 오히려 그 사람은 지금까지도 어두운 가운데 있어 온 것입니다. 그는 실제로 하나님과 사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입술로만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즉 입으로 믿는다고 하면서 삶 속에서 사랑이 실천되지 않는 신앙은 거짓입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고백한 성도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가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성도들은 빛 가운데 있는 자들입니다. 참 빛이 비춰짐으로 인하여 이전의 어둠의 생활에서 벗어나서 빛가운데서 살 수 있는 근원을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행함으로 증명되는데,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 안에 빛이 비춰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형제를 미워하고 그 미움을 지속적으로 포기하지 못하는 자들은 어둠에 있는 자들입니다.

일시적으로 형제를 미워할 수 있고, 큰 해를 당함으로 인하여 꽤 오랜 기간 형제를 미워할 순 있지만 결론적으로 빛이 그 안에 있는 자들은 형제의 악함까지도 용서해 줄 수 있는 힘이 있고 그러한 힘은 실제적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을 지속적으로 하는 자들은 죄를 짓지 않고, 설사 죄를 짓는다고 해도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우리의 대언자가 되시는 주님을 만나서 용서함을 받습니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말씀대로 형제를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지킬 때 하나님과 사귐은 더욱 깊어집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죄를 끝까지 싸워서 넘어지지 않도록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때로는 죄에 빠지고 넘어지고 실패도 하지만 결코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대언하시는 주님이 있음을 굳게 믿고 죄를 범할 때마다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함을 받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영적인 깊은 교제를 누리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을 지키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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