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고 영적으로 순결하고 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어제 QT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라는 위로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늘 영광을 버리고 땅까지 낮아지는 고난, 배척 받는 고난, 버림받으신 고난 등등 고난의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 신자의 삶의 목표는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에 주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큰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찬송가 211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1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으나 구주여 내게 힘 주사 잘 감당하게 하소서

2 인자한 말을 가지고 사람을 감화시키며 갈길을 잃은 무리를 잘 인도하게 하소서

3 구주의 귀한 인내를 깨달아 알게 하시고 굳건한 믿음 주셔서 늘 승리하게 하소서

4 장래의 영광 비추사 소망이 되게 하시며 구주와 함게 살면서 참 평강 얻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베드로전서 5:1-7 선한 세퍼드

 

오늘 말씀은 베드로 전서 마지막 장으로 고난 속에서 공동체를 섬기는 영적 지도자들의 역할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신앙 공동체에서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영적 지도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좋은 영향력을 끼칠 때 양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목자 직분(세퍼드)을 감당해야 하는 장로들에게 어떻게 목자 생활을 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고난의 때에 교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굳게 서서 고난 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믿음에 서도록 잘 도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 영적 지도자들인 장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일반적으로 장로는 나이가 많은 연장자를 의미하는데, 교회 내에서는 단순히 나이가 많은 자가 아니요, 중요한 직분을 섬기는 영적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당시 장로들은 교회 내의 양들을 돌보는 목회 사역과, 행정적인 감독의 사역을 가지고 있어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고 영적 방향을 잡아 나가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도 함께 장로된 자라고 말함으로써 장로들의 영적 권위를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장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장차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서 중요한 책임과 함께 엄청난 특권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그러면 장로의 직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Be shepherds of God’s flock)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베드로는 장로들의 역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일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영어로 보면 하나님의 양을 치는 세퍼드가 되라(Be shepherds of God’s flock)입니다.

베드로는 과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 하신 것을 목격한 후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갈란다’하며 갈릴리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로 그를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으로 어정쩡하게 고개 숙이고 있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그때부터 베드로는 본격적으로 양 치는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베드로 자신이 예수님을 배반하였던 것처럼, 그도 똑같이 양들에게 여러 번 배신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양을 치다가 절망도 되고 낙심도 되었습니다. 그 때마다 자신이 왜 양을 쳐야 하는가 회의가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의 말씀이었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말씀에서 답을 얻었습니다.

그는 막상 양을 쳐 보니 예수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예수님께 얼마나 불순종했던 사람이었던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경쟁심과 불성실이 예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던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신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기대가 얼마나 컸던 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퍼드가 되는 삶을 통해서 예수님께 대한 순종을 배우게 되었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되었으며, 예수님의 은혜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양을 치는 생활을 통해 고난 많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 그의 삶이 더욱 더 풍성하고 행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장로들에게 그 어떤 말보다도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라”고 제일 먼저 권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베드로의 권면을 받고 있는 장로들은 고난 속에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자신 한 몸 감당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양을 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양들은 더 큰 어려움에 빠져 있기 때문에 목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목자들이 자신들의 어려움만 생각하고 양을 치지 않으면 양들은 세상 속에서 유리방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고자 할 때 다음 세 가지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첫째로,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라”고 권면합니다. ‘자원함’이란 자기 마음이 움직여서 소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같은 일이라도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과, 소원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하는 것은 그 결과도 엄청나게 다릅니다. 억지로 하게 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열매도 좋지 않습니다. 반면에 자원함으로 하게 되면 심령에 은혜와 감사와 기쁨이 있게 되고 일에 능률이 올라서 선한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께서 장로들에게 두신 뜻을 말합니다(As God wants you to be).

내게 보내신 양들을 어떻게 하면 영적으로 살릴 수 있을까 끊임없이 연구하고 찾으면 하나님이 목자를 통해 뜻을 깨닫게 하시고 복음적으로 섬기게 됩니다. 

둘째로,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해야 합니다.

‘더러운 이득’이란 물질에 대한 욕심이나 명예심, 사람들의 인정이나 사사로운 욕심을 말합니다. 목적이 순수하지 않을 때 목자는 삯군과 같이 도움이 필요한 양 보다도 말 잘 듣는 좋은 양을 찾게 됩니다. 목자는 양을 칠 때 사사로운 욕심을 부인하고 순수한 동기로 해야 합니다. ‘기꺼이’하라는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양을 치는 것은 돈 벌이 수단인 세상 직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감당하는 것이고 기꺼이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주장한다”는 것은 세상의 통치자들처럼 양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말합니다. 목자가 양들을 겸손하게 섬기기보다 영적 권위에 의지해서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양들이 잘 따라올 것 같지만 오히려 반발하게 됩니다. 목자는 이처럼 주장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본이 된다”는 것은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양은 목자의 말보다도 목자가 먼저 행함으로 본을 보일 때 따라옵니다. 그런데 본을 보이려면 자기 부인과 자기희생이 필요합니다. 목자는 양들 앞에서는 말도 조심해야 하고 품행도 단정해야 합니다. 본이 되기 위해서는 남들 하는 것만큼 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야 하고 훨씬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합니다. 이렇게 본을 보일 때 양은 마음으로부터 목자를 존경하고 신뢰하며 순종하게 됩니다. 

우리가 양 무리의 좋은 본이 되려면 자신이 먼저 예수님의 좋은 양이 되어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겸손히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해 나가면 내가 부족하더라도 양들에게도 예수님을 본받도록 도울 수가 있습니다.목자가 먼저 예수님을 본받으며 앞장 서서 성장해 나갈 때 양들에게도 믿음의 영향력을 끼쳐 좋은 본이 됩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우리가 자원함으로 기꺼이 양을 치고 양 무리의 본이 되는 생활을 할 때 목자장 되시는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진정한 상급은 장차 목자장 되시는 주님께서 오실 때 주시는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이것은 신실하신 주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실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어떤 아픔과 손해 앞에서도 확신있고 흔들리지 않는 세퍼드가 되어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장로들과 더불어 교회의 두 축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젊은 자들에게 권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5절을 보십시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젊은 사람들은 아직 세상에 때 묻지 않아 순수하며, 비전이 있고, 젊은 패기와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이 있기 때문에 인생의 방향만 잘 잡으면 무한히 성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존심과 혈기가 많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지나쳐서 자만심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런 젊은이들이 연로한 장로들을 볼 때 생각이 굳어 있고, 권위주의적이라 생각하고 장로들을 선배로서는 인정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그들의 뜻에 순종하기 힘들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젊은이들에게 무엇보다도 장로들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젊은이들이 장로들에게 순종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 질서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또한 합심해서 성령으로 하나됨을 이루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유익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장로들에게 순종하는 것은 더 근원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선배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내 마음에서 영적 질서가 파괴되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을 수가 없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라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통제적 섭리 아래에서” 곧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아래에서”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낮추고 높이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주관하십니다. 뿐 만 아니라 장로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친절한 장로를 주시든지, 아니면 까다로운 장로를 주시든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이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순종함으로 겸손훈련을 잘 받아 쓰실만한 자로 성장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시고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교회 안의 젊은이들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인생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각종 염려에 시달리기가 쉽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젊은 크리스천들은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다가도 문득 장래에 대한 염려, 건강에 대한 염려, 이렇게 열심히 하다가 세상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기가 쉽습니다. 염려는 무거운 짐이 되어 가능성 많은 젊은이들을 짓누릅니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베드로는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돌봐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염려를 다 맡겨 버리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확신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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