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대면모임을 갖지 못했을 때 어떻게 하면 이런 시대에 성도들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예배자로 하나님께 신실하게 세워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을 때 ‘묵상이 있는 하루’를 생각하고 성도님들께 보내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보내드리는 이유 가운데 중요한 이유는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을 대면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게 위해서입니다.

좋은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리는 것입니다. 찬양을 부를 때도 은혜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해 찬양해보십시오. 말씀을 펴서 하나님이 오늘 주시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의 믿음은 커져갑니다.

하나님은 이런 시대를 사는 믿음의 사람들을 말씀으로 격려하십니다.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https://www.youtube.com/watch?v=Vv_kXSYyW-g

1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후렴>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2 전에 죄에 빠져서 평안함이 없을 때 예수 십자가의 공로 힘 입어    

   그 발 아래 엎드려 참된 평화 얻음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3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 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내가 기쁜 맘으로 주의 뜻을 행함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4 세상 모든 욕망과 나의 모든 정욕은 십자가에 이미 못을 박았네    

   어둔 밤이 지나고 무거운 짐 벗으니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오늘의 말씀: 베드로전서 4:1-12 하프타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2020년 거의 한해동안 코로나 바이러스와 치열한 싸움을 하고 나니까 2020년도가 거의 다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싸움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치열한 싸움을 하면서 우리들에게 코로나 이후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민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은 늘 한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죄로 인해서 우리 삶이 유한적이고 한시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 인생의 하프타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하프타임은 우리 육체의 남은 시간을 의미하는데 좀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크리스천에게 가슴에 새겨야 하는 마크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이것은 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셨는지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요구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같은 고난의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죄때문입니다. 나의 죄로 인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고난당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말씀 가운데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는 말씀의 뜻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마 16:24)’는  뜻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가슴에 새기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폭군 네로는 그 당시 교회를 심하게 핍박하였습니다. 고난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성도들이 그들의 가슴에 주님의 고난을 새기며 그들은 고난에 동참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하프타임을 주님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는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는 자들은 반드시 고난을 받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고난은 죄성을 다루시는 연단의 도구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연단받으며 불순종의 찌꺼기가 내면에서  제거되어 갈 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고난을 가슴에 새기고 살기 시작하면 어떠한 고난이 와도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님의 고난을 마음의 갑옷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육체의 고난을 받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절을 보면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삶은 before 와 after가 분명합니다. 이전의 삶은 자신의 뜻대로 육체가 원하는 육체의 정욕대로 살던 삶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만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전에 육체의 정욕을 따르던 삶은 어떠했습니까?

3절은 자신의 과거의 이방인의 뜻을 따라서 살았던 삶을 보여줍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주님을 만나기 전의 삶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숭배의 삶이었습니다. 이것이 이방인 즉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4절에서 “극한 방탕(flood of dissipation)” 곧 방탕의 홍수에 떠내려가는 삶으로 묘사했습니다.

성도들이 이러한 삶을 산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 가운데 선한 양심으로 회복된 성도들은 더 이상 방탕의 홍수에 떠내려가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2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과거 성도의 삶이 자신의 뜻에 따른 정욕의 삶이었다면, 이제 남은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인간의 연약함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베드로사도는 우리의 삶을 나그네로 비유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살아가야 합니까?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남은 삶이 얼마되지 않아도 주님을 위해서 시간을 드리고 재물을 드려서 살아갈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삶을 살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면 흥분하는 꿈이 있습니까?

7절 이하는 성도들이 남은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첫째, 정신을 차리고 근신 기도하는 삶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만물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종말의 때라는 인식과 함께 간절히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이때 성도들은 무엇보다 성령 충만으로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맑은 정신은 성령의 충만한 상태로 말미암아 영적인 각성이 내면에서 일어나 깨어 기도하게 됩니다. 영적인 각성이 일어나면 사단의 시험을 분별하고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대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술 취한 자처럼 세상과 죄악의 낙에 취해, 몽롱함으로 분별력 없이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둘째, 공동체적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세상이 끝나도 끝까지 남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성도들 간의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이러한 사랑이 교회 공동체의 성도들의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여기서 덮음의 의미는 `용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3장에서 종말의 때의 특징으로 사랑이 식어져 감을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 사랑은 점점 식어져 가고,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는 때가 바로 종말의 때라고 했습니다. 이런 종말의 시대 가운데 성도들 간의 뜨거운 사랑은 모든 죄와 허물을 덮어버립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더욱 단단해지고 강해져서 어떤 시험이나 고난에도 똘똘 뭉쳐서 대적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대접과 섬김의 삶입니다. 

9-11절을 보십시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여기서 대접은 낯선 사람을 환영하고 호의를 베푸는 것입니다. 대접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서로 원망없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접하는 자는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깨끗이 섬겨야만 합니다. 또 받는 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더 받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서로 간에 원망 불평이 생겨나게 됩니다.

교회에서 성도의 봉사는 각각 받은 은사대로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처럼 해야 합니다. 선한 청지기의 기본자세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입니다. 성도의 은사는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고, 성도들에게 덕을 끼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다만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입니다.

만일 말씀을 전하는데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거나 경외심이 없이 함부로 전한다면, 전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봉사하는데도 자신의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하는 것처럼 냄새를 풍긴다면, 하나님의 영광대신 인간의 썩은 악취를 풍기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자기를 위해서 살든지 아니면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주님을 위해서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믿음을 가지고 전진해야 합니다. 육체의 고난을 받는 자가 죄를 그치고, 남은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때를 주님을 위해서 드릴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늘 가슴에 주님의 고난을 새기며 옛 생활의 죄된 생활에서 벗어나 주님 안에서 새 생활의 기쁨을 누리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힘있게 살아가게 하옵소서.시대의 종말 앞에서 늘 깨어 근신하게 하시고 형제 자매의 허물도 사랑으로 덮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남은 하프타임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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