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받은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그들의 거룩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더욱 많이 힘써야 할 일은 거룩함을 이루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말하면서도(벧전 2: 9), 세상의 악과 불의에 무감각하고 죄의 세력과의 싸움을 회피하거나 도리어 그 세력에 물들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세속에 물들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쫓아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로 더 악해져만 가는 이 세상 속에서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세상에  물들지 않고 경계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말고 성령의 요구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오늘 묵상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It’s God’s will that you should be sanctified: you should avoid sexual immorality.


찬송가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https://www.youtube.com/watch?v=ouLEat0jVHI

1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예수님 닮기 원함이라

   예수님 형상 나 입기 위해 세상의 보화 아끼잖네

<후렴> 예수님 닮기 내가 원하네 날 구원 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지금 곧 오사 주님의 형상 인치소서

 

2 무한한 사랑 풍성한 긍휼 슬픈 자 위로하시는 주

  길 잃은 죄인 부르는 예수 그 형상 닮게 하옵소서

 

3 겸손한 예수 거룩한 주님 원수의 멸시 참으시사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은 구주를 닮게 하옵소서


오늘의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4:1-1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과 5장에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신앙 실천을 다루게 됩니다.

그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몇 가지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변화되지 않는 성도들의 이중적인 신앙생활과 공동체 의식이 없는 개인주의였습니다. 이것은 현대에도 교회를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을 새롭게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은 나 중심(self-centered)에서 하나님 중심(God-centered)으로 변화를 경험합니다.

나의 만족과 나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했다면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이런 변화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한 신자들에게 나타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신자들의 삶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임을 다시금 상기시켜 줍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자라면 이런 바울의 충고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순종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자신의 삶을 하나님을 위해서도 살아가지 않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사랑해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 대해서 두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거룩한 삶입니다.

3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구원의 3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을 때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됩니다. 이것을 칭의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이 칭의는 구원을 받을 때 우리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칭의 다음은 성화입니다. 구원으로 부름받은 성도는 이 땅에서 성화의 과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성화는 현재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성도들은 반드시 거룩한 삶,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칭의 그리고 성화 바로 다음은 영화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성화의 길을 걸어가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영화로움을 얻게 되는데 영화는 미래의 소망을 우리에게 줍니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반드시 성화의 길을 가야 합니다.

성화는 이 땅을 사는 크리스천의 목표이며 성화는 바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이 활동했던 지역이 헬라 문화권에 있었습니다. 헬라 문화의 특징이 자유 분방한 삶이었습니다.

바울이 본서를 기록한 장소인 ‘고린도’ 라는 도시는 헬레니즘 문명의 중심부에 위치한 향락 도시였습니다. 그곳에는 특히 여신 아프로디테 (Aphrodite) 의 선전이 있었고 1,000여명의 신전 창녀가 있어 종교 행위의 하나로 매음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헬라 지역에는 무질서한 성범죄, 매음, 난교들이 성행하고 있었는데 이는 고대 헬라인들이 향락을 지고의 가치로 추구하였기 때문에 성적인 것을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는 거룩함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회심하고 교회 공동체로 들어온 자들의 삶이 이방인들의 삶과 전혀 다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고 그것이 바로 거룩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크리스천이 된 후에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의 삶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인데 그것이 홀리 라이프 즉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신자들이 끝까지 추구해야 하는 성화의 삶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거룩함은 성적으로 순결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헬라 문화권에 있었던 사람들은 아내를 존귀하게 여기질 않았고 아내가 있음에도 다른 여자들과 성적인 행위를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성도가 음란에서 벗어나 거룩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신 것은 부정한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거룩하도록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십니다(레 19:2).

거룩함이란 바로 하나님 때문에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옛생활의 습관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거룩함이란 죄의식을 갖는 삶입니다. 거룩함은 죄와 반대의 개념입니다.

사도바울은 가정에서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남편들에게 아내를 대할 때 존귀함으로 대할 것을 권면합니다. 거룩함은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팬더믹은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거룩한 백성입니다(벧전 2:9).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 있든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언택트나 비대면의 시대를 살아간다고 해도 우리는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려면 우리의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거룩한 분이 늘 내주하고 있어야 합니다.우리를 거룩하게 해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The Holy Spirit)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성경은 우리 몸을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 3:16).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성령님을 의지하고 붙들 때 우리는 거룩한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두번째 삶은 형제를 사랑하는 삶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실제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사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했던 방식들이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우리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간절하게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일부의 신자들은 잘못된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현재의 삶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며 사는 삶이었습니다.

이들은 실제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도 하고 가진 집을 팔어서 다 교회에 헌금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집을 돌면서 얻어 먹고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들에게 실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형제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형제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바울은 어려움에 처한 형제나 자매를 돕는 것이 형제 사랑의 기본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형제 사랑의 깊은 의미를 그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11-12절입니다.

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12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형제 사랑에 대해서 아주 독특하게 실제적인 방법을 가르쳐주는데 그것은 자신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시대가 어렵다고 시대가 종말을 향한다고 하나님이 부르신 곳을 떠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 가운데 일부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몰지각, 몰이해로 인하여 마음의 질서와 평정을 잃고 무절제한 방종과  무위도식에 빠진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형제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형제사랑이란 하나님이 맡긴 일에 성실과 근면으로 최선을 다해 다른 형제들에게 근심과 걱정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충분히 성실하게 부지런하게 할 수 있는 일인데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과 능력으로 최선을 대해야 교회에도 덕이 되고 가정에도 덕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형제들에게도 마음에 근심을 주지 않는 것이 바로 형제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시대에 나타나는 것이 해야 할 일들을 내팽개치고 대충대충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바로 오늘 지구가 망해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일을 최선을 다해서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일이라고 해도 최선을 다해서 심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들에게 마음의 근심을 주지 않도록 일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말세를 맞는 성도들의 행실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행실이라는 것입니다.

코로나 팬더믹의 시간이 바로 우리에게는 맡겨진 일들에 근면과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형제 사랑입니다. 시대가 어럽다고 함부로 자신을 방임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이럴 때 믿음의 바탕을 두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성령으로 충만케 하셔서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고 우리의 삶이 거듭나게 하옵소서.

정욕적이고 세속적이며 성적인 타락이 극심한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순결을 지키며 살아가게 하시고 어떤 죄의 유혹이 온다고 해도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인해서 거룩한 몸을 지킬 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아버지 형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옵소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위해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만물의 근원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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