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미국의 대통령을 뽑는 날입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 특별하게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2020년은 어느 시대보다 양극단의 시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거 후에 분열과 폭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찬송가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1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 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후렴)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아멘)

 

2 옥 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얻었네 우리도 고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 되도다

3 성도의 신앙 본받아 원수도 사랑하겠네 인자한 언어 행실로 이 신앙 전파하리라


오늘의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2:10-20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칭찬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지역에 들어가서 사람들의 눈에도 참으로 흠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크리스천들이 본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그는 철저하게 자비량 선교사(텐트메이커)로 활동하면서 신앙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들 앞에서도 늘 겸손했습니다.

그의 사역에서 본받을 점이 오늘 10절의 말씀에 나옵니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사도바울은 사역의 초점을 하나님과 관계에 두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그는 예수님을 닮으려고 늘 애쓰고 힘썼습니다. 거룩한 삶은 인간의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 안에 충만했을 때 나오는 성품입니다. 우리 안에서 내가 죽고 예수가 살기 시작하면 우리 삶은 거룩한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간다고 해도 내가 죽고 예수가 우리 안에서 사신다면 우리도 바울처럼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크리스천 안에서 나타나는 성품입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내 안에 내가 산다면 우리의 내면은 결코 거룩한 성품이 나오질 않고 거짓되고 죄악된 삶 밖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어디에서든지 그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그의 삶의 모토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태신자들에게는 바울은 아버지와 같은 사람입니다. 바울은 태신자들을 자녀들처럼 아끼고 섬겼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라고 말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양을 많이 키웁니다. 목자는 양들을 인도하고 먹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거칠고 불량하고 게으른 양들이 있습니다. 그때 목자는 몽둥이로 양들을 때리거나 개를 통해서 그들을 일으켜 세웁니다.

사도바울은 그들의 영혼을 늘 생각하며 그들을 지도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말을 듣지 않고 진리에 거스리는 행동을 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그들을 지도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들이 진리에서 벗어날 때 그들에게 바른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잘못되었을 때 그들을 훈계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사랑으로 낳았기 때문입니다.

현대 교회에 가장 약한 부분이 바로 사도바울의 사역처럼 잘못되었을 때 그들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공동체에 필요한 부분인데 현대교회가 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12절에 있습니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합당히 행하다’는 것은 ‘바른 걸음을 걷는다’는 의미로 즉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는 일상 생활에 있어서도 하나님 나라의 시민답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는 것은 그의 사역의 방향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어려워지고 성도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는 것을 늘 마음에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사역의 목표로 정했기 때문에 교회가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합니다. 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사료에 의하면 바울은 못생기고 키고 작고 말도 어눌하고 머리도 다 빠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안질이 있어 육신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읽는 것도 어려워서 늘 대필을 데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에게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로 인해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한 이유는 그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증거가 무엇일까요?

바울은 13절 후반부에서 ‘말씀이 너희 믿는 안에서 역사한다’고 말합니다.

즉 말씀을 따라 성령의 열매들이 풍성하게 맺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을 말씀을 듣고 데살로니가전서 1:9-10절에서 보여주는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즉 우상을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온 각처에 그들의 변화된 소문이 퍼져 나간 것입니다.

현대에도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는 교회는 바로 이런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처럼 목회자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교회가 바로 건강한 교회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비록 복음이 목회자나 전도자라는 매체를 통해 전달되지만 듣는 회중들이 그것을 단순한 인간의 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것은 어떤 시대를 망론하고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현대는 선지자가 활동하는 시대나 사도의 시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세운 종들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한다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가 있을 때 말씀 전하는 자도 담대히 전할 수 있으며, 메시지를 듣는 자도 말씀에 순종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변화를 경험하며 또한 인생의 예상치 않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가 예루살렘의 교회의 좋은 점을 본받았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좋은 교회는 좋은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데 데살로니가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서 그 시대를 이길 수 있는 믿음을 본받았습니다.

14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예루살렘 교회를 지칭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무엇을 본받은 것일까요? 바로 고난을 피하지 않은 것입니다.

14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믿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15-16절에서 유대인들이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대적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데살로니가 교회에 적용해 본다면, 그들도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목숨의 위협을 느꼈을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2에 의하면 데살로니가교회를 비롯한 마게도냐의 교회들은 많은 환난과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들이 당한 고난은 우연히 사업이 망하거나 자연재해로 인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일어난 자발적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를 선택하느냐, 세상의 안락함을 선택하느냐의 기로에 서서 기꺼이 예수를 선택함으로 고난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핍박 앞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해서 기꺼이 고난을 자처한 교회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자랑합니다.

바울은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가문과 학벌은 대단했습니다. 그는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고 바래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시민권을 태어날 때부터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과 마찬가지로 그도 베냐민지파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도 자랑거리들이 많았지만 그는 19절-20절을 보면 그의 자랑은 이런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자랑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기쁨이니라”

바울은 소망과 기쁨과 자랑에 대해 말하면서 그것을 면류관에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그 면류관이 데살로니가교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의 자랑이고 면류관이고 기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천국에 갈 때 하나님은 그에게 물을 것입니다.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  

바울은 “전도하다가 왔습니다”.

“누구를 전도했느냐?”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데살로니가교인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바로 저들입니다”. 얼마나 감격 스러운 장면이 될지 상상하면 할수록 기쁨이 차오릅니다.

사도바울의 자랑을 보면서 우리의 소망, 우리의 기쁨, 우리의 자랑, 우리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혹시 자녀가 소망이고, 돈이 기쁨이며, 높은 위치가 자랑이고, 교회의 직분이 자랑이고 사랑들의 칭찬과 영광이 아닙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도 때가 되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똑같이 사도바울에게 물었던 질문을 하실 것입니다.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대답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복음의 감격이 있습니다. 죄사함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복음은 생명을 살립니다. 복음은 우리의 자리를 바꾸어줍니다.

지옥행에서 천국행으로 바꾸어주었습니다.

코비드 시대에 복음을 진지하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명이라도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서 구원받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면류관이요 우리의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기도


하나님 아버지, 데살로니가 교회를 보면서 이런 기도를 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칭찬받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목회자의 메시지를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대로 열매를 맺게 하여 주옵소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을 할 수 있게 하시고 교회가 교회답게, 제자가 제자답게 살도록 새롭게 하옵소서.

온 공동체에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셔서 한 영혼이라도 복음으로 구원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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