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모압과 같은 교만이 늘 자리잡고 있습니다.

모압은 교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모압의 최후를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교만은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 세우는 것입니다. 교만의 끝은 영혼의 파멸임을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울 수 있도록 주님을 마음에 보셔야 합니다. 자기 중심적인 마음이 예수 중심으로 바뀔 때 우리 삶은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만약에 나 중심에서 예수 중심으로 삶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교만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 함부로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그런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됩니다.

묵상 말씀: 예레미야 48:29

우리가 모압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의 자고와 오만과 자랑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We have heard of Moab's pride-- her overweening pride and conceit, her pride and arrogance and the haughtiness of her heart.”


찬송가 91장 슬픔마음 있는 사람

1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 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후렴>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2 거룩하신 주의 이름 너의 방패 삼으라 환난 시험 당할 때에 주께 기도드려라

3 존귀하신 주의 이름 우리 기쁨되도다 주의 품에 안길 때에 기뻐 찬송 부르리

4 우리 갈 길 다 간 후에 보좌 앞에 나아가 왕의 왕께 경배하며 면류관을 드리리


오늘의 말씀: 예레미야 48:26-35 모압의 교만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모압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심판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모압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이었으나,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그릇된 길을 걸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천연의 요새지에 거주하면서 형제 나라인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괴롭히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강대한 군사력을 믿고 영원히 망하지 않을 것같이 자고 했지만 역사를 주관하시며 각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실 권세를 소유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공의의 심판을 행하실 것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왜 그렇게 자고하고 자신들의 업적과 부를 자랑했던 모압이 파멸에 처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교만이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26 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 이는 그가 여호와에 대하여 교만함이라 그가 그 토한 것에서 뒹굴므로 조롱 거리가 되리로다

29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의 자고와 오만과 자랑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26절과 29절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서 교만한 마음이 있고 자랑하고자 하는 오만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의 모습을 술에 취한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26절에 분명하게 모압이 술에 취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말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모압은 마치 돼지처럼 자신이 토한 곳에서 뒹굽니다.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면서도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조롱을 알지 못하고 마냥 즐거워합니다. 술에 취했기 때문입니다.

모압의 잘못은 하나님 앞에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모압의 교만은 최상급의 표현을 써서 심한 교만을 강조합니다.

자고, 오만, 자랑, 마음의 거만 등 모든 면에서 교만하고 또 교만합니다.

교만하면 누가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자신이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교만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지도 알지 못합니다.

CS 루이스는 하나님이 가장 큰 죄를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교만을 가장 큰 죄라고 보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고 하나님께 무릎을 끓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은 어느 곳에서나 환영받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에 교만은 조롱 거리가 된다고 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즉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권세를 인정치 않으며 스스로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만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만인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심으로써 심판하십니다.

모압이 업적을 자랑했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절대 적이 침공하지 못하는 천연요새라고 자랑했습니다. 또한 풍요로움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이 성취한 것은 자신들의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오직 세상적인 자랑거리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보실 때 얼마나 가증스럽겠습니까? 이들에게는 겸손한 흔적도 없습니다. 겸손이라는 것은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그런 모습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조롱거리로 삼았습니다. 이들이 그렇게 자랑했던 천연요새도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군사력과 힘과 부도 적들이 쳐들어 왔을 때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모압이 망한 것은 그들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피조물로서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당하며 비웃음 거리가 될 것입니다.

두번째 모압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이유가 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네가 이스라엘을 조롱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도둑 가운데에서 발견되었느냐 네가 그를 말할 때마다 머리를 흔드는도다

모압은 형제 나라 이스라엘이 멸망당할 때 공공연하게 조롱하며 즐거워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할 때에 도둑이 현장에서 잡혀서 끌려간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며 그것을 즐거워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압에 악한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모압은 이스라엘의 불행을 즐거워했습니다.

교만한 자들의 특징은 절대적으로 남을 생각하거나 남의 고통을 헤아려보지 않습니다.

모압은 같은 형제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 그들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지도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도움을 요청해도 그들은 도움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곤경을 보면서 박수치고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모압을 심판하셨을까 생각할 때 고난당하는 자들을 옆에서 도와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고통당하는 자들과 함께 고통당하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옆집이 잘되면 배아프고 옆집이 망하면 잘되었고 한다면 그런 이웃은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그런 이웃들이 형제 자매를 이루고 있다면 그곳에는 평화나 화평 조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은 교만한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이기적인 마음이 이타적인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자기만 자랑하던 교만한 마음을 가졌던 자가 예수를 믿음으로 자기를 내려놓고 형제와 자매의 아픔에 공감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나’에게서 ‘우리’로 관심이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동체원으로 함께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공동체에 있어야 내가 교만한자인지 아닌지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코비드 19로 비록 형제 자매를 만나지 못하지만 이럴 때가 바로 우리 자신을 넘어서 서로의 관계를 재조명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형제 자매로 얼마나 가까웠는지, 우리의 관계가 피상적인 관계였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시기를 통해서 서로를 위해서 생각하고 서로 기도해주며 고통을 함께 나누는 믿음의 사람인지 아닌지 같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기적인 공동체는 심판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서로 함께 하는 공동체입니다. 서로 고통을 함께 나누고 함께 웃는 공동체가 바로 하나님이 축복하는 공동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톨스토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완성이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할 수 없다. 자랑은 자기를 파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교만한 자는 자기를 자랑하는 자입니다.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망각하는 자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교만이 패망의 앞잡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만의 끝은 결국 멸망입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까지 올라가 스스로 교만의 늪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죄인인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가면서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늘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와서 배우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겸손한 자는 높여 주십니다.

모압이 교만으로 멸망당하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모압의 교만을 보면서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교만을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 안에 주님의 겸손이 임할 수 있도록 늘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있는 모압 같은 교만한 마음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부와 업적을 자랑하고 나의 것들을 자랑했습니다. 하나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땅을 살아가면서 주님의 겸손한 마음으로 형제 자매를 대할 수 있게 하시고 형제의 아픔을 공감하고 같이 아파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겸손한 옷을 입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오날 하루도 자기의 위치를 파악하고 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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