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 크리스천들에게 필요한 것이 영적 분별력입니다. 영적 분별력은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합니다. 첫째는 자신의 믿음을 살피는 것과 둘째는 사단의 공격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분별력은 믿음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영적 분별력을 갖지 못하면 우리 자신의 믿음을 점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강하게 하나님과 접촉되어 있지 못하면 우리는 대적과 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 분별력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 관계입니다. 어떤 시대를 살아간다고 해도 하나님과 관계가 중요하기에 우리가 힘쓰고 애써야 할 것은 영적인 실체를 파악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알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찬송가 423장 먹보다도 더 검은

1 먹 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마음이 흰눈 보다 더 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후렴> 주의 보혈 흐르는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2 모든 의심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져 슬픈 탄식 변하여 기쁜 찬송 되었네

3 세상 부귀 영화와 즐겨 하던 모든 것 주를 믿는 내게는 분토만도 못하다

4 나의 모든 보배는 저 천국에 쌓였네 나의 평생 자랑은 주의 십자가로다


오늘의 말씀: 예레미야 47:1-7 블레셋에 대한 심판 예언

46장에서 51장까지 유다를 둘러싸고 있는 당시 10개의 열방에 대한 예언 중에서 오늘 47장 말씀은 애굽에 이어서 두 번째로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무엇 때문에 블레셋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을 당해야 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언이라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 계시하는 것입니다. 특히 심판 예언은 나라의 생존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런 예언은 블레셋이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경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블레셋이 북쪽에서 내려오는 강력한 세력인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물이 북쪽에서 일어나 물결치는 시내를 이루어 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에 사는 자들을 휩쓸리니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그 땅 모든 주민이 울부짖으리라.”

북쪽에서 일어나는 물은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바벨론은 현대의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그 주변국가들을 초토화시켜버렸습니다.

바베론이 가는 곳마다 나라와 민족이 망하고 백성들은 죽음의 공포와 미래의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심판을 받은 나라들이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요, 둘째는 애굽이요 세번째인 블레셋 나라입니다.

블레셋이 왜 이렇게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은 본문에 별로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블레셋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알게 되면 왜 그들이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은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자손입니다(창 10:3,14).  에그론,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가사 등 다섯 개의 주요 도시들로 구성된 블레셋은 매우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가나안 지역을 장악하여 주도세력으로 자리잡았습니다(수 13:3).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관계를 맺게된 것은 삼손 시대부터인데, 이 무렵 강력한 철기 문명과 정치적 조직력으로 가나안의 맹주로 군림한 블레셋은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점령하려고 하였습니다(삿 14장, 18장).

블레셋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이후 가나안에 정착한 초기부터 이스라엘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던 족속이었습니다.

이들은 다윗 통치기만 해도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이스라엘이 솔로몬 사후 남북 왕국으로 분열된 이후 점차 그 기세를 회복하여 마침내 남유다 왕국에 상당한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섬겼던 수많은 우상은 선민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을 병들게 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앗수르 왕 사르곤이 이 성을 쳤고(사 20:1), 이후 바벨론에게 정복(B.C. 604)되므로 역사에서 다시는 그 이름이 나지 못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중동 가나안 지방 전토를 '팔레스타인'(Philistines)이라 부르는 것은 이 민족이 그 전성기 때 얼마나 강력한 위세를 떨쳤었는가를 짐작케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내용 중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어떻게 바빌론의 노여움을 사서 침공당했는지에 대한, 또 블레셋 사람들이 영적으로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구체적 상황의 언급이 없습니다. 왜 블레셋이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되었을까 생각할 때 오늘 본문에서 언급된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5절입니다.  “가사는 대머리가 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잠잠하게 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그러면 블레셋은 왜 바벨론에게 유린당합니까? 왜 하나님이 그렇게 징계하셨습니까? 5절 하반절입니다.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가사와 아스글론은 블레셋의 중요한 도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모든 것들이 탈취당하고 수치를 달하게 됩니다.

가사에는 슬플 때 머리를 깎는 풍습이 있었고, 아스글론에는 몸을 베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성경에선 머리를 깎는 것은 극히 미천해짐과 부끄러움을 당한 표시이며, 몸을 베는 것은 신의 동정을 얻기 위한 미신적인 행위입니다. 이러한 블레셋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어느 때까지 몸을 상하게 하며 우상에게 매달리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자신들의 신앙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문제는 나라가 멸망당하는 시기에도 우상에서 벗어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를 계속해서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 삶에 적용해야 할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하지만 사람들의 죄된 행위를 묵과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죄악된 행동 때문에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로 그들을 다스릴 수 밖에 없습니다.

블레셋을 침공하는 바벨론 군대는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를 대행하는 것입이다. 하나님은 누구의 죄악이든지 이것을 묵인하는 일이 도무지 없으십니다.

죄에는 반드시 형벌이 따르는 법이므로 죄와 짝하는 사람들은 형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의 성향이 점점 음성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무료함과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서 점점 음성적으로 죄를 짓고 있다고 합니다.

이럴 때에 우리 성도들은 모든 불의에서 떠나며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불의한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며, 악을 뿌리면 재앙을 거두게 된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는 회개만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라를 세우기도 하시고 무너뜨리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역사의 주관자 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오래 참으시고 사유하기를 즐겨하시는 분이지만, 끝까지 회개치 않고 주를 대적하는 죄인에게는 맹렬한 노를 쏟으시며 크고 두려운 심판으로 진멸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은 죄된 본성이 있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죄를 지을 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절에서 “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

블레셋 거민들은 바벨론의 칼이 너무 강력하여 칼집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탄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탄원과는 달리 하나님의 재앙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땅에 전쟁이 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블레셋을 멸망시키려는 하나님의 작정 때문입니다.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장래가 없습니다. 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으며 심판을 견디게 못하고 그들의 길은 망하도록 작정되었습니다.  

블레셋은 탄원만 할 것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찾고 만났어야 했습니다. 그 나라가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회개뿐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 인생이 살 수 있는 길 역시 회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시대건 간에 하나님께 회개할 때 다시 사는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진노를 부를 만한 죄악은 없는 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매일 하나님을 예배할 때 회개기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는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어려운 시기 일수록 하나님을 대면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회개 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시대를 살든지 살 수 있는 길이 회개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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