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코로나 시대는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보면 비상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희생자가 100만명이 넘었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큰 슬픔에 잠긴 것입니다. 큰 슬픔이 있을 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한다는 것은 우리를 다시금 일어나도록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매일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에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은 큰 힘과 용기를 줍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또한 사람을 통해서 옵니다.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줍니다. 아무리 세상이 무너지고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도 하나님은 다시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어려운 때에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용기를 얻어야 합니다.


찬송가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https://www.youtube.com/watch?v=UDB0Mpf-6uM

1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 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2 옥 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얻었네 우리도 고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 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3 성도의 신앙 본받아 원수도 사랑하겠네 인자한 언어 행실로 이 신앙 전파하리라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아멘


오늘의 말씀: 예레미야 45:1-5 바룩을 위한 위로

오늘 말씀은 시점이 어제 말씀과 전혀 다른 때입니다. 어제 말씀은 남유다가 바벨론의 침공으로 멸망당하자 보다 안전한 곳인 애굽에 내려간 유다의 남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시점이 여호야김 넷째 해 곧 B.C.605 년 경입니다.

이때 예레미야는 성전 출입을 금지당했고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던 때였습니다. 이때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만 그 예언의 말씀을 선포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의 서기인 바룩이 예레미야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바룩은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습니다. 바룩도 동족들이 받게 될 하나님의 심판과 백성들의 박해로 인해 자신이 겪게 된 고난을 생각하며 너무나 큰 비탄에 빠져버렸습니다.

예레미야와 함께한 바룩에게도 이 시간이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바룩이 이런 상황에 탄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가 예레미야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비탄에 빠진 바룩을 위로하기 위해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2-3절 말씀입니다.

2 바룩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3 네가 일찍이 말하기를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

민족의 멸망을 예언하며 고군분투하며 예레미야 선지자와 동행한 바룩에게 주어진 현실적인 삶의 조건은 시온의 대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레미야가 당하는 고통, 눈물, 아픔이 고스란히 바룩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왜 바룩은 이렇게 탄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바룩이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예레미야를 대신해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요시야왕 때부터 여호야김4년까지 이스라엘와 유다의 죄악상을 낱낱이 기록하여 유다에게 임할 하나님의 재앙을 듣고 뉘우치고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악과 죄를 용서하시리라는 내용을 기록하게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서기관 바룩에게 두루마리에 기록하게 하고 여호와의 성전에 가서 금식일날 낭독하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바룩을 시킨 것은 이미 그가 시위대뜰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야김5년 9월에 민족적인 특별 금식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비상금식을 위해 온 유대인들이 각지에서 예루살렘에 모인 것입니다.

이 때 바룩은 예레미야의 명을 받아 금식에 동참한 모든 유다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낭독한 장소는 여호와의 성전 위뜰 동쪽문에 있는 사반의 아들 그마랴의 방이었습니다.

바룩이 전한 예레미야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상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벨론의 포로에 관한 저주였기 때문이다.

바룩이 성전 높은 곳에서 외친 여호와의 말씀을 왕의 일등서기관인 그마랴의 아들 미가야가 듣고 왕궁에 있는 서기관의 방에 들어가서 그곳에 있는 왕궁서기관들과 왕자들과 고관대작들에게 충격적인 예레미야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때 왕의 관리들이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어  백성들에게 낭독한 두루마리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바룩이 두루마리를 가지고 오자 왕의 관리들이 우리가 듣도록 낭독하라 하니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관리들이 충격적인 예레미야의 말씀을 듣고 서로 놀라 이 말을 왕에게 말하겠다고 합니다.

관리들은 바룩에게 이 말을 어떻게 기록했느냐고 물으니 바룩은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다고 했고 관리들은 바룩에게 너는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관리들은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왕에게 가서 이 사실을 고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여후디를 시켜 두루마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고 가져다가 왕과 모든 왕의 신하들앞에서 낭독하게 했습니다.

그 때는 겨울이어서 왕궁에 화로를 피웠는데 여후디가 두루마리 서너쪽을 읽으면 읽은 것을 왕이 면도칼로 베어서 화로에 태우고 계속해서 베어 화로에 다 태워버렸습니다.

왕과 신하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도 옷을 찢고 회개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두루마리를 태우지 말도록 왕에게 권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왕은 왕자와 관리들을 명하여 바룩과 예레미야를 잡아오라고 명령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숨기셔서 찾지 못했습니다.

바룩은 공적 공증인과 율법 서기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시대의 눈물과 고난의 선지자인 예레미야의 전속 서기관으로 예레미야서를 기록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바룩의 사명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일점 일획도 가감없이 기록하는 것입니다.

바룩은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시대에 예레미야의 입이 되었고 손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바룩이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치 못한 이유는 조국 유다의 심판과 멸망을 직접 기록하고 또한 사람들 앞에서 낭독해야 했던 괴로움이 있었고 또한 심판의 예언을 선포할 때에 나타난 동족들의 배척과 불순종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바룩은 아무리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해도 백성들이 죄에서 돌이키지 않고 도리어 예레미야와 바룩을 핍박하는 것을 볼 때 마음에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진실을 붙드는 대가가 고통과 슬픔임을 알면서도 기꺼이 예레미야 선지자와 함께 그 길을 선택한 바룩, 그 고통의 한 가운데서도 예레미야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한 바룩을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십니다.

4-5절입니다.

4 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5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절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나라를 세우실 뿐 아니라 홍하게도 망하게 하실 수 있다는 주권적 섭리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경우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불순종과 배도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그 재앙에서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선택받은  언약 백성으로서 원래의 귀한 부르심에 응답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선택된 극상품의 포도 종자로 심기워졌으나, 이상하고도 괴이한 악취를 내는 들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2:21).

하나님은 한 나라만 국한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왜 하나님은 바룩을 위로하시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이야기할까요?  

이것은 자신의 민족의 멸망을 괴로워하는 바룩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인정하고 하나님이 다시 이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소망의 확신을 갖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선포해도 나라가 변화되지 않고 백성들이 죄에서 돌이키지 않아서 멸망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상심이 되겠습니까?

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이것 때문에 상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라와 민족, 백성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나라의 흥망성쇠, 개인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때일수록 하나님의 주권을 알아야 실망하지 않고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God is in control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참된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바룩의 생명도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나라를 세우거나 망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기에 너무 실망하거나 상심하지 말라고 바룩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런 나라가 멸망을 당하는 때에 바룩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다는 약속을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바룩은 이제 자신을 위해서 큰일을 찾고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신의 목숨을 보존할까 궁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룩에게 그만 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바룩을 보호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재앙을 내릴 터인데 바룩만은 하나님이 보호하여 주십니다. 바룩이 어디로 가든지, 바룩의 목숨만은 건져 주신다고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와 바룩만 보호하고 나머지는 심판하십니다.


5절에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노략물'이란 것은 적을 정복하고 얻게 되는 물건입니다.  노략물이라는 것은 싸움에 대한 영예의 증거나 승리의 보상을 뜻하였으며, 따라서 소중히 간직되곤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시 유대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복은 권세나 토지, 출세를 얻는 것이 아니라 노략물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신실한 유대인들을 여호와의 전쟁에서 얻은 거룩한 노략물처럼 생명을 건져주시고 구원해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와 바룩을 노략물처럼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죄악으로 가득차고 거짓과 속임수 계략으로 고통을 당하는 세상속에서 하나님이 거룩한 성도들에게 주시는 최고의 복은 무엇일까요?

주님이 오실 때 그의 사랑하는 거룩한 백성들을 독수리가 낚아채 듯 들어올려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몇가지 교훈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위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시대에 신실하게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들을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주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어떤 시대 가운데서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바룩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공격해와도 그들의 칼로부터 신실한 종들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능히 이길 수 있도록 그들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밤에 천둥 번개가  치면 어린 자녀들을 두려워서 부모의 품을 찾습니다. 부모가 옆에 있을 때 두려워 떠는 아이들도 평안하게 잠을 잘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아무리 어려운 때일지라도 그 시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위로는 바로 고통을 당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위로는 같은 처지에 있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어집니다.  누가 바룩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같이 고통당하고 있는 예레미야입니다. 예레미야가 바룩과 함께 있는 그 자체가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이 바룩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함께 있는 것이 그 자체가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이름으로 고통을 당해본 사람들은 형제 자매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으로 인해서 탄식할 때 이런 믿음의 사람들의 위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 모두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원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있을 때는 우리는 어려움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번째, 하나님의 위로는 사명자를 감당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고난 받는 자들을 기억하시고 도우십니다. 우리의 사명이 남아 있는 한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고 사명을 감당해야합니다.


오늘 말씀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때 당하는 어려움으로 인해서 우리 안에 탄식이 생기고 원망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상황이 바뀌지 않고 사람이 변화되지 않을 때 더 깊은 절망에 빠집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럴 때 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을 굳게 믿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를 격려하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 힘을 내어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