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 삼고 사는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생각하는 것과 추구하는 것 그리고 관심이 다릅니다.

예수님의 사람들은 세상의 부와 권력과 잘 사는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들은 개인적인 이익을 구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고 아픔 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을 더 추구합니다.

개인의 성공보다는 공동체의 유익에 관심을 갖습니다. 현재 보다는 미래의 영생에 관심을 둡니다.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그분의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삶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 삼고 그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합니다.

어려운 시기가 찾아오면 크리스천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소금으로 쓰임받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지금이 다르게 살아야 할 때입니다.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표가 나야 할 때입니다.


찬송가 340장 어지러운 세상 중에

https://www.youtube.com/watch?v=kfuSMJRMLzw

1 어지러운 세상중에 기쁜 소리 들리네 예수 말씀 하시기를 믿는 자여 따르라

2 세상 헛된 신과 영화 모두 내어 버렸네 예수 친히 하신 말씀 날 더 귀히 여겨라

3 기쁜 때나 슬픈 때나 바쁜 때나 틈 날때 예수 친히 하신 말씀 날 더 귀히 여겨라

4 주님 크신 은혜로써 부름 듣게 하시고 복종하는 맘을 주사 따라가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예레미야 43:1-13 우리는 순례자다

오늘 본문은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이를 거부하고 애굽  행을 단행하는 요하난과 그를 따르던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하난과 그 추종자들은 바벨론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갈려고 결심을 할 때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좋든 싫든 무조건 따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예레미야 42장 5절은 분명하게 그 사실을 밝혀줍니다.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뜻을 묻자 10일 만에 응답이 떨어졌습니다. 애곱으로 가지 말로 이 땅에 살라는 응답입니다. 바벨론으로부터 건질 터이니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어이 너희가 애굽으로 가면 너희가 두려워 한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 너희에게 미칠 것이고, 기근이 임하고, 전염병이 닥쳐 다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분명하게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겠다고 했던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더욱 완악해졌습니다. 예레미야에게 거짓을 말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심지어는 예레미야의 서기인 바룩의 사주를 받아서 바벨론에게 자기들을 넘기려한다고 주장하고서 예레미야와 바룩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43장 2-3절은 애굽으로 내려갈려고 작정한 자들이 꾸며낸 음모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사람들은 거짓을 만들어서 퍼뜨립니다. 어려운 시대에는 거짓된 정도들이 많아 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어렵게 만듭니다.

2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는 애굽에서 살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3 이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부추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죽이며 바벨론으로 붙잡아가게 하려 함이라

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가지 말라고 하는 애굽으로 갈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들에게 애굽은 무엇입니까?

요하난과 남은 자들에게는 애굽은 안전한 곳, 힘을 의지할 수 있는 곳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들은 애굽이 그들의 생명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피해가는 자에게 안전한 곳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기 싫어서 다시스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하지만 그 배는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기근이 올 때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가드왕 아기스에게 망명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그곳도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불안정하고 위험한 곳이라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함께 있는 곳이라면 이곳이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우리는 안전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계신 곳이 바로 안전한 곳입니다.

요하난과 유다인들은 바룩과 예레미야를 체포해서 이집트로 끌고갑니다. 6절과 7절을 보십시오.

“곧 남자와 여자와 유아와 왕의 딸들과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맡겨 둔 모든 사람과 선지자 예레미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거느리고 애굽 땅에 들어가 다바네스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예레미야가 다바네스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예언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이 예언은 앞으로 바벨론에 의해서 애굽이 멸망할 것을 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너는 유다 사람의 눈 앞에서 네 손으로 큰 돌 여러 개를 가져다가 다바네스에 있는 바로의 궁전 대문의 벽돌로 쌓은 축대에 진흙으로 감추라”

예레미야가 감추어 둔 돌 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화려한 장막을 치고 이집트를 정복할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이 예언이 이루어지면 애굽이 안전한 곳이라고 믿고 이곳으로 피신한 남유다 유민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선지자 예레미야와 그의 서기인 바룩이 그들과 함께 있다고 해서 그곳이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요하난과 그 일행들이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거부하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몇 가지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할 교훈들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합니다.

참 성도와 명목뿐인 거짓 성도를 구별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기준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자신의 생애 가운데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사는가의 여부입니다. 성도라고 자처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에는 전혀 관심도 없이 자기 고집과 주장대로만 사는 이는 결코 성도라는 이름에 합당한 자라 할 수 없습니다.

요하난이 선택하였던 애굽, 그 중에서도 그가 거하였던 다바네스는 바벨론과의 오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스라엘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하난과 그 추종자들이 오랫동안 거하게 될 땅으로 그 곳을 선택하였던 것은 매우 지혜롭고 사려 깊은 행동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땅의 풍요로웅이나 애굽의 군사력보다 더 우선적으로 그들이 고려해야 했던 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처럼 행동했으나 막상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나자 일신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제 갈 길로 가버렸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자 하는 자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찾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기 삶에 최고의 가치로 삼는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두번째는 우리의 안전지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어디에도 안전지대가 없습니다. 대통령이 사는 백악관도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안전지대가 내가 의지하는 애굽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믿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예수님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모릅니다. 이런 시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해야 하는 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혼의 안전지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코로나 시대가 끝나면 우리 입술을 통해서 예수 안에 거하므로 우리가 이렇게 안전하게 승리할 수 있었다는 고백들이 나와야 합니다.

세번째는 고난은 믿음의 사람을 단련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쉴 새 없이 다가오는 갖가지 고난은 하나님만을 붙들려고 하는 성도의 손을 연약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실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난이라는 방해물 앞에서 참고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내던지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신앙을 가진 성도는 이러한 고난의 위력 앞에 결코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고난을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삶 속에 다가오는 고난이 자신을 연단하고 성숙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에 찾아오는 고난은 우리를 더욱 강한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어 갑니다. 어떤 고난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들은 강합니다. 고난이라는 연단을 받는다고 해도 능히 그 고난을 참아냅니다. 그리고 승리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소망은 이 땅이 아니라 천국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요하난이 다바네스의 풍요로움을 보고 이것이 아니다 하며 다시 미스바로 돌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에는 If(가정)가 없습니다.

요하난과 그 무리들은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부강한 애굽을 천국으로 삼고 애굽에 가면 자신들은 안전하게 살 수 있고 애굽만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소망을 둔 자들은 천국의 백성답게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온갖 영화보다도 하나님께서 주실 천국에 소망을 두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꿈꾸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당하는 어려움도 능히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비록 이 땅에서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못한다 해도 그것에 별 상관없이 나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주님과 함께 보내면서 감사하며 기뻐하며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고통이 있으면 회복이 있습니다. 절망이 있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지옥이 있으면 반드시 천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서 가는 순례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직 끝이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주어진 시간 속에서 천국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 기도

하나님 아버지!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답답해하고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심적으로 육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우리의 고통에 동참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런 시기를 통과할 때 내가 겪는 고통에만 집중하지 않게 하시고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면서 승리 할 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는 어디에도 안전지대가 없습니다. 안전지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깨닫고 주 안에 거할 수 있도록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주님과 기도로 대화하며 주님과 깊은 교제를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셔서 이 땅에 것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관심을 갖고 더욱 하나님을 위해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며 천국을 경험하는 삶을 살수 있도록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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