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할 때 속에서 충돌하는 두 마음 중 어느 쪽을 따르고 있습니까?

그런 선택이 눈앞의 이익과 안락보다는 시련이 예상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의 선택은 하나님의 뜻이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을 할 그 순간에는 손해보는 것 같지만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 할 때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결정해보십시오.

 

오늘 묵상 말씀: 예레미야 40:4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풀어 주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

But today I am freeing you from the chains on your wrists. Come with me to Babylon, if you like, and I will look after you; but if you do not want to, then don't come. Look, the whole country lies before you; go wherever you please."


찬송가 320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

https://www.youtube.com/watch?v=K-iYaG9Bncs

1 나의 죄를 정케하사 주의 일꾼 삼으신 구세주의 넓은 사랑 항상 찬송합니다

<후렴>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고 언제든지 주 뜻대로 사용하여 주소서 (아멘)

 

2 내게 부어 주시려고 은혜 예비 하신 주 주의 은혜 채워주사 능력 있게 하소서

3 죄의 짐을 풀어주신 주의 능력 크도다 나를 피로 사신 예수 내 맘속에 오소서

4 주여 내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우사 생명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옵소서


오늘의 말씀: 예레미야 40:1-6 

2020년도가 참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벌써 10월 1일을 맞이했습니다. 올 한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100만명이 넘게 죽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습니다. 제가 아는 지인들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지난 주에 나바호 인디언들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보았는데 보는 내내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희 교회가 선교하는 부족이기에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어느 나바호 가정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할머니와 부모님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는 마스크도 손세정제도 물도 풍부하지만 그곳에는 쉽게 구하기도 어렵고 물도 부족해서 손도 제대로 씻을 수도 없었습니다. 여름이면 비한방울 내리지 않는 땅은 더 황폐해 보였습니다. 할머니와 부모님을 잃고 혼자 남겨진 나바호 아이는 언어를 잃어버렸습니다. 마스크를 쓴 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눈물만 흘리는 것을 보았는데 그 동영상을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많은 사람을 죽이고, 달아나던 시드기야를 붙잡아 그의 눈앞에서 자녀들을 죽이고, 유다 고관과 귀족을 무참히 살해했으며, 시드기야의 두 눈마저 뽑고 사슬에 결박해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바벨론 왕이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그때까지 감옥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를 데려오라고 합니다. 적국의 왕의 호의로 자유의 몸이 된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지금 바벨론 군대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의 지휘로 유다 포로들의 호송 작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와중에 실수로 예레미야까지 체포한 겁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4마일 떨어진 라마까지 호송을 당합니다. 라마는 바벨론으로 끌고갈 포로들의 집결지였습니다.

그렇게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중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알아본 느부사라단 사령관의 도움으로 다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사령관인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3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느부사라단 사령관은 정복자입니다. 그런데도 유다가 왜 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전에 하나님께 받았던 메시지입니다. 유다에 대해서 늘 외쳤던 말씀인데 바벨론의 사령관의 입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유다의 군사력이 바벨론에 비해서 한참 모자라고, 국가 경제력이 부실해서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유다의 패망의 원인이 ‘범죄와 불순종’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보다 유다가 무너진 이유를 더 바르게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은 오르고 싶은 자리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더 많은 것을 움켜쥐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잘못된 시대를 만나서, 아니면 인생에 너무 운이 나빠서도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말씀에 불순종해서 무너집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먼저입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잘못된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회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사령관의 말로 확인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예레미야는 편안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남유다가 망하고 자기 민족들의 죄로 인해서 눈물을 많이 흘렸으니까 나머지 인생은 보상을 받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눈물을 많이 흘렸는데 이제는 눈물없이 기쁨으로 삶을 살아가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4절입니다.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풀어 주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

그러나 예레미야는 느부사라단의 초청을 거절하고 다시금 폐허가 된 땅, 아직도 회개하지 않은 백성들이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그 땅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대체 무엇이 예레미야의 발길을 돌려 새로운 고난을 택하게 했을까요? 그가 보장된 영화를 거절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바벨론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느부사라단 사령관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바빌론으로 가는 것이 좋게 보이면 자신이 뒤를 보아줄 터이니 함께 가고, 만약 따라가고 싶지 많으면 그냥 남아 있어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큰 선택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작고, 미미한 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수없이 많은 선택의 결과입니다.

예레미야는 그동안의 고생을 그치고 영화를 누릴 자격이 충분했습니다. 그는 남유다의 멸망을 예언하였던 위대한 예언자이며 평생을 고생 가운데 살면서 한 길로만 달려온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패권국 바벨론의 황제가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며 (39: 11-14) 사령관 느부사라단의 정중한 초청을 받은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분,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는 이유만으로 예레미야는 주저없이 발길을 돌렸던 것입니다.

두번째로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도 그에게는 감당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느부사라단의 제의를 물리치고 조국으로 발길을 돌렸던 또 한 가지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하신 사명이 아직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듭되는 경고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남유다 왕국을 결국 멸망에 이르도록 하셨지만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존속시켜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이은 메시야를 탄생하게 하시려는 계획은 결코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하여 바벨론 포수기에 다니엘과 에스겔, 그리고 예레미야를 준비하셔서 각각 바벨론과 이스라엘에서 선민 중 남은 자를 보호하도록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는 남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인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였고, 또 남유다 멸망 이후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같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바벨론을 선택하지 않고 미스바를 선택한 것입니다.

세째로 예레미야가 남유다로 가기로 결정한 것은 고통당하는 백성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느부사라단 사령관의 제안을 물리치고 바빌론으로 떠나지 않고, 자기 백성들 곁에 남기로 결심했습니다.

6절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사니라

예레미야 시대를 머릿속에 그려보십시오. 나라는 망해 있고, 유다 백성들은 더 이상 소망이 없이 살아갑니다. 바빌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그들대로 서글픔 속에서 바빌론 강변에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일이 없고 악기를 연주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어 놓았습니다. 또한 예루살렘과 유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처량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가진 것, 배운 것 없는 사회의 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들과 함께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죄로 죽어가는 형제 자매들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바벨론으로 가면 편안하게 삶을 보장해 주겠다는 사령관의 제안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그대신 그는 바벨론을 선택하지 않고 멸망당한 유다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편안한 미래를 선택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미스바에 가서 고통당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전하고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기 위해서 그곳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생을 고난과 눈물 가운데 살아왔던 예레미야에게 바벨론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의 권유는 너무나 달콤한 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연히 그 제의를 물리치고 폐허가 된 조국의 땅, 멸망한 민족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에게는 바벨론에서의 영화보다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그리고 고통당하는 형제 자매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서 그는 남유다를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의 선택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생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이땅에서 사명을 주었습니다. 모든 것이 막혀 있는 것 같은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사명대로 살아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은 고통당하는 자들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처럼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 기도

하나님 아버지! 현재 우리의 상황은 막혀있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에 따라서 살지 않고 늘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하며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고통당하는 형제 자매들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고통하는 자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위로와 격려를 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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