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드기야는 주변 사람들을 의식했습니다. 바벨론에 항복하면 사람들에게 조롱당할까 두려웠습니다.

바벨론에 항복한 유다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왕이 빨리 항복하지 않아서 우리를 힘들게 했느냐의 비난입니다.

또 왕궁에 함께 있는 신하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예루살렘은 반바벨론파들이 득세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조금만 참으면 평화가 온다고 말합니다. 거룩한 땅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시드기야는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이런 시드기야는 바른 지도자가 아닙니다.

시드기야는 조롱과 원망이 두려워서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지만 사람들이 두려워 머뭇거리다가 말씀을 따르지 못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생활 가운데 혹 하나님 말씀보다 이웃의 조롱과 따돌림이 두려워 포기한 하나님의 뜻은 없는지 신앙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묵상 말씀: 예레미야 38:19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 염려하건대 갈대아인이 나를 그들의 손에 넘기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King Zedekiah said to Jeremiah, "I am afraid of the Jews who have gone over to the Babylonians, for the Babylonians may hand me over to them and they will mistreat me."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1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으나 구주여 내게 힘 주사 잘 감당하게 하소서

 

2 인자한 말을 가지고 사람을 감화시키며 갈길을 잃은 무리를 잘 인도하게 하소서

 

3 구주의 귀한 인내를 깨달아 알게 하시고 굳건한 믿음 주셔서 늘 승리하게 하소서

 

4 장래의 영광 비추사 소망이 되게 하시며 구주와 함게 살면서 참 평강 얻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예레미야 38:14-28 신앙의 회색지대

어제 말씀에서 유다의 고관들에 의해 깊은 우물 진창에 갇혔던 예레미야가 에벳멜렉이라는 경건한 궁중 내시에 의해 살아나왔습니다. 에벳멜렉이 시드기야 왕에게 나가 무고한 선지자를 저렇게 죽이는 것은 안 된다고 했는데, 시드기야가 군사 30명까지 주어서 예레미야를 구출하게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극적으로 구출을 받았습니다. 그때 시드기야 왕은 다시 성전의 은밀한 곳으로 예레미야를 불러 그를 독대합니다. 시드기야는 이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시드기야는 몰라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시드기야는 친애굽파의 신하들의 말을 들어도 나라가 전혀 나아지지 않고 도리어 바벨론이 침공해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까지 맞이해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불안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문제는 만약에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한다면 그것에 순종할 수 있는가입니다.

믿음의 법칙은 순종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은 돌이켜 회개하고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듣고 알면서 불순종하면 그 영혼은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이미 상황이나 환경에서 빨간 경고등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친애굽파와 친바벨론파의 신하들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너무 답답했는지 예레미야를 부른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왕을 대면하는 것이 이번이 다섯번째입니다.

예레미야는 어떤 말이든지 자신을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요구했고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죽이지 않게다고 맹세를 합니다.  이때 예레미야가 준 말씀은 여전히 시드기야가 바벨론에 항복을 해야만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엉뚱하게도 그렇게 하면  이미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이 자기를 어떻게 할까봐 두렵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자기를 조롱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19절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 염려하건대 갈대아인이 나를 그들의 손에 넘기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때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왕이 살 수 있는 길을 말해줍니다. 죽음이 앞에 있을 때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생명의 길을 선택하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0-21절이 바로 시드기야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가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20 예레미야가 이르되 그 무리가 왕을 그들에게 넘기지 아니하리이다 원하옵나니 내가 왕에게 아뢴 바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소서 그리하면 왕이 복을 받아 생명을 보전하시리이다

21 그러나 만일 항복하기를 거절하시면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말씀대로 되리이다

왕으로서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또한 그것이 나라를 살리고 자신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라면, 그는 기꺼이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했어야 했습니다.

또한 그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왕궁의 모든 여자들이 다 바벨론으로 잡혀가서 수치를 당하고 강제로 결혼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것도 덧붙입니다.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다시 들었지만 그는 순종하겠다는 결단을 하지 않은 채,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납니다. 

이 상황에서도 시드기야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친애굽파 대신들이 자기가 예레미야를 만나 대화한 것을 알게 될까봐 염려합니다. 결국 이 만남은 알려지겠지만,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물으면 그저 예레미야가 자기를 요나단의 집 감옥으로 돌려보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만남이었다고 대답하게 합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날까지 왕궁 시위대 뜰에 감금되어 지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씀을 듣기만 했지 순종하는 결단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위로를 받고 그 말씀에 기대어서 힘을 얻어보려는 생각은 우리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순종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이유는 은밀히 예레미야 선지자를 불러서 뭔가를 듣기를 원했던 시드기야 같은 마음으로 올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이런 마음이 없을까요? 

시드기야가 선지자를 불러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구원을 얻었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선지자를 청해 말씀을 듣기를 원했고 말씀을 들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망했습니다. 

우리 역시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고 자리에 머물러도 말씀이 주는 순종의 자리에 나아가지 않는다면 역시 참 믿음의 소유자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의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두번째는 신앙의 회색지대는 없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하나님의 뜻을 다시 듣고 알았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바른 결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의 신앙은 미지근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요한계시록 3장 15절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경고하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은 차갑든지 뜨거운 신앙입니다. 즉 신앙의 회색지대란 없는 것이다.

코로나 팬더믹이 장기화되면서 신앙에 나타나는 현상들이 신앙의 나태함입니다.

매일 똑 같은 생활을 하다가 보니 신앙이 별로 달라지지 않으니까 너무 쉽게 나태해져 갑니다.

만약 우리의 신앙이 이런 상태로 장기화된다면 우리도 시드기야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순종하면 늘 삶이 새로워집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망이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심장에 있는데 나태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매일 교제를 나누는데 나태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에 신앙의 회색지대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그분의 의를 선포하기 위해서 수고하고 싶은 사명감이 가슴에 흘러넘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위해서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최선의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뜻을 물어서 앞으로 유다의 미래와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선지자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모르는 다른 이방 국가의 왕들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세속적이고도 인본주의적인 방법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애굽과 같은 세상 강대국을 두려워하여 애굽의 속국으로 애굽을 의지하여 나라의 안전을 유지하려고 했고, 또한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였습니다.

시드기야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의롭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며, 하나님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시드기야는 그분을 옳다고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고 사람들의 말과 의견과 판단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인간은 절대 인간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인간을 두려워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참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포된 메시지를 듣고 가볍게 반응하지 않고 결단하고 순종하며 그 말씀대로 살았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생명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 앞에 무릎을 끊어야 합니다.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을 의지했다면 우리는 빨리 돌이켜 회개하고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이런 코로나 시대에도 우리 영혼이 위축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어떤 풍파나 시련이 온다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능히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승리자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지혜가 부족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그 말씀대로 행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신앙에 회색지대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이 더욱 변화되게 하시고 신앙의 나태함이 사라지고 미지근한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향한 열망과 열정이 뜨거워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힘이 약할 때 힘이 강한 사람을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연약함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그래서 매일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의 삶, 정결하고 깨끗한 삶,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주옵소서.

세상의 오락과 쾌락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을 마시며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옵소서.

하나님 이런 시기에 신앙의 전기가 일어나 새롭게 변화를 경험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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