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기의 때에 하나님은 도움의 손길을 보내십니다. 그때를 위해 신실한 사람들을 준비하십니다. 비록 소수이지만 이들의 도움으로 예레미야는 힘을 얻었습니다.

사반의 아들 아히감은 예레미야를 백성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게 보호했습니다.

도움의 손길은 지금도 존재합니다.하나님께서 일마다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십니다. 이들의 말 한마디가 갈증을 해소하는 생수가 됩니다. 어두움에 한 줄기 빛이 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에게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사람을 통해 전달 되어집니다. 오늘 내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오늘 묵상 말씀: 예레미야 26:24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손이 예레미야를 도와 주어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Furthermore, Ahikam son of Shaphan supported Jeremiah, and so he was not handed over to the people to be put to death.


찬송가 549 장 내 주여 뜻대로

1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 내 주여 뜻대도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예레미야 26:16-24 똑바로 알라

예레미야 26:16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일 만한 이유가 없느니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 유다가 망하기 직전에 활동했던 선지자로서 유다 백성들에게 죄악으로 부터 돌이키라는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를 촉구하는 메세지를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를 촉구하는 예레미야의 메세지에 대하여 유다 사회의 두 부류의 그룹이 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첫번째 그룹은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를 촉구하는 메세지를 전하는 예레미야를 향해서 죽는 것이 합당하다고 반응하였습니다.

두번째 그룹은 고관들과 지방의 원로 몇 사람들이었습니다. 고관들은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고 우리에게 메세지를 전했기 때문에 그를 죽이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지방의 원로 몇 사람은 히스기야 시대에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메세지를 전했던 미가 선지자를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그를 죽이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예레미야를 죽이는 일을 만류하고 나섰습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반면에 고관들은 정치 지도자들입니다. 지역의 원로들은 지역내에서 정치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입니다.

두 그룹의 사람들을 간략하게 분류하면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를 촉구하는 메세지를 전하는 예레미야를 향해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반응하였고 정치 지도자들은 그를 죽이는 것이 부당하다고 만류하고 나섰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두 그룹의 반응이 반대로 나타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정치 지도자들이 오히려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여야 한다고 나서고 종교 지도자들은 그를 죽이는 것은 부당하며 그의 말을 청종하라고 촉구하고 나서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런 아이러니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부패하면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를 인지했으면 좋겠습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부패해지면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메세지에 대하여 느끼는 감각보다 더 무디어져서 거의 마비가 되는 상태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그 정도가 되면 하나님을 언급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도 하지만 단 한가지 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청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언급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서도 진작 본인은 하나님 말씀에 청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청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언급하면 어떻게 됩니까?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내가 만든 하나님을 말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청종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 어떻게 됩니까?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계획하고 내가 디자인한 메세지를 전하게 됩니다. 내가 계획하고 내가 디자인한 메세지는 영혼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파괴시키게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메세지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하나님께 청종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전해지는 메세지도 적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청종하는 과정을 거친 메세지는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념 편중의 거친 분노를 벗어나서 차분히 하나님 앞에서의 “겸허함”과 “덕”을 수반하게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 지도자들을 한번 돌아보십시요. 하나님 앞에서의 “겸허함”과 “덕”을 수반한 지도자를 접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현실을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께 청종하는 태도를 진지하게 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청종하기 위하여 우리가 매일 우선적으로 찾아가야 할 하나님의 참된 메세지가 있습니다. 이 메세지를 찾아가지 않고는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청종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메세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 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특징은 하나님의 참된 메세지를 윤리적 교훈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참된 메세지를 윤리적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한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청종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신학적 깊이가 부족해서 하나님께 대한 청종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청종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참된 메세지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복음을 소홀하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모든 문제의 발단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을 청종한다는 의미를 우리쪽에서 무엇인가 액션을 취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청종하는 것은 우리쪽에서 무어인가 액션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앞으로 나아가서 나같은 죄인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을 묵상 하는 것입니다.  정육점의 저울은 고기 무게에 따라 값이 결정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판단하는 근거로 이땅에서 세우는 공로와 공적 이전에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못박혀 죽으신 십자가 복음을 얼마나 풍성히 누리며 사는가를 살펴보십니다. 크고 많은 일을 해 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못박혀 죽으신 십자가 복음을 풍성히 누리기 위해서 사활을 거는 사람은 적습니다. 십자가에 대하여 해박하게 아는 지식 말구요 그 십자가의 복음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감격 말입니다. 

오늘도 십자가 복음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에 귀 기울여 보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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