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복음의 빚을 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서구에서 온 선교사들을 통해서 복음의 빚을 졌습니다. 아펜젤러나 언더우드와 같은 선교사들이 가져온 것은 의료 시스탬보다 더 강력한 영적인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복음이었습니다. 복음을 들었던 수많은 선조들이 구원을 받았고 우리까지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복음으로 인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복음의 빚은 갚아야 합니다.

오늘 묵상 말씀은 복음의 빚을 진 이방 크리스천들이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유대 크리스천들의 어려운 상황을 듣고 교회가 구제헌금을 모아서 사도 바울에게 전달한 내용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구제에 동참한 동기는 복음의 빚을 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의 빚진 자로 어떻게 복음의 빚을 갚을 수 있는지 말씀을 묵상하면서 믿음으로 행동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묵상 말씀: 로마서 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They were pleased to do it, and indeed they owe it to them. For if the Gentiles have shared in the Jews' spiritual blessings, they owe it to the Jews to share with them their material blessings.


찬송가 595 장 나 맡은 본분은

https://www.youtube.com/watch?v=5bb3rVpLcAo

1 나맡은 본분은 구주를 높이고 뭇 영혼 구원 얻도록 잘 인도함이라

2 부르심 받들어 내 형제 섬기며 구주의 뜻을 따라서 내 정성 다하리

3 주 앞에 모든 일 잘 행케 하시고 이후에 주님 뵈올 때 상 받게 하소서

4 나 항상 깨어서 늘 기도드리며 내 믿음 변치않도록 날 도와주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로마서 15:22-33 복음의 빚진 자

바울의 소원은 로마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인간의 소원과 하나님의 뜻은 완전히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로 가려고 소원하였지만, 그의 소원은 여러 번 좌절되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소원이 죄절되었을 때 낙심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사도행전 16장 6-10절에는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지역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성령이 막았습니다. 길이 막히니까 사도 바울이 길을 찾아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갑니다.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는데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막은 것입니다. 그때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가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나타났습니다. 마게도냐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왜 하나님이 소아시아지역을 막고 유럽지역을 열어두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그 지역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서바나 지역, 지금으로 보면 스페인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간절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서바나는 땅끝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 로마에 들려서 로마 성도들을 격려하고 서바나로 갈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는 그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그 일이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셔야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로마 교회에 갈 수 있는 길이 새롭게 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1장에 그 상황을 설명해줍니다.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 때  흉년으로 인해서(행 11:28-30), 예루살렘지역이 기근이 심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삶이 어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마게도니야 교회와 아가야 교회에서 이 지역을 위해서 기도하게 될 때 많은 성도들이 기도에 동참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연보 즉 구제 헌금을 했던 것입니다.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들이 이런 구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이유는 그들이 빚진 자였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회심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빚진 자의 심정으로 그들의 어려움에 기꺼이 자원하는 심정으로 구제헌금을 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마게도냐와 아가야 성도들이 했던 구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방문하고 난 후에 로마 교회를 잠시 들렸다가 서바나로 가겠다는 마음을 전한 것입니다.

저와 함께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던 박찬수목사님이 뉴올리언스에 카트리나 재난으로 1800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역하시는 교회에서 구제 헌금을 걷고 심지어는 한국에 큰 교회를 찾아가서 지금 미국의 뉴올리리언스에 카트리나 재난이 났는데 함께 동참해달라고 해서 어느 교회에서 많은 헌금을 해서 그곳에 가지고 가서 한달동안 미국교회에 머무르면서 그들을 도왔습니다. 한달을 머무르면서 복구작업을 해주었습니다.

첫 주일을 맞아 그 곳의 미국 교회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목사님은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미국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없었다면 우리 선조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덕에 저희들이 이렇게 이민오게 되었고 미국의 복음의 빚을 졌었는데 이런 형태로 나마 어려움 당한 교회를 도와줄 수 있어서 너무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 은혜를 같이 나눌 때 미국교회 성도들이 그곳에 도움을 주러 간 성도들을 품고 함께 울면서 예배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복음은 구제와 함께 가야 합니다. 믿음의 동료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우리는 서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에는 반드시 행위가 따라야 합니다.

사도바울의 기도부탁

사도 바울이 왜 대단한 사도가 되었을까? 그가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주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스스로 기도를 할 뿐만 아니라 동역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기도부탁을 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중보기도 부탁을 합니다. 그의 중보기도에는 세 가지 중요한 기도가 담겨있습니다.

첫째는 그는 가는 곳곳 마다 자신의 동족이었던 유대교 사람들부터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얼마나 신경이 쓰이고 힘든 상황이었을까요? 그래서 그는 그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그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드린 구제헌금을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기쁨으로 받아들여 주기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31절).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구제를 했다고 해도 받는 자들이 기쁨으로 받지 않는다면 그것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받는 자들이 기쁨으로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나아가 그들과 함께 편안한 쉼을 갖게 되기를 또한 중보요청을 하고 있습니다(32절).

이방인을 위한 사도, 복음 사역을 신실하게 감당했던 사도 바울의 이런 엄청난 사역은 결국 수많은 성도들의 중보기도 덕분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려움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도 여전히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어려움이 계속 발생되는 상황에 어떻게 이길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이런 시련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 힘이 바로 성도들의 중보기도에 있습니다.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중보기도입니다. 우리가 코로나 시대를 지나가면서 중보기도가 생명을 살리는 기도입니다.

조지 물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빈곤이 있을 뿐이다. 기도의 빈곤이다"

중보기도가 있는 교회는 절대 문닫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살아서 역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코비드 19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성도들의 중보기도입니다.

서로를 중보기도해야 합니다. 두 사람이 하는 것보다는 세 사람이 함께 기도할 때 놀라운 능력이 나타납니다.

동산에서 서로 기도 체널을 만들어서 함께 기도할 때 내 힘과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이런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 부탁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한 지체요 한 몸입니다. 몸이 아프면 모든 공동체가 아픈 것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기도하여 믿음으로 승리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누군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살아갈 때 복음의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사랑의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부어주사 어려운 일을 당하는 형제 자매들을 돕고 구제하고자 하는 일이 기쁘고 은혜로운 일임을 알게 하옵소서.

어려운 시대에 함께 중보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의 체인을 만들게 하옵소서.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이런 어려움을 교회가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질병으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교회의 기도의 불이 타올라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은혜라 부어지게 하시고 기도로 부흥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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