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이웃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과 이웃의 기쁨을 위해서 내가 희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묵상해보고 말씀을 실제로 삶에 적용해 보십시오.

오늘 묵상 말씀: 로마서 15:1-2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We who are strong ought to bear with the failings of the weak and not to please ourselves. Each of us should please his neighbor for his good, to build him up.


찬송가 454 장 주와 같이 되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4ZmXWHQZZyA

1 주와 같이 되기를 내가 항상 원하니 온유하고 겸손한 주의 마음 주소서

  세상에서 우리가 나그네로 있을 때 주의 형상 닮아서 살아가게 하소서

 

2 비록 작은 새라도 돌보시는 나의 주 나와 함께 계시어 나를 지켜 주소서

  맘이 깨끗하기를 내가 항상 원하니 악한 맘을 버리고 살아가게 하소서

 

3 주와 같이 되기를 내가 항상 원하니 주님 뜻을 따라서 살아가게 하소서

  주 은혜로 거듭나 말씀 위에 굳게 서 영원무궁하도록 주와 함께 살리라 아멘


오늘의 말씀: 로마서 15:1-13 서로 받으라

로마서14장부터 15장에 이르기까지 대인관계에서 서로 용납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서로 받는다는 것은 서로 용납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용납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상대방을 자기에게 맞춰 바꾸려는 의도가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공동체 생활에 있어서 관계가 어려워지는 원인 중의 하나는 상대방을 자꾸만 자기에게 맞춰 변화시킬려는 데 있습니다.

부부 갈등의 문제도 동일합니다.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 사람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고 포용한다는 말입니다.

왜 바울은 교회안에서 믿음이 강한자와 믿음이 약한자 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까? 조화로운 관계가 서로를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 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이 교회 안에서 믿음이 강한자와 믿음이 약한자 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입니다.

사도 바울은 15장 6절과 7절에서 그 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교회안에서 조화로운 관계의 최종적인 목적은 우리 자신의 고상한 인품을 드러내는 정도에 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습니다. 조화로운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리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가 표준으로 삼아야 할 근거가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심 같이 우리도 서로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 되었던 우리를 기꺼이 받으셔서 죄사함의 은총과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서로를 받는 것은 개인의 이해관계를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러한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제 서로를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서로를 받으라는 것은 서로의 약함을 담당하라는 것입니다.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사도 바울은 믿음이 강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로, 믿음이 약한 사람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에게는 약점이 있다고 합니다. 믿음이 약하다 보니 주변의 상황들을 믿음으로 해석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비본질적인 일로 상처를 쉽게 받고 믿음이 약해서 말씀을 지켜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이러한 약한 자의 약점을 자기 약점처럼 짊어질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담당한다’는 것은 ‘짊어진다. 내 것으로 받아 들인다’는 의미입니다. 

형제의 약점을 나의 약점으로 알고 짊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믿음의 강함과 약함을 예로 들 때에, 고기를 먹고 못 먹고를 예로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시장에서 파는 고기 중에는 이방신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에 우상의 제물로 쓰였던 고기들이 팔리기도 했습니다. 그러기에 그 고기를 대하는 두 가지 입장이 있었는데 그 입장에 따라 믿음이 강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구분을 하기도 했습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고기를 대할 때에, 고기가 비록 우상에게 드려진 것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우상은 의미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마음에 거리낌없이 먹으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약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시장에서 파는 고기 중에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가 있으니, 그것이 마음에 걸려서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를 먹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실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을 수 있고, 못 먹고 하는 것으로 믿음이 강하다거나 약하다고 절대적으로 구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러한 상황에서 약한 자들의 연약한 부분을 비난하지 않고, 그것을 담당하고 수용하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6:16절에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믿음의 강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유익에 따라서 절제하며 살았는데, 그 유익은 자신의 유익이 아닙니다. 

연약한 자의 믿음이 강건해질 수 있도록 연약한 자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유익을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약한 자든, 강한 자들, 모든 교회의 사람들이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를 힘썼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을 믿음이 강한 자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에 있던 것이 아니라, 도리어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육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심으로 우리를 받으셨습니다.

이사야서 42장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글입니다. 그런데 메시야의 성품을 말할 때에  42:3절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의 연약함을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그 상함을 고쳐주시고 치유하여 주셔서 다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꺼져가는 등불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그 등불을 꺼지지 않도록 보호하시고 불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병이 들어 죽어가는 인생, 연약한 인생을 꺾거나 끄지 않으셨습니다. 죄를 지었으니 마땅히 죽을 죄인이라고 방치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셨습니다. 죄로 병들어 죽어가는 저와 여러분을 고쳐주시고, 살려 주시고 구원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둘째, 서로 받으라는 것은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사도 바울은 서로의 약점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이웃을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의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그 모범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마태복음 3:17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뜻하심을 이루고자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다가 모습이 희게 변하셨던 변모산 사건이 마태복음 17장에 나옵니다. 그 때에 그들을 덮은 구름속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 되었던 분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람들의 기쁨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죄로 인해서 죽는 것을 막으셨고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이것이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기쁜 소식, Good New 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기쁨을 위해 사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또한 죽어가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시고자 자신을 내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또한 예수님의 기쁨이었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고 옆에 있는 성도를 기쁘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신앙 성숙은 바로 남을 기쁘게 하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신앙이 초보인 사람은 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나의 가정, 나의 일, 나의 것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신앙이 성장하면 ‘우리’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 자매들이 눈에 보입니다. 나에게서 남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자랄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마음에서 이타적인 마음으로 옮겨가고 기쁨도 나에게서 남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풍성하게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남이 기쁠 때 내가 기쁩니다.  이것이 바로 서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셋째, 서로를 받는 일은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서로를 받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를 받으며 연약함을 담당하고 이웃을 기쁘게 하고자 살아갈 때에 자신도 이를 행하는 것이 쉽지 않고, 상대방도 이러한 일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힘들게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 때에 우리가 바라볼 하나님은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입니다.

5절에 보면, 하나님을 묘사하기를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받으시기 위해서 인내하셨습니다. 죄된 사람들을 인내하시며 참으시고 기다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시는 일이 있으십니다.

5절에,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서로의 약함을 받아 주고, 이웃의 기쁨이 되기 위해 비방을 받고, 때로 나의 기쁨을 양보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더 하나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서로가 서로를 받으면서 바라보아야 할 분은, 그 상대방이 아니라 하나님인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인내하시고 참으시며 담당하셨던 하나님, 그리고 하늘의 소망으로 나를 위로하시고 세워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서로를 받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귀한 믿음의 사람들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 천차만별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될 수 있는 목표는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 받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서로를 받는 삶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주심으로 모범이 되셨고, 그 모습으로 서로를 받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서로의 약함을 받아주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하여서 이루어지는 미숙함과 죄된 모습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그 연약함을 담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한 믿음을 주신 것은, 그 믿음으로 자랑하고, 약한 자를 업신여기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 강함으로 다른 이들의 연약함을 담당하고, 그들을 기쁘게 섬기라고 주신 것인 줄로 믿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연약함을 보게 될 것입니다. 각 개인과 가정, 그들의 삶속에 있는 아픔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부족한 부분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연약함을 받으시고, 우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던 자리로 이끄셨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서로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도록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아 서로 뜻이 같아지며,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한 소망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됨의 근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말씀 기도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주셔서 연약한 형제 자매들을 담당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서로를 주 안에서 용납하고 주 안에서 하나되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던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며 서로를 받을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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