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먼 미래적인 개념이 아니라 현재 그리스도를 통해서 누리는 나라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며 그런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고 살려면 먹고 마시는 문제로 인해서 형제와 자매를 거리끼게 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형제를 실족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는 악한 일입니다(20). 나에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형제를 위해 절제하는 믿음이 아름답습니다.

오늘 17-18절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기 위해서 나에게 무엇이 최우선 순위인지를 점검하는 말씀입니다. 나는 이 땅에 살면서 무엇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묵상 말씀: 로마서 14:17-18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eating and drinking, but of righteousness, peace and joy in the Spirit, because anyone who serves Christ in this way is pleasing to God and receiving human approval.


찬송가 508 장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https://www.youtube.com/watch?v=tgIhX15oj4Y

1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머잖아 가리니

  이 세상 있을 때 주 예수 위하여 끝까지 힘써 일하세

<후렴>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2 주 예수 말씀이 온 세상 만민들 흉악한 죄에서 떠나라 하시니

  이 말씀 듣고서 새생명 얻으라 이 기쁜 소식 전하세

 

3 영생의 복락과 천국에 갈 길을 만백성 알도록 나가서 전하세

  주 예수 말씀이 이 복음 전하라 우리게 부탁하셨네


오늘의 말씀: 로마서 14:13-23 배려

오늘 말씀은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할 때 흔하게 관계 속에서 붙잡아야 할 본질과 공동체 안에서 본질이 아닌 것은 빨리 내버려야 할 것을 가르쳐줍니다.

상당수 교회법은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때문에 그 기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교회는 정죄하는 공동체가 되고 기준이 낮으면 낮을수록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교회가 됩니다. 본질을 붙잡고 비본질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특히 20-21절에서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라고 말하는데 사도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17)과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는 사실(14)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요지는 먹고 마시는 일에 있어서의 우선순위에 관한 문제 입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 있어서 우선 순위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먹고 마시는 일의 우선순위와 권리의 관계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분명히 먹고 마실 권리는 모두에게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권리를 따라 먹고 마신다고 법적으로 어긋나는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의 권리를 우선적으로 앞세운다면 그로 인하여 상처 입을 사람들이 생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슬퍼하실 것입니다.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법적으로는 분명히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관계적인 측면(이웃과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이 손상을 입게 됩니다.  

권리를 행사할 때는 반드시 이웃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웃에 대한 ‘배려’를 통해서 권리 행사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웃에 대한 ‘배려’를 고려하지 않고 나 자신의 권리를 우선적으로 앞세운다면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그것은 악이 되고 말 것입니다. 또한 이웃에 대한 배려보다 권리를 앞세운다면 하나님과 이웃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아픔과 고통의 손상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철저하게 사람들을 배려하는 삶이었습니다. 근본 하나님이셨던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임마누엘로 오신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를 사하고 영원히 사는 생명을 주시기 위한 배려의 희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공급되면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납니다.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살아나신 예수님을 심장으로 뜨겁게 갈망하기 시작 합니다. 이런 상태가 소위 신앙 부흥 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을 심장으로 뜨겁게 갈망하는 신앙 부흥이 일어나면 그 신앙 부흥은 우리로 하여금 이웃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고 그들을 섬기고 배려하는 삶으로 흘러가게 합니다.   

비록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권리 사용을 우선 순위에 두지 않고 이웃에 대한 배려와 그 배려를 통하여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그 사람들을 가리켜서 세상은 분명히 “그리스도인들”이라 부를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통용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당연한 호칭 말구요 교회 밖의 세상 사람들이 우리 자신의 권리 행사 보다 이웃을 배려하는 복음의 열매를 보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당신들은 진실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라고 불러 준다면 그 얼마나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의 이웃을 배려하는 삶은 내면에 가득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충만함이 자연스럽게 흘러서 밖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권리가 우선인가 아니면 이웃에 대한 배려가 우선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면 거기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충만함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충만함이 진실로 있다면 거기에는 논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의 이끌림 받고 자신의 권리 보다는 이웃에 대한 배려를 우선적으로 하는 모습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기독교내에서 벌이고 있는 논쟁의 뿌리를 거슬러 추적해 가면 그 뿌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충만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앞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 앞에 다시 서서 그 복음으로 충만함을 덧입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기름칠을 하지 않아서 녹이 슬고 작동하지 않는 기계에 기름을 치면 다시 작동하기 시작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마치 기계에 기름칠을 하는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충만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배려가 아주 자연스럽게 실행 되어질 것입니다. 권리 실행이 우선인가 아니면 이웃에 대한 배려가 우선인가에 대한 논쟁은 끝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충만하면 성령께서 논쟁을 끝내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웃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이웃에 대한 배려를 우선적으로 하게 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충만함으로 이웃을 배려하는 삶을 살므로 세상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력이 스며들어가게 하는 복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