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생활을 하다가보면 믿음이 강한 성도도 있고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도 있습니다. 믿음이 다르기 때문에 믿음에 대해서 상대방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은 때로 믿음에 확신을 갖지 못하여 사소한 것에도 의심을 갖습니다. 이런 성도를 만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처럼 형제의 약함을 비판하지 않고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인내하며 기다려주고 돕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14장 1절 말씀은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의 믿음 성장에 너무 중요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내가 공동체 안에서 상대방의 믿음 성장을 위해서 내가 상대방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묵상하며 실천해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묵상 말씀: 로마서 14:1

믿음이 연역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Accept the one whose faith is weak, without quarreling over disputable matters.


찬송가 463 장 신자 되기 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BxIy4eC1OI

1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2 사랑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랑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랑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3 거룩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거룩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거룩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4 예수 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예수 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예수 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아멘


오늘의 말씀: 로마서 14:1-12 갈등 해결의 열쇠

사람들이 사는 곳은 어디나 갈등이 있습니다. 가족 간의 갈등, 친구간의 갈등, 지역 간의 갈등, 국가 간의 갈등 심지어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섬겨야 할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성도의 공동체 내에서 문화적인 차이로 생기는 갈등 문제를 해결하는 원리를 가르쳐 주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 로마 교회는 서로 다른 문화적인 배경을 가진 유대 크리스천들과 이방 크리스천들이 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음식이나 날과 절기 등에 대한 갈등 문제를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서로 성장 배경이 다르고, 개성과 신앙 수준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이다보니 여러 가지 갈등이 생기는 것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믿음으로 잘 감당하는 믿음이 좋은 분이 있는가 하면, 조금만 힘든 일에도 드러눕는 믿음이 연약한 분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꼬치꼬치 따지는 율법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유분방하고 너그러운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신앙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에 자연히 서로 업신여기거나 판단하는 인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갈등을 잘못 해결하게 되면 그 모임은 지옥이 되어 버리고, 사람들은 심한 정신적 고통과 번민에 시달리다가 실족하게 됩니다. 반면에 이런 갈등을 영적으로 잘 해결하게 되면 그 모임은 천국이 되고 사람들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갈등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갈등 문제를 해결하는 영적 원리를 배우고 좀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2절은 그 당시 로마 교회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갈등들을 보여줍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이 말씀을 볼 때 당시 로마 교회에는 믿음이 강한 자와 연약한 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는 정신적으로 의지가 약한 사람이 아니라 신자로서의 합당한 생활과 죄에 대해서 지나치게 민감하여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있는 풍성한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율법적인 유대 크리스천으로서 주일 외에도 안식일 율법이나 절기를 지키며, 레위기 11장에 나오는 대로 정한 식물과 부정한 식물을 가려 먹였습니다. 특히 이들은 채소만 먹었는 데 이는 당시 상인들이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시장에 내다 팔았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을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신앙생활을 매우 금욕적이고 율법적으로 하였습니다. 

이에 비해 믿음이 강한 자는 율법이 없고 예수님 안에서 매우 자유로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조금도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막7:18-20). 또 그들은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딤전4:3,4). 그래서 그들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일지 모르는 고기도 시장에서 사다가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맛있게 요리해 먹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돼지고기도 요리해 먹었습니다. 그들은 형식이 없고, 믿음의 도를 좇아 살며 예수님 안에 있는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 사이에 이로 인해 벽이 생기고 서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를 복음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율법에 얽매인 형식주의자요, 채식주의자라고 비판하고 업신여겼습니다. 반면에 믿음이 약한 자는 믿음이 강한 자를 아무 것이나 함부로 먹는 야만인이요 불결하고 불경건한 자들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무시하고 판단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마음의 상처를 받고 실족할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소한 일 같지만, 이로 인해 하나님의 선한 사업이 무너지고 교회가 분열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이때 바울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먼저 믿음이 강한 자에게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되 그의 의심하는 비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1).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어도, 어떤 사람은 믿음이 연약해서 채소만 먹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 서로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고 해서 서로 업신여기거나 판단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 받으셨기 때문입니다(3b).

3절에는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형제를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첫번째 이유는 믿음이 연약한 자가 한 것을 하나님이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심히 기뻐하시고, 받아주신 형제를 비판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비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디아포라가 초대교회에 큰 문제였습니다. 아디아포라'(ἀδιάφορα)라는 단어는. '아'는 '없다', '디아포라'는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아디아포라’는 본질이 아닌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교회사를 보면은 디아포라(본질)와 아디아포라(비본질) 때문에 무척 교회가 다투고 싸웠습니다. 본질이 아니라면 빨리 넘어가야 합니다.

특히 중세에 본질이 아닌 것을 가지고 무척 교회가 다투었습니다. 예를 들면 성례에서 어떤 포도주를 쓸 것인지, 물을 한번 뿌릴 것인지 세 번 뿌릴 것인지, 몇 시에 예배드릴 것인가, 예배 시에 어떤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할 것인가, 예배순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여기에 속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견이 다른 것은 존중하고 서로 조율을 해야 하지만, 틀린 것이나 죄 문제까지도 무조건 수용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 분별력을 갖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틀린 문제는 바로 잡아주고, 죄 문제는 회개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무분별하게 수용할 때, 누룩이 되어 영적인 질서와 복음신앙이 무너지게 됩니다.

둘째는, 서로 달라도 그 동기와 목적이 ‘주를 위하여’ 하기 때문입니다(5-9).

5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그들에게는 음식 문제뿐만 아니라 절기와 날에 관한 문제도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절대적으로 지켰습니다. 또한 1년에 세차례 예루살렘에 가서 유월절과 맥추절과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그외에도 그들은 많은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과 동시에 이런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절기들은 다 폐하여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 역사를 완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이 안식일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안식일에 모이는 대신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인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며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이루신 구원의 하나님께 신앙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 크리스천들은 주일날 예배를 보면서도 여전히 안식일을 중히 여기고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또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절기들도 지켰습니다. 이 때문에 주일만 지키고 모든 날은 주 안에서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모든 날을 같게 여기는 이방 크리스천들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바울은 이런 문제로 논쟁하지 말고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서로 상대방에게 자기가 옳다고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옳은가를 살펴서 옳게 여기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음식이나 날 문제를 각 사람의 주관적인 신앙에 맡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이는 각 사람이 다 ‘주를 위하여 감사함으로’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한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서로 음식이나 날에 대한 생각과 행동이 달랐지만, 아무도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었습니다(7).

이처럼 행동의 동기와 목적이 ‘주를 위하여’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를 위하여’라는 동기와 목적이 분명하다면 서로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다른 점들은 조금도 문제될 것이 없음을 배우게 됩니다.

무엇을 먹든, 부정한 짐승을 먹든, 채소만 먹든 이런 것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신자들은 무엇을 하든지 그 행동의 동기와 목적이 ‘주를 위하여’ 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 말씀대로 그리스도인은 자기 유익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요, 또 죽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죽는 자가 아닙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께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비참한 죄의 종이었던 우리를 주의 것 삼으시고자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9). 이는 죄로 말미암아 죄악된 삶을 살다가 죽을 우리에게 임한 크신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십자가의 은혜를 마음으로 깨닫고 영접한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더 이상 이기적인 삶을 살지 않고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습니다. 

셋째는, 우리는 각자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 때문입니다(10-12).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우리는 각각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기 때문에 형제를 판단하거나 업신여길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그 뜻대로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역사의 최후 심판장이 되십니다. 마지막 날에 모든 무릎이 하나님께 꿇게 되고,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게 될 것입니다.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이 말씀대로 우리 각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산대로 인생을 결산해야 합니다. 이를 생각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할 여유나 시간이 없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평소의 실제적인 삶 속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를 판단하거나 업신여기는 자가 되지 않고, 서로 이해하고 용납하기를 힘쓰며 자신을 주 앞에 바로 세우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믿음을 확장시켜 주옵소서.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며 서로 연약함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공동체 안에 믿음에 대한 판단이나 정죄하는 그런 잘못된 것들이 사라지게 하시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주를 위해서,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일임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언젠가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테데 우리의 부정한 입술로 심판받지 않게 하시고 연약한 형제 자매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그런 자들을 믿음으로 세워주는 하나님의 칭찬을 듣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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