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코로나 바이러스의 백신이 개발되어 이런 어려운 시기가 다 끝내고 나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남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2020년도는 우리에게 고생스러운 해였다’, ‘평생 우리 가슴에 남을 것같다’는 추억거리 정도가 남을까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이런 시기에 하나님을 대면하여 믿음이 커졌다는 간증들이 남아야 합니다. 이런 고난의 시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시기입니다. 이런 용광로와 같은 시기를 지나가면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만드는 불순물들이 빠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을 대면한 순수한 믿음만이 남아야 한다는 것을 영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코로나 시대는 우리가 순수한 크리스천인지 아니면 불순물이 많이 낀 크리스천인지가 분명하게 구별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도 100% 크리스천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바로 이때가 참된 크리스천으로 세워질 때입니다.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https://www.youtube.com/watch?v=qND6gt3L7gc

1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영원토록 주를 찬송하리라

  소리 높여 주께 영광 돌리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후렴> 굳게서리 영원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리 굳게서리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


2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세상 염려 내게 엄습할 때에

  용감하게 힘써 싸워 이기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3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영원하신 주의 사랑 힘입고

  성령으로 힘서 싸워 이기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4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성령 인도 하는대로 행하며

  주님 품에 항상 안식 얻으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오늘의 말씀: 로마서 9:14-24 

바울은 자기 동포인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항상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불러서 이방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그의 복음 전도로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자기 동포인 유대인들을 보니 양자됨, 영광, 언약, 율법, 예배와 언약들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모든 특권을 가진 자기 동포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을 보면서 늘 바울의 마음에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이 구원받지 못한 반면에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주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선민사상을 가진 유대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선민인 유대인만을 구원하시고 저 벌래 같은 이방인은 저주하셔야지 왜 하나님이 저들을 구원하시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나님은 공평하게 사랑하셔야지 어떻게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할 수 있느냐’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불공평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며 그 결정에는 불의가 있다고’ 라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 있습니까?

만약 우리의 구원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만약에 우리를 버리시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선택하시고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을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불의하고 파렴치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가 그분의 권한과 주권으로 이 사람은 구원하고 저 사람은 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슨 권한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함부로 말할 수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항변을 일축합니다.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항변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지 토기장이 비유를 통해서 설명합니다.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 가라 내가 거기서 내 말을 네게 들리리라.'(렘 18:2) 라고 명령하셔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토기장이에게로 가보았습니다.

예레미야는 토기장이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그의 손에서 파상할 때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렘 18:4)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에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렘 18:6) 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요, 우리는 진흙과 같은 존재입니다. 누구에게 토기를 만들 권한이 있습니까? 토기장이에게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본인의 고유권한을 가지고 진흙을 이겨서 토기를 만듭니다. 진흙이 토기장이를 가리켜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렇게나 진흙을 우물딱 주물딱 해서 되는대로 토기를 만드시는 폭군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가장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적절하게 가장 필요한 곳에 사용되어지도록 빚어 만드셨습니다.

에베소서 2:10절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선한 일에 쓰시기 위해서 미리부터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베스트의 작품으로 빚어 만드신 줄을 믿고 우리를 주님의 뜻에 맞게 써 주시도록 내어드려야 합니다.

21절 말씀에 보면 우리말 번역에는 귀히 쓸 그릇, 천히 쓸 그릇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어 번역에 보면 'some pottery for noble purposes and some pottery for common use' 라고 하였습니다. 그릇도 보면 고상한 그릇이 있고, 편하게 쓰는 그릇이 있습니다. 찬장에 놓여 있다가 일 년에 한 두 번이나 귀한 손님이 오시면 내 놓는, 그런 고상한 그릇(noble pottery)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주 식탁에 올라오는 그릇이 있습니다. 가만히 따져보면 세상에 똑같은 그릇은 하나도 없습니다. 75억이면 75억의 인구가 다 다른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하나도 똑같은 그릇을 출품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색깔과 크기, 모양과 용도가 다 다릅니다.

송명희 시인은 그녀의 자전적 에세이 『내가 너를 들어 쓰리라』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은 늘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들어 쓰리라’ 주님께는 그렇게 쓸만한 인간이 없는 걸까? 주님이 쓰시는 게 뭘까? 세상에 드러나고 사람들 시선을 사로잡는 성공담이 하나님이 쓰시는 삶일까? 큰 나무나 바위만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물인가? 불품없는 작은 들풀도 하나님의 위대하신 작품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것은 매우 다양하다. 모세처럼 스케일이 크게도 쓰셨고, 나아만에게 엘리사를 소개한 처녀 아이도 쓰신 것이며, 죽은 지 나흘 만에 다시 살아난 나사로도 하나님이 쓰셨지만, 주을 위해 목숨을 잃은 야고보도 쓰신 것이다. 질그릇을 어떻게 쓰든지 그 권리는 토기장이에게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반발하거나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다 뜻이 있어서 우리를 이 모양 이 모습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선한 주권을 인정하고 겸손히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특별하게 선택하셔서 구원으로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긍휼로 말미암은 줄 깨닫고 늘 겸손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높이게 하옵소서.

이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주권과 긍휼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예수의 제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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