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일이 한 주를 시작하는 첫날입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당당하게 한 주를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좋은 일과 어려운 일로 가득차 있습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를 따라 홍해를 건넜을 때 얼마나 감격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까요? 그러나 감격과 눈물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 믿음에 도취할 때가 있습니다. 광야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먹을 것이 없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변했습니다. 그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목격하고도 삶에 적용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수개월동안 이전에 경험하지 못하는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어서 기적을 베풀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오늘까지 지켜 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잊지 마십시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찬송가 187장 비둘기같이 온유한

https://www.youtube.com/watch?v=uya2N9HYOuE

1 비둘기 같이 온유한 은혜의 성령 오셔서 거친 맘 어루 만지사 위로와 평화주소서

2 진리의 빛을 비추사 주의 길 바로 걸으며 주님을 옆에 모시고 경건히 살게 하소서

3 주님과 동행하면서 거룩한 길로 행하며 진리의 예수 붙잡고 길 잃지 않게 하소서

4 연약한 나를 도우사 하나님 나라 이르러 주님의 품에 안기는 영원한 안식 주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로마서 8:26-30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로마서 8장에 들어오면 성화의 길에서 우리를 천국까지 바르게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은 신앙 생활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납니다. 연약함 때문에 가장 신앙 생활에서 어려운 것이 기도입니다. 주변에 일어나는 일이나 교회 상황은 기도를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의 연약함은 우리를 기도 자리로 나가질 못하게 합니다.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중보기도를 하십니다.

26~27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이란 단순히 육신의 유한성 및 유약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는 인간의 부패하고 타락한 본성, 즉 죄의 성향을 의미합니다. 죄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자꾸 멀어져 가고자 하는 심성, 하나님을 거스리는 마음등을 의미합니다. 또한 죄성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인간의 심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성 때문에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종종 범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께서 연역한 우리의 손을 붙잡아 넘어진 자리에서부터 일으켜 세워주시고 진리 가운데로 항상 인도하십니다(요 16: 13).

여기서 사용된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에서 ‘돕다’는 말이 ‘상대편을 붙들어 주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무엇을 도와주실까요? 성령 하나님은 고난에 처한 성도들을 위해 탄식하시며 중보기도하십니다. 

믿는 사람이 고난에 빠지면 그 사람은 고난 중에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모른다고 합니다.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 고난에서 빨리 벗어나도록 간구해야 할지, 고난이 없어져야 좋은 것인지, 더 큰 고난을 감내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무엇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고,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해 주시는 지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겪는 연약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이런 연약한 성도를 도와주십니다. 우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성령은 모든 것을 알고 아버지의 뜻대로 친히 간구하시며 우리를 위해 탄식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28절 말씀은 신앙인이면 좋아하는 말씀이고, 또 암송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얼핏 보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예수 믿기만 하면 우리가 우로가나 좌로 가나 만사가 잘된다는 말씀이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는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소위 ‘통속적인 낙관론’을 가르쳐 주는 근거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원래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만사가 저절로 굴러 가면서 선한 것으로 바뀐다는 식으로 보면 안됩니다.

이것은 그런 통속적인 낙관론이 아닙니다.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의 핵심은 누군가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주관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을 읽을 때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도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라고 28절은 시작합니다. We know that ……….

‘알다’는 단어는 지식과 경험을 같이 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구약에서 사용되는 ‘알다’는 야다입니다. 야다는 체험적으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용된 ‘알거니와’라는 동사는 ‘에이도’라는 단어인데 지식과 체험 즉 지성과 영성을 같이 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을 아는데 지식적으로도 알고 체험으로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식으로만 알면 가슴이 냉해집니다. 체험으로만 알면 말씀을 잘 알지 못해서 신앙의 균형이 없습니다.

독특한 표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말씀을 보면 언뜻 보기에는 하나님을 믿는 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쉽게 이해되고 받아들일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특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믿는 자’라는 말 대신에 ‘사랑하는 자’로 말로 사용했을까요?

그 사람의 믿음이 진짜냐 가짜냐를 테스트하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아닌가를 가지고 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입으로 믿는다고 하는 말은 신용하기 어렵습니다. 참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라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믿는다고 하지만 그 믿음이 어느 정도 순수하고 참된 것인가는 다른 사람이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속이기가 어렵습니다.

믿음은 측량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표가 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28절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는 좋은 일, 나쁜 일, 형통, 고난, 복, 불행, 스스로 행한 일, 본의 아니게 당한 일,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 오고 가는 일, 살고 죽는 일’ 등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선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선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우리가 완전한 구원을 받는 것이 선입니다.

이차적으로는 우리가 구원에 이르기까지 도움이 되고 영향을 끼친 모든 사건과 경험의 결과를 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온갖 경험을 통틀어서 결국 우리가 ‘구원받는 사람’이 되도록 작업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만족스럽고 좋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선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우리가 싫어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일이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 하시는데 유익한 것이면 선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어야 하기에 인간이 생각하는데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선은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어려움을 통해서 연단하고 힘드는 과정을 겪게 합니다. 손해를 보게 하십니다. 이것이 구원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비즈니스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습니다. 비즈니스가 잘됩니다. 사업이 잘되니까 믿음 생활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사업이 망했습니다.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선은 전적으로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하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인생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서 때로는 희생을 치르도록 하시고 병도 주셔서 아프게 하시고, 사업이 망하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잘못 생각하면 일이 잘되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이 잘되고 못되는 것이 아니라, 병이 낫고 낫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일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라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실패를 경험하게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고, 어려움을 격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며 뜻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비록 지금 어려움 문제가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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