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라인 예배를 드리든지 현장예배를 드리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예배자의 자세와 태도가 좋은 예배를 만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는 예배자가 단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드리지 못하면 온라인 예배는 무기 건조한 예배가 될 것입니다. 또한 현장예배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자가 예배시간에 여러 생각들을 품고 폰을 보고 카톡을 날리고 예배에 집중을 하지 못하면 그가 드리는 예배도 똑같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한번의 예배를 드릴지라도 온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임재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하심 가운데 자신을 온전하게 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예배가 살아나고 하나님의 임재가 넘치는 참된 예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하며 예배를 준비해야 합니다.


찬송가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https://www.youtube.com/watch?v=ePKu-JG1dWE

1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뿐일세

2 나의 사모하는 선한 목자는 어느 꽃다운 동산에 양의 무리와 늘 함께 가셔서 기쁨을 함께 하실까

3 길도 없이 거친 넓은 들에서 갈 길 못 찾아 애쓰며 이리 저리로 헤매는 내 모양 저 원수 조롱하도다

4 주의 자비롭고 화평한 얼굴 모든 천사도 반기며 주의 놀라운 진리의 말씀에 천지가 화답하도다

5 나의 진정 사모하는 예수님 음성 조차도 반갑고 나의 생명과 나의 참 소망은 오직 주 예수뿐일세 아멘


오늘의 말씀: 로마서 5:1-11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시편 14:2-3절에서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라고 선언했습니 다. 이는 아담의 죄성을 물려받은 전인류는 전적으로 부패하여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를 행할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또 의를 행하려는 마음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불의한 전인류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게 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에 우리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의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것 입니다(롬 3: 24-26).

로마서 5장에서 하나님이 의롭게 인정해 주신 칭의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5장은 로마서의 보석과 같은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인 의인들이 경험하게 되는 놀라운 은혜 3가지를 보여줍니다. 5장 1-2절을 중심으로 3가지 은혜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찾아온 첫번째 은혜는 화평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그런데 이런 화평이 인간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절대 인간의 행위나 노력이나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과 화평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화평 즉 피스메이킹을 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가르쳐 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담이 죄를 범할 때 이미 인간에게 타이틀이 죄인이라는 타이틀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자녀이었던 우리들이 한 순간에 원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간 스스로 원수 관계를 청산할 수 없었습니다. 이 관계를 어떻게 청산하게 되었냐면 하나님이 예수님과 십자가에서 합의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화평이라는 것은 관계를 말합니다. 화평의 반대 개념이 바로 원수일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가 원수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죄를 범한 인간에게 내려진 형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더 이상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관계 즉 원수 관계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라 원수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관계를 해결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칭의의 결과로 찾아온 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을 화목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막혀있던 담이 무너졌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피스메이커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가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런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은혜은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이 은혜는 예수 믿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입니다.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구약시대는 아무나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자유롭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데 죄인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대리자를 통해서 나아가는 것이였습니다.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은혜의 보자인 시은자(Mercy Seat)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비를 내려주시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성소에 아무나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만이 1년에 1차 대속죄일에 백성들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만약에 대제사장은 잘못하면 하나님의 전에서 죽음을 맞보게 됩니다.

그래서 구약 사람들은 의식 속에 늘 커튼이 쳐져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나갈 수 없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께 나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을 걷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성전의 휘장이 갈라졌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자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커튼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를 막는 것들이 사라졌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고 마음컷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에게는 걸림돌이 없어진 것입니다. 커튼도 벗어졌습니다. 오직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환경이나 상황이 걸림돌이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보좌는 늘 열려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기억해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시대에 기도하지 않는 자를 이상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으로 인해서 인간이 하나님께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이 찾아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내 앞으로 나오라’. ‘나와 만나자’ 하나님은 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 나오질 못합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세번째 칭의의 결과로 우리가 얻는 은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은혜입니다.

2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이 영광 중에 계시는 주님 뵙기를 고대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승리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주님을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을 펼 때마다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여기저기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기록된 말씀 안에서 살아 계시는 주님의 영광을 보며, 경배하며 기뻐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장차 우리 눈으로 직접 주의 영광을 보는 것과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성령을 통해서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영광 중에 계시는 주님을 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대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누리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시대는 사람과 사람간의 대면이 중단된 비대면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비대면의 시대에 하나님과는 영적으로 대면을 할 수 있습니다. 주의 백성들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직접 대면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 모습으로 바꾸어 만나는 방법과 우리를 자기처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바꾸어 만나는 방법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을 만나러 오신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얼굴과 눈을 마주 대고 쳐다보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역시 우리를 만나러 오실 때 초라한 우리의 모습 그대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 앞에 다른 방법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변화되어서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인간은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합니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가 범죄한 다음부터 흙으로 빚어진 우리의 육체도 영혼과 함께 부패되었습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와 같이 부패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우리 육체가 하나님을 만나 뵙는 순간에 그분처럼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렸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광을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비록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믿음의 눈으로 장차 예수님의 모습처럼 변화될 우리 자신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성경 말씀이 마치 천국의 영광을 찍어놓은 사진첩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진첩, 즉 성경을 펴놓고 천국의 영광을 보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에서 ‘즐거워하다’는 뜻은 ‘기뻐 날뛰다’, ‘의시대며 자랑하다’

기쁨 정도가 얼마나 대단한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들은 기뻐 날뛰며 천국을 자랑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우리가 하나님의 앞에 갈 때 우리도 영화로운 몸을 입고 주님을 뵈올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 같은 죄인들을 벌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혀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습니다. 이제 화평을 얻은 우리들이 담대하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찾고 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이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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