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주님을 3번 배반하고 떠난 베드로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회복시켜주었습니다.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연약함과 두려움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주님을 사랑하는지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주님을 따라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이 던진 이 질문은 신앙을 이끌어가는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점에 서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냐?”

이 시점이 신앙의 분기점이 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역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해서 예배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섬겨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복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겨나갈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며 주님을 신실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https://www.youtube.com/watch?v=5epxlhsh5O0

1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안위해 주시리라

<후렴>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2 해를 당하거나 우리 고생할 때 주가 위로해 주시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안위해 주시리라

3 남의 짐을지고 슬픔 위로하면 주가 상급을 주시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항상 복내려 주시리라

4 우리 받은 것을 주께 다 드리면 우리 기쁨이 넘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은혜 풍성케 하시리라

5 주를 힘입어서 말씀 잘 배우고 주를 모시고 살아가세 주를 의지하며 항상 순종하면 주가 사랑해 주시리라


오늘의 말씀: 로마서 2:17-29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인간의 죄를 지적합니다. 1장에서는 이방인들의 죄를, 2장에서는 유대인의 죄, 3장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말합니다.

오늘 말씀은 유대인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죄를 지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유대인라고 자랑하는 자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도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에게 대해서 좀 알아야 합니다. Jewish라는 유대인라는 호칭이 붙여졌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붙여진 이름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히브리인(강 건너 온 사람)인데 언어 군으로 히브리말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이스라엘 사람인데 구속사적인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이 백성을 자녀 삼으시고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셨다.

세번째는 유대인이라는 호칭인데 헬라인이나 이방인들과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모세 율법을 중심으로 형성된 종교 공동체’로서의 특성을 반영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표현은 주로 바벨론 포로 전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서 7,80년 간 노예생활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손으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온 뒤부터 유대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말은 ‘칭찬’ 또는’찬송’이라는 매우 아름다운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칭찬이 있는 백성 그리고 하나님의 찬송이 되어야 하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근심이 되고, 하나님의 저주가 되는 백성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말씀은 유대인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번째 유대인들의 죄는 율법을 자신에게 가르치지 않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7-20절을 보면 그들은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자신들의 하나님을 자랑하였습니다. 또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는 영적 분별력을 지니고 있음을 자랑했습니다. 맹인을 인도하며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의 지식과 진리로 어리석은 자를 가르치는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같은 유대인으로 이런 유대인들의 자랑과 확신을 비판하지 않고 인정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율법을 받아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는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20a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으로 남은 열심히 가르쳤으나 자기 자신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가르치지 않음으로 그들은 도둑질하지 말라 하면서 도둑질 하였고 간음하지 말라 하면서 간음하였습니다. 거기다가 우상숭배를 지독히도 미워하여 우상의 신전을 파괴하였는데 이때 신전과 우상에 발라져 있는 금이 탐이 나서 그것을 볏겨서 도둑질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이런 유대인의 문제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지독한 위선자들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위선으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지만 그 특권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그 책임이라는 것은 스스로 그 율법대로 사는 것입니다. 특권이 특권이 될려면 그 말씀대로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자신들에게 적용하고 그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유대인처럼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만 하면 자기 자신을 가르치지 않아서 신앙의 이중성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집에서도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가르치면서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하지 않으므로 위선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면에서 남을 가르치는만큼 자신을 가르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참된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을 가르치지 않는 유대인의 위선에 대해서 언급하고 더 나아가 유대인들이 절대시 여기는 할례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17장에서 맨 처음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하도록 하시면서 할례받지 아니한 자는 그들 가운데 끊어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할례를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 여겼고 안식일에도 할례는 반드시 행하였습니다. 할례는 하나님 백성이라는 분명한 표시오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부를 때 ‘할례받지 못한 자들’이라 하며 무시하였습니다. 이 할례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유대전승에 의하면 유대인이 죽어서 혹시 지옥에 내려가게 된다 하더라도 아브라함이 지옥 입구에 앉아서 할례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막아줄 것이라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할례만 받았다면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5절을 다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유대인들이 그렇게 절대시 여기는 할례도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할례를 받았는가 받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가 살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신앙생활의 본질이요 하나님 백성의 진정한 표시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할례를 구원의 표로 생각하던 유대인들에게 28-29절에서 진정한 유대인이 어떤 자인지 가르쳐 주고자  합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이 말씀은 표면적 유대인 곧 혈통적으로 유대인이라고 유대인이 아니요 육신의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진짜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 유대인은 무늬만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 곧 속이 유대인다워야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면적 유대인, 진짜 유대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레미야 9:26b은 말씀합니다.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참 유대인, 이면적 유대인이 되려면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마음이 변화를 받아서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믿을 때 진정한 유대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근본문제는 목이 곧고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아서 항상 불순종하고 나름대로 행하여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7:51에서 스데반은 이런 이스라엘의 죄를 신랄하게 지적하였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슬러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우리는 듣고 싶은 말씀만 듣고 들어야 할 말씀은 듣지 않으려는 죄악된 귀를 할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불신하고 거스리려는 죄악된 마음을 할례해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과 귀를 할례하여 변화를 받을 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행하는 진정한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무엇을 좇아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믿고 순종하며 살고자 합니까? 아니면 세상욕심과 성공에 매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며 자기 원하는 대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죄악된 본성을 할례하므로 날마다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 뜻을 섬기는 마음이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참된 크리스천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이 시대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우리를 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온전하시고 선하신 뜻을 깨닫고 마음에 할례를 받아 이 역사 가운데 귀하게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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