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우리의 신앙은 깊어지고 더 성숙되어져 가야 합니다. 신앙은 어려움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이유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내면화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내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성령이 충만해지면 해질수록 내 자아는 죽어가고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해집니다. 성령님은 성화 과정에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나의 하나님, 나의 주인, 나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어려운 시절을 지나갈 때 성령 충만한지를 제일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찬송가 274장 나 행한 것 죄뿐이니

https://www.youtube.com/watch?v=YvQL0rToMig

1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주 예수께 비옵기는 나의 몸과 나의 맘을 깨끗하게 하소서

<후렴> 물가지고 날 씻든지 불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2 내 어둔 눈 밝히시니 참 기쁘고 고마우나 그보다 더 원하오니 정결한 맘 주옵소서

3 정결한 맘 그 속에서 신령한 빛 비치오니 이러한 맘 나 얻으면 눈까지도 밝으리라

4 못된 행실 다 고치고 악한 생각 다 버려도 주 앞에서 정결 타고 자랑치는 못하리라


오늘의 말씀: 로마서 2:1-11

네 명의 친구가 야고보서(5:16) 성경공부를 하면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라’는 말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첫번째 친구는 교회를 다니면서 아직까지 담배를 끊지 못했다고 하면서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둘째는 복잡한 이성 관계를 고백했습니다. 셋째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어렸을 적부터 악습 가운데 하나인 도벽의 습성이 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네 번째 친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너는 왜 말하지 않고 있는거냐? 하니까 그가 말을 합니다. “나의 약점은 남들의 흉이나 결점이나 약점을 알게 되면 불고 다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먼저 얘기한 세 친구들이 큰일났습니다. 이 네 번째 친구의 문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타락한 인생 대부분이 지니고 있는 약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 공동체 속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오늘 말씀의 주제가 되는 판단하는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이 판단하는 문제 때문에 믿음의 사람 간에 금이 가고 결국에는 그로 말미암아 교회의 분열이 생기고 교회에 큰 어려움이 생기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바울은 2장에서 마치 하나님처럼 행세하는 판단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되는 판단의 문제를 제시함으로서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경각심을 던져줍니다.

롬 2:1의 말씀에서 우리는 이 판단 문제에 대한 사도바울의 호된 지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특히 이 경고는 누구에게 하는 것입니까? 이 경고는 오늘 본문에서는 그 당시 선민이라고 스스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아침에 일어나서 감사기도를 할 때마다 '주여! 나로 하여금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남을 감사합니다'라고 했던 대단한 자부심의 사람들인 유대인들에게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이 있었다면 바로 자신들이 하나님처럼 남을 판단하는 이 부분입니다. 자기들 스스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선민이라고 자부하고 아브라함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하면서 다른 이방 사람들을 무시하고 심지어는 자기 동족인 사마리아인들을 개처럼 여기면서 살아왔던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우월감에 빠져있는 유대인들에게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같은 일을 행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이방인이나 너희들 유대인들이나 다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판단이라는 단어는 법적인 용어로 사람의 선악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슨 특별한 존재여서 선과 악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까?

남을 판단하는 자는 천국의 시민으로서 합당치가 않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비방하고 판단하는 자는 삼중의 독(poison)을 흘리게 된다. 곧 비방하는 자신과 비방을 듣는 자와 비방을 당하는 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죄인이면서도 이방인들에 대해 판단하고 정죄하는 유대인들의 행위는 자신이 죄인이면서도 죄인으로 전혀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전적 부패에서 기인하 것이며 그들이 하는 판단으로 자신들이 정죄를 받는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성과 지각이 마비된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사도바울의 이런 지적이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어지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내세우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스스로 우월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이 분분에 대해 우리가 지적을 받을 때 마다 철저하게 그렇지 않다고 부정을 합니다만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중에, 우리의 몸을 통해 표현되어지는 행동 중에 그런 우월감이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제 2의 유대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이런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주님 앞에 바로 설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그가 비록 다메섹도상에서 주님을 직접 만난 경험이 있고 삼층천에 갔다온 경험이 있었지만 철저하게 타락한 자신의 본질을 고백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자신의 말년에 고백한 것 중에 자신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대단한 고백입니다.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우리 기독교 교리 중에서 가장 근본적이고도 기초적인 것은 전적 타락입니다. 자기의 죄인 됨에 대한 전적인 인정이 우리 기독교인의 생활의 출발인 것입니다. 이런 인정함이 없이 자기만 옳고 자기만 의인이고 그래서 남을 판단만 하는 위치에 선다면 그것은 지극히 잘못된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의 근거는 진리대로, 행한대로 판단하십니다.

2절과 3절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6절,"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선민인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헬라 사람이나 구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받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편견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 배심원제도를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정한 재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수 없이 많은 사례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의인에게는 편파적으로 죄인들에게는 강압적으로 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으로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죄인을 대하시는 방법입니다.

유대인들은 왜 그들의 행함은 의롭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왜 그들은 이방인들을 판단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행함의 표준이 되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가지고 있었고, 그 율법을 날마다 듣는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행함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내가 그 율법을 날마다 듣고 살고 있다는 것과 그 율법을 행하고 살고 있다는 얘기는 또 다른 얘기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율법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그 율법대로 살고 있느냐’ 입니다. 그것대로 살지 못할 때 당신들이 자랑하고 있는 그 율법이 당신을 판단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영혼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의 날, 우리들은 바로 우리들이 자랑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을 받게 될 것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참으심을 멸시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면 유대인들의 태도가 얼마나 하나님을 경멸하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범할 때에도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대로 바로 즉각적인 심판을 하지 않으시고 참고 기다리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말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 그리고 오래참으시는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너무나 많이 경험했습니다.

유대인들의 과오는 그들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의 속성을 이용하는 태도입니다.

그들에게는 인자하심이나 기다리는 마음이 없습니다. 이방인들을 참아주고 그들이 잘못을 알고 돌이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크리스천들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참으심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믿지 않는 자들을 대해야 하지만 그들의 잘못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서 심판을 해버립니다. 죄인들이 죄인들을 심판하는 꼴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첫째,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을 수 밖에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판단하거나 정죄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우리 자신도 죄인이기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을 판단할 정도로 나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떠떠한 자인지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남을 판단하기 앞에서 먼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인간이 회개하기를 원하셔서 오래 참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남들을 보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보다는 그들을 위해서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셨던 오래참음과 인자하심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지속될 때에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도 죄에 대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셋째, 율법을 소유한 유대인이 율법으로 판받듯이 복음을 접한 우리들도 복음에 대한 책임이 중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즉 이미 의롭다 칭함받은 우리들은 그에 합당한 삶을 살며 그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코로나 팬더믹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핑계거리가 되면 안됩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면 안되라고 생각하면서 가장 중요한 구원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죄에서 불러주신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요, 복음을 전할 책임을 외면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 복음에 대한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대를 지나가면서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소망을 갖고 싶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유일한 소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죄의 바이러스를 끊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유일한 치료자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전해야 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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