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대가 점점 발달하면서 가장 퇴보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죄의식일 것입니다. 죄에 대한 감각이 더욱 떨어져서 자신이 죄를 짓고 살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우리 심령에 심어놓은 양심이 마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점점 upside down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한 순리를 역리로 바꾸어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죄는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뒤엎고 하나님이 정하신 순리를 따라 살지 않고 역리로 바꾸어 살아갑니다. 오늘 말씀에 동성애 외에 21가지의 죄의 유형들이 드러났습니다.

죄는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는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시대나 예외없이 죄에서 돌이켜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돌이키지 않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찬송가 282장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https://www.youtube.com/watch?v=6DnjCb5-VRg

1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주 보혈 흘려 주시고 또 나를 오라 하시니 주께로 거저 갑니다

2 내 죄를 씻는 능력은 주 보혈 밖에 없으니 정하게 되기 원하여 주께로 거저 갑니다

3 큰 죄악 씻기 원하나 내 힘이 항상 약하니 보혈의 공로 믿고서 주께로 거저 갑니다

4 내 죄가 심히 무거워 구하여 줄 이 없으니 내 의심 떨쳐 버리고 주께로 거저 갑니다

5 죄 용서하여 주시고 내 마음 위로 하심을 나 항상 믿고 고마워 주께로 거저 갑니다

6 주 예수 베푼 사랑이 한 없이 크고 넓으니 내 뜻을 모두 버리고 주께로 거저 갑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로마서 1:26-32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삶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저서 “말씀아래 더불어 사는 삶”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심리학자나 인간의 본성을 관찰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사는 가장 단순한 그리스도인 보다 인간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며 가장 위대한 심리학적 통찰력이나 능력이나 경험은 죄가 무엇인지 파악할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8절에서 3장 20절까지 죄가 무엇인지를 관통하는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은 다 죄를 범하였으며 죄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치명적인 결과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죄값을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며 그의 십자가 복음 믿는 사람들에게 의와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복음은 모든 믿는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가지 죄를 나열하는 가운데 동성애 죄를 포함하여 하나님께서 그 죄를 범하는 자들을 내 버려 두었다는 표현을 세번 사용 하였습니다. 내 버려 두었다는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방치 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그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죄를 가장 싫어 하시는 하나님이 죄를 그대로 내 버려 두었다는것은 굉장히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 입니다.  사도 바울은 죄가 사람에게서 어떻게 발전되어 나가는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그들 / They’은 넓게는 아담이 타락한 이후의 모든 인류를 가리키고 좁게는 특정한 죄를 향하여 치닫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둔다’는것은 테스트를 통해 승인하는것을 의미 합니다. 보석 감정사들이 테스트를 통해서 진짜 금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것 처럼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테스트를 해 보고 진짜 하나님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보고 기도한대로 해결이 되지 않았을때 그들은 하나님은 진짜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 합니다. 그들의 관심은 온통 그들의 현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하나님에게 가 있고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거나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순복하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자 하거나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순복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것, 바로 이것이 죄가 사람에게서 발전 되어 나가는 첫번째 단계 입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 풍족한 공짜 떡을 배불리 먹는 경험을 하였던 무리들이 또 한번의 공짜 떡을 배불리 먹기를 기대 하면서 예수님을 추종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리들이 요구하는 공짜 떡을 더 이상 제공해 주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 자신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무리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이 원하는 공짜떡이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그 자리를 떠나 버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더욱 알고자 하거나 예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공짜 떡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기독교의 핵심은 성령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전 인격적으로 알고 즐거워 하고 누리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전 인격적으로 알고 즐거워하고 누리는 삶이 최우선의 삶이 되고 최고의 가치 있는 삶으로 여길 것입니다.  

우리의 육적인 관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해결해 주시는데 치우쳐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땅이 꺼질듯한 한숨짓는 삶으로 일관 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육이 가지고 있는 너무나 당연한 반응 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육이 관심하는 현실의 어려움들을 해결해 주시기를 기뻐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현실의 어려움들을 해결해 주시기 이전에 우리를 통해서 만족을 얻고 싶고 영광을 얻고 싶어 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즐거워 하고 누리는 삶 입니다.   어느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보다 중요한것은 현재 처해 있는 상황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자 하고 그분을 참으로 즐거워하며 누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자 하고 그분을 참으로 즐거워하며 누리고자 하는 갈망이 없다면 현재 어떤 분야에서 어떤 공적을 쌓아가고 있는가에 상관없이 내면이 무척 메말라 있을 것입니다.  

체스터튼(G. K. Chesterton)은 세상은 한번도 기독교를 참으로 경험 하고자 시도해본적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다음의 질문 앞에 함께 서 보기 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참으로 알고, 즐거워하고, 누리고자 갈망하며 인생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인생의 가치를 현재 무엇을 하고 있으며 현재 무엇을 이루어내고 있는가에 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이루어내고 있는가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는것을 부인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 전체를 하나님 앞에서 바라보면 그 보다 더 우선이 되는 중요한 한가지 일이 있음을 발견 합니다. 만약 그 한가지를 놓치고 살면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현재 어떤 공적을 이루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후회하는 생이 될 것입니다. 

그 한가지 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더욱 깊이 알아가며 그분으로 즐거워하고 그분을 풍성히 누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행복해 하고 만족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가므로 그분으로 즐거워하고 그분으로 누리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오늘도 끊임없이 계시된 성경 말씀속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우물을 파내려 가기 원합니다. 그곳에서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으로 들어 마시는 복된 하루를 기원 드립니다. 세상의 성공과 견주어 비교하며 걸어가는 인생의 걸음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삶과 견주어 비교하며 걸어가는 인생의 걸음 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 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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