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우리 주변은 마치 짙은 어둠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에 빠져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환경에 처하면 스스로 화를 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무시당하고 소홀히 여김을 받거나 그리고 속임수에 빠질 때 화를 냅니다. 이것이 인간의 분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분노는 그와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에서 돌이키는 자들을 보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 주변에서 보일 때 우리는 빨리 하나님께 돌아가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찬송가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https://www.youtube.com/watch?v=mqFZi_ZtIDQ

1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하나님 이름 높여 기리세 온 천하 백성 모두 나와서 다 같이 하나님만 섬기세

2 세상의 헛된 우상 버리고 인간의 모든 부귀 영화와 거짓과 불의 모두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세

3 주님의 백성 서로 헤아려 시기와 미움 아주 버리고 하나님 만을 홀로 섬기는 천국을 어서 이뤄 주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로마서 1:18-21 

로마서 주제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을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어떤 말씀이 됩니까?  죄인은 죄로 말미암아 죽는다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죄인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결국 의인과 죄인을 구별짓고 있는 분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의인은 어떤 시대를 살아간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맘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에게 최고의 소망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고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죄로 죽을 수 밖에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가 간절하게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 가족 중에도, 우리 일터에도,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죄로 인해서 눈이 가려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18절 말씀은 인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왜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것입니까?

첫째는 죄를 조금도 용납하지 못하시는 그의 거룩한 품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의 거룩은 죄를 조금도 용납하지 못합니다.

출애굽기 19:22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엄격히 말해서 하나님의 거룩 앞에 가까이 다가갈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가까이한다든지 죄인이 눈에 보이면 자연적으로 그 거룩은 반응을 일으킵니다.

그 거룩의 반응이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진노는 자기 자녀를 징계하시는 사랑의 일면입니다.

사랑하면 징계합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의 진노를 제일 많이 받은 백성이 있습니다. 어느 백성입니까? 앗수르족속인가요? 바벨론입니까? 우상 숭배 많이 한 블레셋 족속인가요? 놀랍게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을 독차지했던 그들은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시는 자녀라 죄를 범하면 가차없이 징계하셨습니다. 이 경우에는 징계가 바로 하나님의 진노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는 두 가지 죄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1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우선 먼저 왜 하나님이 진노하고 계시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경경치 않음(godlessness)과 불의(Wickedness)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경견치 않는 자들 그리고 불의한 자들에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경건치 않음이라는 영어 단어가 흥미롭습니다. Godlessness = God+ less인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하나님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불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을 어린석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53: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 인간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의 한계는 우리의 앞날도 알지 못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예측이 가능한 시대라 하더라도 우리 인생에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처럼 살지 못하고 때가 되면 죽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지식도, 과학도, 철학도, 돈도 인생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없을까요? 우리가 이런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없다고 할만큼 삶에 자신이 있습니까? 부조리 투성이고 온갖 생각하는 것이 악한데 우리가 하나님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교만한 인간은 스스로 신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들은 자기 스스로 모순에 빠져서 비참하게 죽어갑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는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의 자리에서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그분을 알 수 있도록 두 개의 기억장치를 주셨습니다. 이 지식장치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성능이 약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는 ‘저희 속에’ 즉 인간 본성 내부에 하나님을 밝히 아는 칩을 박아놓으셨습니다. 그것이 ‘양심’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기에 인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양심을 넣어두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연 만물 속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심어놓았습니다.  이것을 ‘자연 계시’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창조물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알도록 수신기 설치를 끝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어떻게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 심령에 그리고 자연 만물에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몰랐다’고 변명할 수 없으며 변호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핑계될 수 없습니다.

로마서 1:19-20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은 인간에게 충분한 자료와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도 없으며 창조주를 가까이 하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되었을까요? 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이 없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의 자리에 있는 것이 인간의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죄’란 ‘하마르티아’ 즉 ‘과녁에서 빗나가다’라는 의미에서 하나님과 빗나간 관계, 깨어진 

관계를 의미합니다. 결국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없고, 관심도 없는 이유는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아있는 인간이 결국에는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게 되는지 4 단계가 있습니다.

1단계: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습니다.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인간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것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만이 창조주를 알지 못합니다.

이사야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죄인들은 유일하신 창조주이시며 섭리자이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을 진정한 하나님으로 예배하지 못한 것이다

2단계: 내면의 부패 현상이 나타납니다.

21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하나님과 관계가 파괴되자 인간 내면을 구성하고 있는 지, 정, 의의 전반적인 이탈 현상이 도미노처럼 빠르게 이루어졌습니다. ‘어리석다’라는 말은 ‘맛을 잃다’는 뜻입니다.

즉 생각과 마음이 죄로 인해서 바르지 못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거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며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함으로 인해 헛된 것을 추구하게 되고 그 마음은 더욱 악한 것에 빠져들어갑니다.

3단계: 인간의 타락 행위 즉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문제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인간이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아리러니입니다. 두려움 속에 떨고 있는 인간을 발견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우상숭배의 역사입니다. 생각하는 것, 보이는 것들을 가지고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대신에 인간 자신을 섬기고 짐승을 섬기고 우상을 섬깁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보이는 것에 집착을 합니다.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4단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지 않고 그들을 죄에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내어버리다’ 즉 ‘파라디도미’는 다른 권세에 맡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면 매를 대지만 포기하면 내버려 두십니다.  하나님의 포기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징계를 하시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내버려 주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행위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완전히 손을 뗀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성적 괘락을 숭배하고 섬기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욕망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가장 큰 형벌은 심판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라는 랜즈로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똑같이 하나님의 진노의 자리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회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보혈이 임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죄사함의 은총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우리도 똑같이 마음의 정욕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님이 인정하는 의인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이런 놀라운 구원을 우리 주변에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코로나 바이러스로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지금 이때가 바로 복음을 전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삶은 이런 삶이여요. 빨리 이런 죄악된 삶에서 은혜의 삶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주님을 전해야 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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