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스스로 뭘 원하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냥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을 마십니다. 영혼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영혼의 갈증이 있는데 해소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영혼이 목마를 때 우리는 수가성의 여인을 떠올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받기 위해 회개하고 예배하라고 하십니다. 적당히 신앙생활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예배는 쇼가 아니고, 퍼포먼스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찬양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의 성공은 예배자의 태도와 자세에 달려있습니다.


찬송가 19장 찬송하는 소리 있어

https://www.youtube.com/watch?v=s_qmJ0yCP4A 

1 찬송하는 소리 있어 사람 기뻐하도다 하늘 아버지의 이름 거룩 거룩하도다 세상 사람 찬양하자 거룩하신 하나님께  

  <후렴>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멘

 

2 하나님의 나라 권세 영원토록 있도다 하나님의 영광나라 거룩 거룩하도다 하늘 보좌 계신 주님 세상 주관하시도다

3 하나님의 크신 섭리 그 뜻대로 되도다 우리 아버지의 뜻은 거룩 거룩하도다 주여 속히 임하셔서 기쁜 날을 주옵소서


오늘의 말씀: 시편 150:1-6

오늘 본문은  ‘할렐루야 시편’이라고 불리는 146-150편까지의 다섯 편 중에서 마지막 다섯 번째 시편입니다. 시편이 150편까지 있습니다.

시편1편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말씀인 율법을 묵상하며 그 말씀에 순종할 것을 잔잔하게 요청하는 시냇물과 같다면, 150편은 거대한 폭포수와 같습니다.

150편의 시편 전체를 마무리 짓는 찬양시로 시편 전체의 결론을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시입니다.

시편 150편은 인간 존재의 목적과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지 마지막으로 찬양을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코비드 19으로 인해서 교회에서 드리던 예배를 가정에서 드리게 되면서 찬양과 예배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한 때인데 시편 150편은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자들에게 예배와 찬양에 대해서 바른 가이드가 될 것입니다.

첫번째로 찬양하는 장소에 대한 이해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예배 장소에 대해서 생각을 합니다.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 때 너무나 익숙한 장소, 평안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예배를 잘 못드린다고 합니다. 예배는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1절에 사용된 ‘ 성소’라는 단어는 ‘코데쉬’인인데 성소의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성전이나 건물적인 교회의 개념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카다쉬’라는 ‘봉헌하다’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구별된 물건이나 사람, 장소등을 의미합니다.

찬양하는 장소가 어떤 특정한 장소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찬양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여깁니다. 교회와서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또 ‘권능의 궁창’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곳은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곳을 의미합니다.

찬양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어떤 장소에서도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도 교회 밖을 나가서 살아가는 삶의 공간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전 안에서의 삶과 밖에서의 삶이 분리됩니다. 성전 안에서는 거룩하게 찬양하고 경건하게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성전 밖에서의 삶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교회에서나 교회 밖에서나 어디에서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찬양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왜 우리가 찬양을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과 그의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행동은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행사는 창조 사역과 그의 아들을 보내셔서 죄된 인간을 구원하신 구속 사역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 가운데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최고, 최대의 찬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살리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 같이 형편없고, 허물투성이, 죄인을 구원해 주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을 의인으로 인정해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소유한 백성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구원만 생각해도 가슴벅차옴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늘 불꽃 같은 눈동자로 자녀들을 지키십니다. 보초를 서서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한 존재로 삼으시고 높여주시고 삶의 인생 길에서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방향을 잃을 때 방향을 제시해 주시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낙심했을 때 낙심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에게 두가지 마음이 생깁니다.

첫째는 감사하는 마음이요 둘째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면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304장에 3절을 보면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 측량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이 찬송 가사를 기록한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깊이 체험하신 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 하나님께 엎드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과 그분의 지극히 위대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셋째로, 찬양의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3절에서 5절까지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여러 도구들이 등장합니다. 그 옛날 시편이 기록될 당시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적어둔 것입니다.

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지금 여기에서 나온 악기들을 가지고 찬양하면 얼마나 소리가 아름다울까요? 그 당시에 이런 악기로 찬양을 하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파격입니다.

한국에서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교회 본당에 드럼과 전자 기타가 들어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을 일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피아노와 오르간이 아닌 어떤 다른 것이 들어올 수 있느냐고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는 도구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는 세상 모든 것이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옛날 시편이 기록될 당시에 큰 소리 나는 제금, 높은 나는 제금이 사람들의 귀에 거슬렸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사용되었기에 선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우리 목소리도 이와 같습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도 있고, 사람들이 듣기에 좋지 않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못합니다. 내가 어떤 소리를 내든지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하는 바른 마음, 진실한 마음만 가지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합당한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사람의 마음자세입니다. 이렇게 악기를 동원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은 예배자의 마음이 하나님께 열랍되리라 믿습니다.

아이들이 신이나면 악기도 아닌 것을 막 두들리고 놉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수동적으로 예배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찬양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서 찬양을 힘있게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악기를 잘하느냐 못하는냐 노래를 잘하느냐 못하는냐를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향하는 그들의 마음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찬양받으실 유일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시편의 결론입니다. 6절 말씀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호흡이 있는 자 즉 살아있는 모든 자들은 그들이 생명이 존재하는 동안에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찬양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외가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나는 지금 바쁘니까 나는 지금 몸이 안좋으니까? 내가 지금 힘드니까 나에게 어려운 문제가 있으니까?

찬양은 호흡이 있는 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흙으로 빚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생기를 넣어서 살도록 했습니다. 생기로 인해서 인간은 호흡을 하게 된 것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호흡이 그치면 찬양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을 할 수 있을 때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드리니까 찬양을 안하고 말씀만 듣는다는 것은 없습니다.

예배에는 찬양과 경배, 회개기도, 말씀, 예물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흡이 있는 자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감격이 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온라인이나 현장이나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호흡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소의 문제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호흡을 다하는 그날까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찬양에는 제한이 없고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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