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코로나 팬더믹과 더불어 지구가 총체적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지구 온화화 때문에 홍수, 가뭄, 지진 등 이상기후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남극의 빙하가 녹고 해류 온도가 높아져 바다 생태계가 파괴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잘못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시키고 무분별하게 자연을 다루었습니다.  지구의 재앙 중에 천재도 있지만 인재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은 불공평하고 불의하다”며 하나님께 세상 모든 부조리의 책임을 떠넘깁니다. 잘못은 내가 해 놓고 하나님께 뒤집어씌웁니다.

노아 홍수를 보십시오. 죄가 관영하여 하나님께서 물로 인간을 심판하신 사건입니다. 그러나 비가 많이 올 때 회개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지옥은 하나님께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찬송가 21장 다 찬양하여라

https://www.youtube.com/watch?v=SfK_QZAULq8

 

1 다 찬양하여라 전능왕 창조의 주께 내 혼아 주 찬양 평강과 구원의 주님

   성도들아 주 앞에 이제 나와 즐겁게 찬양하여라

2 다 찬양하여라 놀라운 만유의 주께 포근한 날개 밑 늘 품어 주시는 주님   

   성도들아 주님의 뜻 안에서 네 소원 다 이루리라

3 다 찬양하여라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이 세상 만물이 주 앞에 다 나와 찬양   

   성도들아 기쁘게 소리 높여 영원히 찬양하여라 아멘


오늘의 말씀: 시편 149:1-9 왜, 어떻게 여호와를 찬양해야 합니까? 

시편 149편은 여호와를 찬양하라(Praise the Lord)는 명령으로 시작하고 명령으로 마칩니다. 명령이라는 점에 주목 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는것은 우리에게 제안을 하는것이 아닙니다. 군인이 지휘관의 명령을 받으면 반드시 이행해야 하듯이 여호와를 찬양하는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반드시 순종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 부터 구원해 주었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종종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인식할때 제일 먼저 나타나는 반응은 “여호와께 감사”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함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삶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이맘아 감사함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하루를 살아내는 동안에 겪었던 실패와 실망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함으로 잠자리에 들어갈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는 곧 여호와를 찬양 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명령에 순종할수 있는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우리를 예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진술하였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찬양해야할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구속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1절 말씀 보겠습니다.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시편 기자는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새 노래’란 무엇입니까? 오래된 찬양은 피하고 요즘 새로 작사 작곡된 곡만을 부르라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새 노래’는 그런뜻이 아닙니다. 

‘새 노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말미암은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부터 나오는 노래를 의미 합니다. 새로움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는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고 새롭게 된 감격으로 부르는 모든 찬양은 ‘새 노래’가 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곡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수백년전의 찬양이라 할지라도 구속의 감격으로 부르면 곧 ‘새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은 감격 없이 최근에 작사 작곡되어 나온 찬양곡을 ‘새 노래’로 생각하고 찾고 있다면 그것은 마치 쓰레기통을 뒤지는것과 같은 것입니다. ‘새 노래’가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우리 스스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말미암은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새로워져야 우리가 드리는 모든 찬양이 곧 ‘새 노래’가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새 노래’가 되게 하는 핵심은 찬양곡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말미암은 구속의 은혜에 대한 우리 자신의 태도 입니다.  

시편기자는 우리가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양을 드리되 ‘성도의 모임; 가운데서 찬양하라고 명령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모임’이 어떤곳을 가리킵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함께 모여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혼자 찬양을 드릴때나 교회가 함께 모여서 찬양을 드릴때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입니까? 찬양의 질적 차이가 있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개인이 혼자 찬양을 할때 보다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더불어 함께 모여서 찬양을 드릴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 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연결되어 있는 지체들로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익을 위해 존재해야 하기 때문 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모여서 더불어 함께 찬양을 드릴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혼자 찬양할때 보다는 더욱 기뻐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팬더믹 사태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예배당에서 더불어 함께 모일수 없는 상황 입니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전체와 성도 개개인의 영적 힘이 소리없이 빠져 나가고 있습니다. 비록 교회 전체가 예배당 건물에서 함께 모여서 찬양을 드릴수 없는 제한적인 상황이지만 zoom과 같은 영상 매체를 이용한 소그룹 단위의 찬양이 팬더믹 이전보다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소그룹안에서 예수의 주 되심과 예수의 만왕의 왕 되심을 더불어 함께 높이는 찬양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영적 힘을 다시 불러 일으켜야 합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구속의 은혜를 찬양 하십시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감격한자들이 더불어 함께 찬양을 드리십시요. 찬양 가운데 거하시는 여호와의 능력이 우리의 삶과 가정과 교회 가운데 나타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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