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익숙해져 가는 것입니다. 익숙해지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신앙에서 익숙해져 가면 쉽게 형식화가 되고 메너리즘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익숙함과 결별을 선언해야 합니다. 익숙함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믿음을 약화시킵니다.

익숙함은 신앙을 단조롭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익숙함이 아니라 늘 초심의 마음으로 은혜 앞에 서야 합니다. 처음 들이는 예배자처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는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하고 섬겨야 합니다. 만약에 첫사랑이 아니라 편안함과 익숙함에 길드려지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쓰임받기도 어려워집니다. 비록 이 시대가 이전의 시대와 달리 우리와 맞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이 늘 주님을 향한 첫사랑을 가지고 그분을 예배하고 기도하고 섬겨야 합니다.


찬송가 20장 큰 영광 중에 계신 주

https://www.youtube.com/watch?v=zGXiqlaMR-4

1 큰 영광 중에 계신 주 나 찬송합니다 영원히 계신 주 이름 나 찬송합니다

2 한 없이 크신 능력을 나 찬송합니다 참 되고 미쁜 그 언약 나 찬송합니다

3 온 천지 창조 하시던 그 말씀 힘 있어 영원히 변치않는 줄 나 믿사옵니다

4 그 온유하신 주 음성 날 불러 주시고 그 품에 품어주시니 나 찬송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시편 147:1-11 

주일 오후에 축복동산과 은혜동산이 연합동산모임을 가지면서 동산원들과 같이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19전에는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믿음, 실제하는 믿음이 아니라 멀리 계시는 하나님, 관념적인 하나님을 생각하다가 코로나 19가 떠지고 난 후에는 실제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간증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평상시에는 모든 것들이 편안하고 안정화 될 때는 하나님이 잘 느껴지지 않다가 현재 코로나로 인해서 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을 붙들게 되었고, 삶의 모든 것들 다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간증을 들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편 147편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온 후에 지어진 시입니다. 2-3절이 그것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이 시편은 146편에서 150편의  할렐루야 시편으로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라는 말은 “야훼를 찬양하라”,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1절에서도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하고, 7절에서도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지 그 이유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첫 번째 이유는 치유와 회복과 구원때문입니다.

시인은 가장 최근에 일어난 큰 사건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을 먼저 생각한 것입니다. 남유다가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형제 자매들이 이국 땅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생명을 살리고 그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바벨론의 생활은 그들을 아주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벨론의 생활이 아니였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찬양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전히 교만하고 여전히 자기의 업적을 자랑하고 여전히 자신들의 공로를 자랑하는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벨론의 혹독한 생활을 경험하면서 그들이 깨달은 것이 바로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그들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며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2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3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하나님이 무너진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시고 민족 공동체를 회복하게 하시며 그들 안에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시고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구원해 주신 그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발견한 것입니다.  

요즘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인간의 지혜가, 인간의 능력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도 해결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철옹성을 만든다고 해도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그런 요새와 같은 곳에 다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코로나 시대를 보면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깨닫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통제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전세계를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것을 통해서 일제히 멈춰세워놓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은 한낱 안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관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죽음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런 코로나 시대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치료와 회복 그리고 구원을 체험해야 합니다. 바벨론시대와 같이 우리가 경험하는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커져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때문입니다.

5절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상태에서 해방되고 잃어버린 나라로 돌아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과 민족공동체를 재건한다는 것은 그들이 눈물과 한숨 가운데 꿈꾸기는 했을지 몰라도 실제로 이루어지리라고 믿기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을 무너뜨린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그것을 명한 것입니다. 페르시아 또한 이방나라인데 그 왕이 그런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일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역사의 주인이시고 만유의 주권자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이 놀라운 일이 에스라 1:1-4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모든 나라와 그 왕들의 마음까지도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시는 하나님은 사실은 지구상의 민족과 나라들뿐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까지도 모두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지혜와 권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기에 그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일도, 내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모든 일들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미리 계시하시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미 바벨론의 포로생활과 70년 후에 다시 포로에서 귀향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와 자신들의 구원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 놀라운 지혜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도 그분의 통치와 주권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며 그분의 섭리하심과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지혜는 놀랍고 경이로워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10-11절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언급합니다: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여기서 “말”은 군마를 말하며 “말의 힘”은 군사력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는 말은 전장을 달리는 병사의 다리가 튼튼하다는 뜻입니다.

강한 나라에 의해 자기 나라를 빼앗겨본 백성은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군사력을 기르고 병사들을 튼튼히 훈련시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며 강조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언제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오직 그의 은혜에 의지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에서 이스라엘이 거둔 승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친히 싸워주시고 그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한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신 승리였음을 시인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와 멀어지며 그를 의지하지 않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마다 이스라엘은 쓰라린 패배와 굴욕과 고통과 탄식의 세월을 살아야 했음을 시인은 상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한 데서 “인자하심”은 하나님의 한결같으신 은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게 배은망덕과 범죄와 실수를 거듭한 이스라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는 결코 내치고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이방나라에 끌려가 오욕과 수치의 역사를 경험한 유다 백성이 이제 해방과 국토의 회복을 얻고 새롭게 다짐해야 할 것은 힘센 말을 가지고 군사들의 다리를 억세게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것이라고 시인은 외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그것만 잘 지키면 다른 모든 문제를 다 책임지시고 해결해주실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와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와 전지전능하심과 지혜를 체험하는 때인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런 엄청난 일들을 경험하게 하셔서 오직 하나님만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는 언제든지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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