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앞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과 불확실한 미래와 예측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 있지만 이런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려운 때가 바로 우리의 믿음을 볼 수 있는 때입니다. 이때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고 사는지 아니면 가짜로 믿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한 주간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령충만을 구하십시오(엡 5:18). 성령이 충만할 때 우리는 육신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인해서 영혼이 강건할 때 우리의 육도 강건해질 수 있습니다. 영이 육을 다스릴 때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한 주간을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찬송가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https://www.youtube.com/watch?v=IhJHSXc3iDg

1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후렴>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2 숲속이나 험한 산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3 주 하나님 독생자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보내주셨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주 내 모든 죄를 대속하셨네 

 4 내 주 예수 세상에 다시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 나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


오늘의 말씀: 시편 135:1-14 구원의 이름 예수

지금까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시편 120-134)’의 시편을 같이 묵상해보았습니다. 

이 시편들을 묵상할 때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서 길을 가는 순례자입니다. 우리가 순례의 길을 성공할 수 있는 것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같이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135편은 찬송시입니다. 시편을 문학적이며 내용적인 특징에 따라 분류할 때 시편에는 여러 편의 찬송시가 있는데 시편135편도 그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이 시편의 특징은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루의 시작은 할렐루야입니다. 

  1-2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의 히브리어로 라틴어로는 ‘알렐루야’라고 발음합니다. 그리고 보다 구체적인 의미는 ‘너희들은 여호와를 찬양하라’입니다.

오늘 시편은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곧 주의 백성들아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함은 주의 성도됨의 중요한 특징이며, 성도의 삶의 방식입니다. 곧 사람이 음악과 노래가 없이는 살 수 없듯이 주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호흡하듯 찬송을 하고, 옷처럼 찬송을 입고 삽니다.

그렇다면 왜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것입니까? 이어지는 말씀들이 그 이유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3-14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께서는 위대하시며 우리 주는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도다 여호와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안개를 땅 끝에서 일으키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를 만드시며 바람을 그 곳간에서 내시는도다 그가 애굽의 처음 난 자를 사람부터 짐승까지 치셨도다 애굽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행한 표적들과 징조들을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보내셨도다 그가 많은 나라를 치시고 강한 왕들을 죽이셨나니 곧 아모리인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 가나안의 모든 국왕이로다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시되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도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를 기념함이 대대에 이르리이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 

 3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은 찬송 받으셔야 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며, 애굽을 치시고, 가나안의 왕들을 멸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주신 하나님이시라고 노래로 증언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향하며 여호와라 불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선하고 아름답고 위대하고 영원하시니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이름들이 있습니다. 

세계 인구를 75억 명이라고 볼 때 동명이인은 하나로 치더라도 별의 개수만큼이나 많은 것이 사람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들은 저마다 신중하게 어떤 이유를 따라 지어졌고, 그 이름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마다의 이름들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최고의 이름이 있는데 바로 ‘여호와’라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라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에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이름이 역사 속에 구체적이며 사실적으로 나타난 것이 ‘예수’, 그 이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 이름의 뜻이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 구원의 이름을 믿어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남보다 착하고 선하고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주의 자녀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이 사실을 기억하고 되새기며 하나님 앞에서 감사와 겸손과 순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예수, 이름을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았다는 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좋고 위대하다는 것도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구원받았다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고, 비교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서 구원받은 것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현실과는 전혀 다른 영원하고 완전한 완성의 자리와 상태에 이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죄가 위험하고 심각한 것은 영원에 대한 개념, 영생하는 천국에 대한 인식을 앗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양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아무런 소망도 없이. 죽음 너머에 천국에 대한 참된 현실도 모른 채 생을 마감하게 하는 것입니다. 죄의 무서운 함정과 결과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깊이 기억하고 묵상하며, 예수 안에서 내게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고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즐거움과 안락함과 안전함 맞은편에 그늘져 보이지 않는 외롭고 마음 아픈 이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삶의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 이름, 그 구원의 이름을 찬양해야 합니다. 예수만이 우리의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이름입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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