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토요일을 맞이하는 것은 마음에 큰 설레임을 줍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때문입니다. 상황이나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예배자의 마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놀라운 구원의 은총, 죄에 대한 용서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하심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은혜까지 우리 심령 안에는 하나님이 세겨놓으신 놀라운 흔적들이 고스란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하나님 자녀들에게는 축복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 놀라워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가 그분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날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를 정결하게 준비헤야 합니다. 각자의 처소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도록 마음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찬송가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https://www.youtube.com/watch?v=ePKu-JG1dWE

1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뿐일세

2 나의 사모하는 선한 목자는 어느 꽃다운 동산에 양의 무리와 늘 함께 가셔서 기쁨을 함께 하실까

3 길도 없이 거친 넓은 들에서 갈 길 못 찾아 애쓰며 이리 저리로 헤매는 내 모양 저 원수 조롱하도다

4 주의 자비롭고 화평한 얼굴 모든 천사도 반기며 주의 놀라운 진리의 말씀에 천지가 화답하도다

5 나의 진정 사모하는 예수님 음성 조차도 반갑고 나의 생명과 나의 참 소망은 오직 주 예수뿐일세 아멘


오늘의 말씀: 시편 132:1-18 다윗의 장막

오늘 본문, 132편은 120-134편에 있는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로 표제어가 붙은 ‘성전 순례시’ 15편 중에서 13번째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누가, 언제 기록했는지 나타나 있지 않지만, 성전건축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다윗의 열망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고, 하나님과 다윗과 맺은 언약이 나타나고 있있습니다.

이 시편은 다윗의 마음, 즉 예배자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이 시인은 다윗의 마음을 담고 싶어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서 가진 그 예배자의 마음을 무척 담고 싶어합니다.

사도행전 15장 16절을 보면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마다 이런 마음의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재건하고 싶으신 것일까?

왜 모세의 장막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싶어 한다고 하지 않으셨을까?

사실 모세의 장막이야말로 지상에 세워진 천상의 처소 중 최초의 장막이 아닌가, 아니면 그보다 더 웅장한 것으로 치자면, 하나님은 왜 솔로몬 성전을 그 웅장함 대로 복원하고 싶어 한다고 하지 않을셨을까?

하나님은 왜 다윗의 장막, 즉 임시처소와 같은 장막을 개건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이 문제를 가지고 시름하면서 기도를 하는데 순간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이 내가 가장 기뻐하는 집이기 때문이란다.”

다윗의 장막은 모세의 장막이나 솔로몬 성전과 비교해보면 장막으로서의 조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언약궤와 성물들을 햇빛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저 기둥 좀 세우고 그 위에 방수천 하나 덮은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 집을 다시 세우고 싶구나.”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예배는 특별한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예배자의 태도와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내줍니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줍니다.

2 그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3 내가 내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4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5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좇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생각하면 잠도 청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왕궁에서 잠을 자고 지내고 있지만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언약궤는 사람들이 찾지 않고 돌보지도 않는 상태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다윗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하나님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보다도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 상징인 언약궤를 옮겨오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때 다윗에게 소식이 들려옵니다.

6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사무엘상 4-7장을 보면, 블레셋과의 전쟁이 일어났는데 블레셋 군대가 이겨서 언약궤를 빼앗아 갔습니다. 

자신들의 신이 이스라엘의 신을 이겼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자기 신전에 언약궤를 갖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함께 있던 자기들의 신의 신상이 넘어지고 박살이나니까 두려워하면서 이스라엘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사무엘상 7장을 보면, 그때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졌습니다. 사울은 언약궤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언약궤가 돌아와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참된 예배,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예배, 내 마음을 다하고 내 영혼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고 내 모든 것을 드려도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7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8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다윗은 언약궤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오면서 기쁨의 행진을 벌였습니다. 

얼마나 기뻤으면, 옷이 흘러내리는지도 알지 못하고 춤을 추다가 아내 미갈로부터 업신 여김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춤을 추며 기뻐했습니다.

사무엘하 6:14-15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다윗이  에봇을 입었더라다윗과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다윗은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다 많이 생각하고 더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죄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가지고 와서 임시천막을 만들어서 그곳에 하나님을 모십니다. 이 곳이 바로 다윗의 장막입니다. 언약궤를 보관하는 임시처소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을 생각하면 너무 기쁜 것입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묵상합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찬양이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찬양대를 만들었습니다. 아삽, 헤만, 에단과 같은 레위인들을 세워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습니다.

임시처소를 떠나지 않고 늘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했습니다. 비록 장소는 보잘 것이 없지만 그런 장소는 다윗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곁에서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것은 하나님을 닮은 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마음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하나님을 만을 생각하고 찬양하는 다윗을 그래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장막을 다시 개건하시겠다는 것은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다윗의 마음을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다윗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에배하는 그런 예배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 시대가 어려운 시대라 해도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걸림돌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배자에게 무슨 걸림돌이 있겠습니까?

집에서 예배하니까 안되고 교회에서 예배하니까 되고 이런 것이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삶 전체를 드리는 것이 참된 예배인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예배라는 것을 장소의 개념으로 많이 이해를 합니다.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잘 드릴 수 있느냐? 이런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배자를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자, 비록 세상에서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용서하심을 구하며 상한 심령으로 나온 예배자, 하나님이 없으면 도저히 살 수 없다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구하는 예배자, 하나님께만 예배하기를 원하는 예배자를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런 예배자를 찾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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