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Colum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에 짙은 안개가 자욱히 끼어 있었습니다. 안개가 낀 날은 가시거리가 좁기 때문에 늘 조심스럽습니다. 안개가 낄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큰 위로로 다가옵니다. 우리 인생에는 안개가 자욱히 낄 때가 있습니다. 비록 앞 날이 흐리고 앞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통제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서 때로는 안개를 보내십니다. 안개를 통해서 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곧 안개는 걷히고 찬란한 햇빛이 떠오를 것입니다. 안개 같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심을 믿고 하루를 주의 말씀으로 시작할 때 오늘 하루도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찬송가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https://www.youtube.com/watch?v=IowdoN8StBY

1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은 주 하나님 나를 도와주시네    

   나의 발이 실족않게 주가 깨어 지키며 택한 백성 항상 지켜 길이 보호하시네

2 도우시는 하나님이 네게 그늘 되시니 낮의 해와 밤의 달이 너를 상치 않겠네    

   네게 화를 주지 않고 혼을 보호 하시며 너의 출입 지금부터 영영 인도하시리 아멘


오늘의 말씀: 시편 127:1-5 핵심은 하나님이시다.

오늘 본문, 127편은 120-134편에 있는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로 표제어가 붙은 ‘성전 순례시’ 15편 중에서 8번째 시편입니다. 성전 순례시 15편 중에서 10편은 누가 기록했는지 알 수가 없지만, 4편은 다윗이 기록했고, 나머지 1편, 오늘 본문이 바로 솔로몬의 시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1년 삼차 예루살렘을 순례하였습니다. 무교절과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에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이 노래한 것처럼 예루살렘의 순례는 하늘의 도성에 대한 성도의 그리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소망이 이 땅 가나안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올 새 예루살렘 곧 하늘의 도성에 대한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소망 가운데 1년 3차에 걸쳐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1년 3차 예루살렘을 순례하면서 부르던 노래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 땅의 것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에 소망을 두며, 육의 양식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의 양식에 소망을 두는 삶을 강조하는 절기동안에 부르던 노래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표제에 보면 이는'솔로몬의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혜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자가 바로 솔로몬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내가 집을 세우려고 합니다. 내가 내 가정을 지키려고 합니다. 또 힘써 노력하고 밤잠 안자고 지키면 내 집이 든든히 서고, 내 가정이 행복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1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여호와께서 세우시고, 지키지 아니하시면 다 허사라고 합니다.여기에서 강조점은 무엇입니까?'헛되다'는 표현을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헛되다는 표현을 대하면 우리는 전도서의 메시지가 떠오릅니다.

전도서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헛되다(히, 헤벧)의 뜻은 ‘숨’, ‘증기’, ‘공허함’ ‘속이 텅빔’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은 한번 숨을 쉬고 죽습니다. 숨이라는 것이 얼마나 짧습니까?

전도서의 저자가 솔로몬이고 이 글의 저자 역시 솔로몬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일생 많은 것을 누렸습니다. 지혜와 부와 권력, 그리고 수많은 아내들, 세상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던 모든 것을 누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말년에 노래하길 하나님이 없는 인생,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인생, 하나님이 없이 이루는 모든 것들은 다 헛되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건축할려고 합니다. 인간이 노력해서 자기의 인생을 건축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빠진 삶,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는 삶은 한 숨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건축해줄 때가 가장 복된 삶입니다.

그럴려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이 되지 않으면 교만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묵상하면 떠오르는 신약의 인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비유에 나오는 한 부자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옵니다. 그는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창고로는 다 보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기를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을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라고 말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은 인생, 하나님이 없는 인생,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는 인생은 다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보장 받습니다.

2절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사람들은 2절 전반절의 내용으로 성공의 3요소를 말할 것입니다. 첫째 일찍 일어나기, 둘째 늦게 잠자리에 들기, 셋째 수고의 떡을 먹기입니다.

낮이고 밤이고 일하기와 여기저기에서 일하기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헛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근면, 성실, 부지런한 삶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1절에 있는 말씀처럼 아무리 그렇게 살아도, ‘하나님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하나님께서 지키지 아니하시면’ 어리석은 부자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참으로 많이 묵상하는 말씀입니다. 선교를 갈 때마다 이 말씀을 붙잡고 잠을 잡니다.

2절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잠이란 집을 세우는 수고, 성을 지키는 수고, 일찍 일어나며 늦게 누우며 고생의 떡을 먹는 수고와 고생에 반대되는 비유개념으로서의'잠'입니다.

이 경우 잠은 안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안식케 하십니다. <잠을 주신다>는 것은 마음의 평안을 허락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이 없이 내가 모든 것을 다 할려고 하는 자들은 늘 불안하고 평안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믿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맡은 일에 충성하는 자들에게는 늘 하나님께서 마음에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자식의 복을 받습니다.

3절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고대에 하나님께서 복주심의 대표적인 예가 ‘자녀’입니다. 이것을 예로 들어서 하나님의 세우심과 지키심을 강조합니다. 이 말씀은 가정을 꾸려가는 것도 하나님의 세우심, 하나님의 지키심의 결과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기업’은 ‘상속받은 재산’, ‘물려받은 소유’를 뜻하는 말입니다. 유산, 상속이라는 말은 그 재산을 형성하는데 나는 아무런 공로가 없지만, 그 재산이 나에게로 왔다는 의미입니다. 자녀가 유산과 같은 존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려주신 것이라고 하십니다. ‘상급’의 문자적은 의미는 ‘임금’, ‘삯’이라는 의미이지만,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얻기 위해서 무슨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냥 상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그렇게 주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자식이 마치 <장사 수중의 화살>(4절)같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사회생활을 할 때 낭패를 당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회생활을 해야 합니까? 믿음의 사람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5절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성문>이란 <성문 앞 광장>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어느 성읍이나 성문 앞 광장에서 모든 것이 다 이뤄졌습니다.

장도 서고, 재판도 열리고, 군대의 열병식과 출정식, 개선장군의 환영식도 열렸습니다. 따라서 <성문>이란 유다 사회의 한 복판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가 세우시는 집과 지키시는 가정의 식구들은 거기서 수치를 당치 않는다고 합니다. 사회생활 할 때 봉변을 당하거나 낭패를 겪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보다도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보장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시편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로 신앙의 선배들은 예루살렘에 오기 위해 많은 노력과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천리 길을 오며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에 도착한 사람들은 저마다 체험담을 나눕니다. 누가 가장 멀리서 왔는가? 누가 가장 빨리 왔는가? 가장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것은 누구인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려서 온 사람은 누구인가? 이런 식으로 서로 비교하며 견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소란을 떠는 무리 가운데서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순례 길을 그토록 어렵게 왔다는 자체가 핵심이 아닙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영웅적 여행을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곳에 오기까지 아무리 고생이 심했고 아무리 대단한 일을 했다고 해도, 아무리 강도를 물리치고 사자를 때려잡고 늑대를 물리치고 도둑들을 피했더라도, 그것이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노력한 것은 주변적인 것이고, 중심에서 일하신 분은 따로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시편 127편은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 하나님을 붙들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주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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